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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2차 송환>이 시대 리듬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2차 송환>이 시대 리듬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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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다. 금새 따라가마 하고 먼저 보낸 가족이 있고, 금 새 갈 줄 알고 이곳에서 일상을 떠남 대기 모드로 전환했다. 이번 주도 비행이 안 뜬다는 공지 외엔 별다른 설명 없이 하늘 길과 국경이 막힌 채 8개월을 떠돌았다. 비록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가족이 있는 곳이기에 가야한다고 시선을 그곳에 던진 채, 몸은 가지도 못하고 정착하지도 못하고 매일의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삶은 정주도 이주도 그렇다고 여행도 아닌 ‘비일상적 일상’의 연속이었다. 매일의 오늘이 내일을 상상할 수 없고 어제와는 단절된 섬 같은 나날이었다. 마치 목적지를 모른 채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무작정 인내하면서 걷는 느낌이랄까?

 

이산

<2차 송환>은 60년 이상을 이리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는다. 떠나올 때는 금 새 돌아갈 줄 알았기에 가족과 제대로 된 이별조차 하지 않고 넘어 왔지만, 남북이 갈리면서 북에서 ‘침투’했다는 이유로 혹은 북의 편에 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감옥에서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다. 이름하여 간첩이고, 이름하여 장기수이다. 긴 복역을 마치고 나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돌아갈 줄 알고 희망을 품어보지만 이제는 떠나온 그곳의 기억마저도 희미해져 간다. 6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사람의 생사도 갈리고도 남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 곳에 두고 온 그 시절 나의 가족과 마음은 그대로라 몸과 마음 역시 남북으로 갈려 있다. <2차 송환>은 장기수의 이야기지만 장기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분단으로 인해 돌아가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정주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너무 많다. 이 땅 뿐이겠는가. 전 세계에 전쟁과 이데올로기로 흩어진 채 살아가는 이주민이 세대를 걸쳐 살아가고 있다.

 

관계

<2차 송환>은 전작 <송환>에서 만났던 그러나 송환되지 않고 남한에 남겨진 장기수 김영식에서 출발한다. <송환>에서 그는 출소 후 시골에서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고, 비인간적 고문 끝에 전향했다는 자책감을 마음 깊게 가지고 있었다. <2차 송환>에서 김영식은 서울 장기수의 터전에서 송환 투쟁을 하며 나날이 살아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텃밭을 가꾸고 여전히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한다. 영화는 김영식의 얼굴에서 시작해 그의 주변 장기수들의 모습을 <송환>에서 그랬듯 곁에서 담는다. 판단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이들과 함께 한 시간과 시대를 담는 영화는 한편으로는 김영식을 경유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주목하지 않는 장기수들을 영화로 만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장기수들과 함께 만나온 감독 자신의 자기 성찰을 담는다. 감독은 <송환>에서부터 지속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하면서 <2차 송환>을 만드는 과정과 그 속에서 발견된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함께 풀어낸다. 송환이 진행되지 않고 사회적 이슈로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 사이 영화도 지난한 여정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도 몰랐던 가족사의 비밀을 알게 된 감독은 김영식의 모습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한 개인에서 출발해 그의 주변 그리고 감독의 개인 서사까지 이어가면서, 거시적 차원에서 분단과 장기수 송환을 설파하기 보다는 이 시대를 사는 개개인의 삶 속에 분단사가 어떻게 기입되어 있는 지를 만남과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시대 리듬

2004년 제작된 <송환>은 1992년부터 10여 년 간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의 출소에서 송환까지의 연대기적 여정을 격동적으로 담는다. <송환>은 두 분의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김석향의 출소에서 시작해 그들의 정착기, 다른 장기수 진태윤, 김영식과 만남, 남북정상 만남과 남북공동선언, 송환추진, 송환까지 당대 사건사고를 역동적으로 담는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시대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2년 제작된 <2차 송환>은 같은 맥락으로 시대의 리듬은 반영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분단과 장기수의 문제에 다른 리듬을 가진다. <2차 송환>은 <송환>보다 더 긴 시간을 담고 있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를 맴돈다. 2차 송환은 끝내 일어나지 않고 이제 장기수 분들 중 다수가 생을 달리했다. 영화는 이같은 시대의 부진한 리듬을 반영한다. 촛불 이후 그 이상 뜨거울 수 없게 타 버린 것인지, 이 시대는 오늘의 당면 과제에 희노애락을 표할 뿐, 분노하지도 분노하지 않지도 않는, 싸우지도 싸우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오늘을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현실을 질료로 시대를 반영한다면, <송환>과 <2차 송환>은 지속적으로 재편되는 시대정신과 시대 리듬을 각각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2차 송환>은 이산의 영화이고, 장기간의 관계의 영화이고. 동시에 시대 리듬을 담은 영화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익숙한 명제가 영화를 관통하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김선생은 오늘도 집을 나선다.” 는 복합적인 의미를 전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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