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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을 위한 소심한 변명
독립출판을 위한 소심한 변명
  • 임경용·함영준
  • 승인 2012.01.1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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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는 후배가 <반역의 책장사>(Rebel Bookseller)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시카고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장이 그 존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왜 인디사업은 당신이 싸우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대변하는가: 자유 발언부터 공동체 건설을 위해 지역의 것을 구입하기까지’이다. 이 책이 아주 읽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부제를 단 책이었다.

2011년 3월 오픈한 서점 ‘북소사이어티’는 국내외 서적이 반반 정도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이른바 ‘독립출판물’이다.

서점을 시작한 동기는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작은 지역 또는 개인 단위의 독특한 문화적 생산과 그 보존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과 소비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문화 현상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해 단지 개인적 취향만을 강조한 작업이 아닌, 작은 이야기가 발화되고 지역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회로, 작은 시스템을 생각했다. 활동의 수단으로 출판을 선택했고 이는 곧 진(Zine)(1)이라는 형태와 각종 행사, 페어, 세미나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먼저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로 적극적으로 연대하거나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자주출판’이라는 말 자체가 시사하듯, 인디문화는 그 단위에서조차 독립성이 강하다. 어떤 식의 연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설적 방식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활동을 시작할 당시 ‘독립출판’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제안한 것이 ‘소규모 출판’(Small Press)이나 ‘자주출판’(Self-Publishing) 등이었다. ‘독립’이라는 말이 형용사처럼 사용된다면, 그 뒤에 어떤 단어가 붙어도 일종의 형용모순이 된다고 생각했다. 독립문화는 주류 문화와의 긴장 속에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며 사회적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프로야구의 1군과 2군 관계처럼 취급된다면, 주류 문화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절차상 하는 것이 독립문화라면, ‘독립’이란 말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보는 내·외부의 시선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독립’이란 이름으로 모든 인디문화를 묶어버리면 되레 그것이 족쇄가 될 수 있다.

가장 독립적인 활동이나 결과물은 오히려 그 외부에서 하나의 우연처럼 나타난다. 이들 대부분은 20대이고 소규모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자립적이다. 결과나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상상력만큼은 탁월하다. 

작은 시스템이 필요한 사회

매년 연말이 되면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한다. 마치 그것이 올해 우리 사회가 생산해낸 유일한(혹은 우월한) 담론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제작하는 출판사와, 그 책을 유통하고 배급하는 온·오프라인 서점, 유통사,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에 대해 기사를 쓰고 이야기를 붙이는 언론사의 관계는 매우 공고해 보인다. 일반적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가? 출판사-유통사-서점-언론사의 고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책에 대한 온당한 평가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규모가 제기하는 문제는 생각보다는 근본적이다. 대형 출판사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독립출판사는 이야기한다. 이것은 일종의 선택이며 태도이다. 작은 시스템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특별한 미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형출판사와 독립출판사가 지향하는 지점은 분명히 다르다. 개인이 하나의 생산단위가 되어 ‘네 스스로 하라’(D.I.Y) 정신에서 출발한 독립출판은 사회적 담론이라는 홍수에 띄우는 작은 배와 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책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

독립출판은 여러 공동체를 매개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얼마 전에 출판된 <도미노>라는 잡지는 그래픽디자이너가 기획하고,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문화잡지이다. 음악·디자인·영화·건축·패션 등에 관심 있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잡지 안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 것이다. 독립출판은 역설적 의미에서 연대를 위한 ‘공동’의 공간이다.

이처럼 책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책도 혼자서 만들 수는 없다. ‘1인출판’이라 불리는 독립적 수단 역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제작 과정을 짚어보면 독립이란 협업을 통해 유지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립출판은 책에 대한 인식과 그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읽기 이전의 책은 하나의 도구로서 존재한다. 또한 종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거나 표현해 전달하는 강력한 장치이다. 책을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는 이미지와 텍스트이지만, 책 자체의 물성이나 제작기술을 통해 내용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하는 확장성도 있다. 독립출판물 대부분은 다루고 있는 내용과 더불어 책의 물성을 실험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하나같이 이상하다. 그 이상함이야말로 독립출판물이 가진 힘이다. 기존 책과 다른 물성을 가진 책은 일종의 탈주선이다. 자신의 원을 공고히 다듬는 것이 출판계의 장인이라면, 그 원 위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는 것은 아마추어이다. 아무렇게나 그린 선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 프레임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통해 책은 그 존재를 진화시켜나갈 것이다. 독립출판의 아마추어적 실험이 없다면, 뉴미디어 시대의 책은 유물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주류 출판이 자신의 욕망을 공적으로 드러낸다면, 독립출판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휘젓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 모호한 뉘앙스가 주류 출판이나 장인이 만든 책의 공고함보다 우월하지 않더라도 다른 결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공론장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금, 세상을 뒤흔들 어떤 힘을 독립출판에서 보고 느끼고 기대한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어쨌거나 나는 독립출판 서점을 계속 운영해나갈 것이다.

/ 임경용
소규모 출판사 미디어버스의 대표이자 이곳에서 운영하는 서점 ‘북소사이어티’의 주인장이다.


