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 꿈, 그 너머의 세계까지 <둠둠>(2022)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 꿈, 그 너머의 세계까지 <둠둠>(2022)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꿈이 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루지 못했다.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추구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현실. 우연한 계기가 간직했던 열망을 자극한다. 이번이 꿈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은 간절함이 인물을 에워싼다. 꿈을 이루기 직전 포기했던 것이라면, 간절함은 더 극대화된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인물이 꿈을 향해 내디딜수록 현실적인 문제들이 인물을 더욱 압박한다. 많은 영화의 인물들이 떠오르는 구성이지만, 어떤 꿈을 추구하고, 어떤 현실을 마주하는지는 영화마다 다르다. <둠둠>(2022, 감독 정원희)의 주인공 윤이나(김용지)도 내려놓았던 꿈을 향해 재도전하는 인물이다. 그 도전에는 이나가 생각하는 이유가 있고, 그로 인해 거미줄은 더 복잡해진다. 영화는 독특한 사운드와 인물 구성으로 이나만의 거미줄을 표현한다.

 

현실의 소리

이나는 캐피탈 회사 CS팀에서 비정규직 상담원으로 일하는, 미혼모다. 딸 지안이를 직접 키우기 어려워서 위탁 가정에 맡겨 두었는데, 위탁모(안민영)는 더 이상 아이를 돌봐주기 어려워서 입양을 서두른다. 이나는 엄마(윤유선)를 설득해서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데, 엄마는 이나가 아이를 낳는 것을 반대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이나가 현재 바라는 것은 아이를 데려와서 직접 키우는 것이다. 엄마로부터 수시로 걸려 오는 핸드폰 진동과 알림 소리, 회사 사무실의 자판치는 소리, 상담 콜 알림 소리, 교회에서의 이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나가 피하고 싶은 소리이며, 불편한 현실을 표현한다. 일상에서 이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리는 딸 지안이의 옹알이 소리일 것이다.

 

꿈을 향한 소리

이나는 길을 가다가도 음악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멈춘다. 이나가 꿈꾸는 것은 테크노 음악 DJ이다. 한때는 이나도 잘나갔던 DJ였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서 클럽을 떠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과거 이나와 함께 일했던 DJ크릭(민기, 김진엽)을 우연히 만나고, 어느새 성공해버린 민기의 모습에 이나는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낸다. 마침 한국보다 미혼모에 대한 복지제도가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독일, 베를린 컴페티션이 열린다는 소식에, 이나는 지안이를 데리고 독일로 갈 수 있기를 꿈꾼다. 그렇게 엄마의 곁을 떠나고 싶다는 목표도 함께 얽힌다.

 

충돌

이나는 음악을 향한 꿈이 지안이를 키우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엄마의 모성에서는 분리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모성은 꿈을 통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베를린 컴페티션에 대한 이나의 간절함은 그래서 더 강해진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음악을 듣고 곡을 써야 하는데, 이나의 현실은 이나를 압박한다.

둠둠. 이나의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쾅쾅. 엄마가 벽을 때리는 소리에 삼켜진다. 엄마는 이나가 하는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표현할 만큼 반대한다. 그 음악을 하면서 남자를 만나 미혼모가 되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둠둠. 회사에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는 이나. 미혼모라는 이유로 재계약에서 배제될 위기여서 일을 해야 하지만, 헤드폰을 벗으면, 늘 그랬던 것처럼 자판치는 소리, 상담 소리, 핸드폰 진동 소리, 상담 콜 알림 소리들이 이나의 귀를 질식하게 한다. 결국 이나는 회사에서 뛰쳐나온다.

 

세 명의 엄마

영화는 세 명의 엄마를 내세워 미혼모로서 갖는 이나의 내적 결핍을 더 압박한다. 이나의 엄마, 위탁모, 그리고 교회 신도인 태국 여성이다. 이나의 엄마와 위탁모는 이나가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인물이고, 태국 여성은 이나의 현재를 반성하게 하는 인물이다.

이나의 엄마는 지진 사고로 추정되는 일로 남편을 잃고 싱글맘으로 이나를 키웠고, 그래서 이나의 안전에 매우 집착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혼자서 연장을 들고 집 지하에 대피소를 만들 정도다. 이나가 자기처럼 싱글맘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며, 이나의 출산을 반대했다. 엄마는 이나의 몸과 마음에 묻은 얼룩을 지워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이나는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떠나듯이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위탁모는 지안을 입양 보내지 않은 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이나의 엄마에게 비난받고, 지안이를 입양 보내는 것을 망설이는 이나에게 엄마를 닮아 가냐며 비판한다. 이나는 입양모에게 엄마와 자기는 다르다며 발끈하지만, 진실을 찔린 듯한 느낌이다.

태국 여성은 태국에 두고 온 딸을 찾으러 가려 한다. 자신의 엄마에게 어린 딸을 맡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지진 재해로 엄마가 돌아가셨고 혼자 남은 딸이 위험하다고. 이나는 자신과 지안의 미래를 태국 여성과 딸의 현실에 비추어 남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조력하는 경쟁자

민기와 준석(박종환) 두 사람 모두 이나를 도와주지만 동시에 라이벌이다. 이나의 아빠도, 지안의 아빠도 부재한 현실에서 영화 속 두 남자는 이나에게 중요한 존재다. 베를린 컴페티션을 도와주는 민기는 과거에 이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친구였지만 현재 잘 되었고, 준석은 예전에도 지금도 이나보다 실력이 좋은 오빠이며 조력자다.

민기와 준석을 통해 이나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민기는 이나가 출산을 하기 위해 디제잉 계를 떠났을 때, 이나의 곡을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라고 발표했다. 준석은 베를린 컴페티션 참가곡에 조언하는데, 준석 역시 컴페티션 참가자이기 때문에 이나는 그를 경쟁자로 생각한다. 민기가 자신의 곡을 도용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나는 “나랑 준석오빤 잘 되려구 너 같은 짓은 안 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컴페티션에 꼭 붙기를 바라는 이나는 준석을 떨어뜨릴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된다.

 

새로운 거미줄

이나는 순수하게 디제잉과 무대가 좋은 사람이다. 음악만 하고 살려는 게 죄가 되는지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나는 꿈을 향한 도전에 ‘엄마를 떠나서 지안이를 키우기 위해’라는 명분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나에게는 음악보다도 그 명분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느껴진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왔는지, 지안이를 입양 보낸 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를 겪은 이나는 다른 선택을 한다. 컴페티션 무대에서 이나는 현실의 사운드와 꿈의 사운드를 조합한 음악을 발표한다. 그리고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이나는 실력을 인정받지만, 꿈과 현실을 결합한 또 다른 거미줄을 만들만큼 성장했다. 이나에게 이제 컴페티션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게 된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얻어낸 이나에게 앞으로의 시간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