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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 <오마주>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 <오마주>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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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원 감독이 선배 여성 감독 홍은원에게 보내는 존경의 메시지

신수원 감독의 영화 <오마주>는 말 그대로 한국 영화 초창기 여성 감독, 홍은원(1922~1999)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오마주 homage ‘한 것이다. 오마주는 존경과 존중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원작을 빌릴지라도 패러디나 표절과는 달리 ‘존경’을 드러낸다. 타란티노 감독이 <킬빌>(2003)을 통해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3)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이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인터스텔라>(2014)를 통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존경을 보인 것 등이 대표적이다.

 

지완은 선배 여성 감독 재원을 통해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된다
지완은 선배 여성 감독 재원을 통해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된다

신수원 감독은 자신의 아바타 같은 여성 감독 지완(이정은)을 통해 선배 여성 영화감독 홍재원(김호정)의 삶과 영화를 추적한다. 이 영화의 감독 신수원과 영화 속 영화감독 지완과 재원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물의 변주로 이미지가 중첩된다. 수원과 재원(그래서인지 원명 ‘은원’에서 ‘원’만 빌렸다.) 그리고 원명 ‘은원’에서 ‘원’이 반복되며, 수원과 지완의 이미지는 옷차림과 단발머리 형태로 반복된다. 영화 속 감독 지완은 세 번째 작품을 개봉하였으나 연이은 흥행 실패로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재원은 세 편의 영화만을 남긴 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세 번째 작품을 개봉하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지완은 ‘세 번째 작품’에서 발목 잡히는 우연 때문에 불길하고 착잡하다. 재원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위해 ‘엄마’라는 사실을 숨긴 채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워킹맘이 용납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지완의 가족을 통해 워킹맘이 영화를 한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현재 진행형인지 엿볼 수 있다. 지완의 가족은 아내와 엄마의 부재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지완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기를 원한다. 아들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그리워하며, 지완은 급작스러운 시어머니 방문 전화에 화들짝 냉장고 잔반을 처리하기에 급급하다. 사면초가의 지완은 한국 영화 초창기 여성 감독 재원의 <여판사> 복원 작업을 통해 자신보다 앞선 세대 여성 감독의 애환과 열정에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여판사>(1962)는 홍재원의 실재 모델인 홍은원 감독의 동명 작품이다. 여판사(문정숙) 역시 영화감독보다 더한 마초 사회, 법조계에서 활약하는 여성 판사의 애환을 다룬다는 점에서 워킹맘의 애환과 열정이라는 같은 주제어의 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1960년대 여성판사의 고군분투가 여판사 못지않게 고충이 많았을 여성 감독의 앵글에 담겼다는 것은 텍스트 외적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와 똑같은 평행구조로 <여판사> 복원 작업을 하는 현재 이곳(here & now)을 사는 여성 감독 지완(혹은 신수원 감독)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보여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와 영화 제작에 대한 메타 영화적 자기 반영성

신수원 감독은 여성과 워킹맘에 대한 동질감과 자매애에 그치지 않고 영화 제작에 관한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반영하는 메타 영화(Meta Cinema)적 자기반영성을 보여준다. 지완이 선배 영화감독의 자취를 쫓는 과정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영화 역사, 즉 초창기 여성 편집 기사, 영사기사, 간판 제작자 등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는 여정처럼 인터뷰와 역사 퍼즐에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퍼즐까지 맞춰가는 과정은 실제 한국 영화사에 등장하는 원판 필름 재활용의 한 예시까지 제공하고 있어 마치 세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곧 폐업을 앞둔 을씨년스러운 시골 극장 한쪽에 쌓아 둔 모자에서, 모자 테두리 심지로 변신해버린 <여판사>의 필름을 힘들게 찾아내는 과정은 원판 복사할 자금이 없어 원판 수출은 물론, 원판 재활용(!)을 서슴지 않았던 가난했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원로 편집기사 이옥희가 오래된 영사기를 통해 원판 필름을 확인하고 있다.
원로 편집기사 이옥희와 지완이 오래된 영사기를 통해 원판 필름을 확인하고 있다.

<여판사>를 편집했던 1세대 여성 편집 기사 이옥희(이주실)가 부엌 후미진 곳에서 영사기를 꺼내오는 장면은 역사 속에서 뽀얗게 먼지 쓰고 있는 영화 복원 그 자체를 상징한다. 옥희와 지완이 이불 홑청을 너는 장면은 아름답고 의미심장하다. 하얀 이불 홑청은 영락없는 스크린이다. 그들은 스크린 속 배우처럼 풀 쇼트(full shot)로 잡힌다. 이옥희라는 존재로 인해 영사기와 스크린(이불 홑청), 그리고 부엌(가사노동)이 하나로 꿰어진다. 이렇게 원로 여성 영화인의 역사가 복원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여판사>의 잃어버린 필름과 음향을 복원하는 지완의 여정은 잃어버린 여성 영화인사이자, 영화 근대사의 복원과정이다.

 

낡은 극장 천정 구멍의 빛은 재원의 그림자와 대조를 이루는 영화의 상징이다.
낡은 극장 천정 구멍의 빛은 재원의 그림자와 대조를 이루는 영화의 상징이다.

그래서 전기까지 차단된 허름한 시골 극장의 뚫린 천장에서 내리쬐는 한 줄기 빛은 이불 홑청 스크린만큼이나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결국 영화는 빛과 그림자, 스크린의 예술이니 말이다. 극장 천정의 빛과 대조를 보여주는 재원의 ‘그림자’는 마치 라캉의 실재계 흔적처럼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마치 초당 24프레임이 이어지는 영화처럼, 파편적인 필름 프레임이 영사기를 통해 결국 하나로 이어지듯이 ‘허상'이 아니라 ‘실재’로 작용하여 지완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게 되며, 마침내 존경 가득한 <오마주>로 재해석 된다.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가 만든 메타 영화 <8과 ½>(1963)처럼 현실과 환상을 공존시키고 영화로 영화 얘기를 만들어 존경하는 여성 선배 감독 홍은원을 세상에 드러내고 복원시켰으니, 영화 속 지완과 영화 밖 신수원 감독은 <오마주>라는 메타 영화로 멋지게 제 역할을 해냈다. 결국 여성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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