(1) ‘진’(Zine)은 팬진(Fanzine)의 준말로 1920~30년대 공상과학(SF)소설 동호회가 자신들이 쓴 글을 공유하고 돌려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 주로 정기간행물 형식이었고, 200~300부의 소량으로 값싸게 만든 소책자이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체나 예술가들이 이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정기) 문화잡지 <도미노>(DOMINO)

이것은 독립잡지가 아니다

지난해 말, 나는 <도미노>라는 잡지를 냈다. 함께 만든 사람은 20명 남짓 되고, 그중 나를 포함한 6명은 지난가을부터 주말마다 이어진 기획회의에 참여했다. 6명의 ‘우리’는 스스로 ‘도미노 동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글은 ‘도미노 동인’의 일원인 내가 <도미노>를 만들면서 경험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아마 전체 의견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충돌이 ‘도미노 동인’들에게는 별로 상관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내 의견을 ‘도미노 동인’의 대표 의견으로 간주한다면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음을 먼저 일러둔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보며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해, PD라는 줄임말 직업을 갈구하던 선배들과 생전 처음 보는 잡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잡지들은 영화나 음악이 주제가 아니었다. 창간호 대신 ‘창간 준비호’라는 것도 있었다. 섹스에 관대했고, 헤비메탈 대신 시애틀의 음악을, 네스케이프로 인터넷 검색하는 방법을, 그리고 동유럽의 예술영화는 물론 컬트영화도 다루는 잡지였다. 그것들은 2~3년간 패션지부터 계간 문화지의 모습까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쏟아져나왔다. 그 후 여성해방이나 동성애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선배들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

선배들의 작업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졌는데, 그것은 KTF의 Na와 SK의 TTL이 론칭하면서 만든 무가지 때문이었다. 그 무가지들은 기존 ‘문화잡지’의 콘텐츠를 그대로 얻어서 만들었다. 사람들은 굳이 돈을 주고 문화잡지를 사 볼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동통신이 더 이상 젊음의 문화를 표방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그 무가지들은 ‘X세대’라는 상업적 호명과 함께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 좀더 자유로운 방향으로 문화를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세대는 빠르게 주류 문화권으로 흡수되거나 주류 문화권의 비릿함을 못 견디고 잠수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선배들을 따르지 않으면서 관망하다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을 접고 잠수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잡지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환위기로 인해 쳐내야 할 산업으로 분류되었고, 홍익대 주변을 중심으로 서서히 봉오리를 틔우던 ‘독립’ 혹은 ‘인디’ 문화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미 그때부터, 무엇으로부터 ‘독립’할 것이냐는 ‘독립문화’의 가장 기본적 전제는 형용모순이었다. 다시 말해 ‘독립’하는 것이 ‘독립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던 시절이 지났다.

내 또래들이 암흑의 2000년대를 적립식 펀드와 맛집 기행,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자전거타기 등으로 버티는 동안, 내 아래 세대, 즉 ‘초딩’들은 대학생이 되어 2000년대의 지루함을 떨치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홍익대 앞 인디음악신이 최초로 태동한 1990년대의 이른바 ‘1세대’ 뮤지션이 90년대에 했을 법한 고민을 그대로 적용하며, 더 커진 생활의 고난을 ‘자립’이라는 가치로 가열차게 들이받는 음악인들이 나타났다. 싸이월드에 익숙한, 즉 디지털 사진으로 예쁜 이미지를 만들고 자기 취향을 아포리즘에 얹어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는 출판인들이 나타났다. 이런 태도는 ‘모든 것이 문화이지 않을까?’ 고민하던 90년대 중반의 감상적 문화주의자, 즉 선배들의 태도와 흡사하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6명의 ‘우리’, 30대 초·중반의 ‘도미노 동인’은 트위터를 통해 만났다. 콘텐츠의 열악함이 중첩되며, 결국 태도만 앙상하게 남은 ‘파워 트위터리언’이 부르짖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가능성’이 아닌, 예쁘게 정리할 필요 없이 140자에 맞춰 정해진 방향 없이 왕성하게 소통하는 트위터의 무정부주의적 속성이 나와 같은 성향의 동료를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떠드는 것처럼 오랜 수다와 잡다한 레퍼런스로 이루어진 기획회의를 거쳐, 그러니까 타임라인을 인쇄물의 성격에 맞춰 가공한 모양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런 프로세스 어디에도 ‘독립’이라는 구호가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독립’이라는 말이 뜻하는 정치적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떤 ‘독립’ 잡지보다 <도미노>는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이라는 말이 뜻하는 제작 프로세스를 고수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책의 물성에 심취해 출판물 안에 있는 글을 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는 ‘독립’적인 유통망을 이용하고 있지만, 기회만 닿는다면 교보문고 매대에도 깔아서 판매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므로 <도미노>는 “<도미노>는 독립잡지냐”고 묻는 질문의 함의와 만나는 지점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내게 독립잡지를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도미노>는 문화계 주변부에서 학생 혹은 애호가의 역할로 10여 년을 버텨온 나와 6명의 ‘도미노 동인’들이 만든 비정기 문화잡지일 뿐. 더 이상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 함영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직업으로 하면서 부업으로 ‘로라이즈’라는 공연장을 운영하고, 몇몇 매체에 가끔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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