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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매력적인 캐릭터를 위한 멀고도 험한 길
[구선경의 문화톡톡] 매력적인 캐릭터를 위한 멀고도 험한 길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11.22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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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흥미로운 캐릭터 이야기

드라마 작법 수업을 할 때 제일 재밌는 건 캐릭터를 얘기할 때다. 강의를 하는 사람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듣는 사람도 이때가 제일 흥이 난다. 왜냐하면 적어도 실체가 있는 걸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주제나 기획 의도 이야기는 어쩐지 엄숙해져 정색하고 수업하게 되고, 구성이나 플롯에 관해 설명할 때는 설명 자체가 쉽질 않다. 시퀀스를 나누고 기승전결을 만들어보라고 하지만 그게 자로 잰 듯이 똑 떨어지는 레시피가 있는 게 아니다. ‘시퀀스는 씬 7개씩 묶으면 됩니다. 8개는 안 돼요라든가, ‘발단에 들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는 31가지가 있습니다. 그다음 전개에 들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는 55가지가 있죠. 첫 번째부터 불러 드릴 테니 적으세요하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칙은 말할 수 있지만 변주의 개수는 무한대이니 말하다 보면, 또 듣다 보면 어쩌라는 건가 싶어진다.

그에 비해 캐릭터는 일단 실체가 있다. 예로 들기도 쉽다. 어느 드라마의 어느 캐릭터라고 하면 학생들도 눈이 빛난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외계인임에도 불구하고 맘에 와닿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도깨비>의 김신은 어떤 점에서 이전 남주 캐릭터들과 다른 매력이 있었는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여성 캐릭터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는 왜 그렇게 친근했는지, 이야기하자면 무궁무진하다. 누가 안 시켜도 친구들과 매일 떨었던 수다이니 어려울 게 없다.

 

'도깨비'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응답하라 1988' 현장 스틸컷-각 홈페이지
'도깨비'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응답하라 1988' 현장 스틸컷-각 홈페이지

그런데 실은, 여기부터가 함정이긴 하다. 드라마로 본 캐릭터는 배우가 이미 입혀진 후라 배우의 지분이 크다.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고, 사건이 작고 일상성이 강한 장르일수록 더욱 그렇고, 특히 로맨스와 멜로에서는 사실 배우에 따라 드라마의 분위기 자체가 350도쯤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캐릭터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배우론으로 빠지기 쉽다. 배우 이야기는 캐릭터보다 백 배쯤 더 재밌을 수도 있지만, 내가 드라마를 쓰려면 배우의 지분을 제외한 캐릭터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이건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대본 쓸 때 주의하라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이건 박서준을 생각하고 썼는데요라든가 ‘<그해 우리는>의 웅이 같은 캐릭터인데요라는 식으로 꼭 설명을 달아야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로 쓰지 말라는 거다. 물론 쓸 때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건 자유다. 누군가 떠올리고 쓰면 기대갈 수 있어 편하다. 만약 방송을 앞두고 있어서 캐스팅이 된 상태라면 너무나도 당연히, 그 배우를 십분 활용한 대본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는 게 맞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대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는 순간이라면, 다시 말해 공모전에 내거나 제안하는 단계의 대본이라면 그 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대본으로 쓰지 말고 당신의 작가적 역량을 온전히 보여주는 대본을 쓰라고 얘기한다. 결과물에서 오롯이 작가의 힘과 매력이 보이는 대본을 쓰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힘을 키우라는 뜻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멀고도 험한 길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절망적인 이야기부터 하자면, 캐릭터 또한 작가의 개성에 크게 영향받는 부분 중 하나다. 이야기의 매력을 따지고 들어가면 작가의 오리지널리티에 의존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실은 캐릭터 또한 그렇다. 작법의 여러 가지 항목 중 캐릭터와 대사는 작가가 본래 가지고 있는 개성에 좌우되는 바가 크다.

그럼 자신이 없으면 드라마를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관심 있게 논할 시점까지 온 사람이라면, 이미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그나마 제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없을지, 소박한 제언을 해볼 차례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첫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공감이 가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내 일처럼 생각하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어난 사건이 내 일 같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나한테 일어날법한 일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감정은 보편성을 지닌다. 드라마는 그 보편적인 감정의 공감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몰입이 불가능하고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으니 드라마가 될 수 없다. 또는, 지독히 재미없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두 번째, 로망을 충족시켜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드라마가 현실 같기만 해서는 또 재미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 옮겨놓으면 무슨 기대와 즐거움으로 보겠는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리는 캐릭터, 꿈꾸는 캐릭터일 때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때 로망은 내가 선망하는 상대이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나일 수도 있다. 여성시청자라면 멋진 남자주인공을 보면서 선망하며 사랑에 빠지고, 또 걸크러쉬한 여주인공을 보며 현실에서 내가 못 했던 용기 있는 행동과 속 시원한 복수도 꿈꾼다. 이런 지점들을 만족시켜 주어야 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세 번째, 솔직한 캐릭터를 만들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드라마를 쓴다고 생각하면 뭔가 진지해지면서 어쩐지 만든 것 같은캐릭터를 만든다. 교과서적이거나, 바른말만 하거나, 또는 잘못을 해도 금방 반성하고 마는, 몹시도 지루하고 착한 인물을 만들곤 하는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유치하게 절친을 질투하기도 하고 돈 앞에 말할 수 없이 속물적으로 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가족을 죽도록 미워하기도 한다. 인간이라서 갖는 욕망과 번민이고 또 인간이라서 적절히 가리고 숨기고 제어하며 산다. 지극히 인간적인 그 면모들을 잘 드러내면 흥미로운 캐릭터가 된다. 물론 비호감이 되거나 불쾌감만 주고 끝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입문 시간에는 굳이 강조하지 않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상이 반영된 캐릭터, 현재성이 있는 캐릭터다. 이는 작품이 단순히 재밌는 이야기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드라마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반영하는 생생함이 매력인 장르다. 2022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 고민, 그로 인한 문제의식 등이 담기지 않는다면 지금의 드라마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가장 먼저 캐릭터를 통해서 구현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데 지난 시대의 시각과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면, 당장 재미를 주는 콘텐츠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기는 어렵다.

이는 단순히 소재가 새롭거나 설정 같은 것이 신선하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케케묵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사극이어도 해석과 접근이 새로울 수 있고, AI나 미래 사회 등 첨단 소재를 다룬 작품인데 작가의 가치관이 올드해 식상할 수도 있다. 그 작품이 지금 제작되고 방영되어야 할 의미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는 나의 메시지를 담아서 이야기를 운영해가는 주체이니만큼 캐릭터를 만들 때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캐릭터 만들기는 결국 작가의 역량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로서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영원히 고민해야 할 과제, 바로 캐릭터 만들기이다.

 
 
 
글 · 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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