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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마주>의 영화적 순간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마주>의 영화적 순간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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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드물지만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서사 중심의 극영화의 경우는 보다 드물게 그런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그 드물고도 드문 순간이 존재한다. <오마주>는 감독의 체험을 바탕으로 중년의 여성 감독 지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더는 영화 만들기가 힘든 상황에서 “의미있는”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는다.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를 복원해달라는 것이다. 지완은 소실된 <여판사>의 필름 일부를 찾기 위해 연관된 사람들과 공간을 찾아 나선다. 영화에 대한 영화 이야기로 영화는 홍은원 감독에 대한 오마주이지도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오마주>에서 ‘영화적 순간’은 서사나 주제로 인한 것만이 아니다.

<오마주>는 가정을 가진 중년의 여성 감독이 ‘꿈’을 가지고 ‘영화 만들기’를 지속한다는 한 줄 요약이 구체적인 삶에 어떻게 놓여있는 지를 다층적이고도 섬세하게 담는다. 중년의 나이듦에서 오는 신체의 변화, 주변에서 목도하는 (비)자발적 죽음들, 경제 활동과는 다소 무관한 영화라는 꿈을 쫒으며 어머니이자 아내로 산다는 것, 더 이상 영화 만들기가 어려운 산업 현장, 사라진 영화와 사라져가는 영화인과 사라져가는 오래된 극장들, 과거의 소실된 자료를 복원하기 위한 발로 뛰는 여정들, 그 속에서 과거 선배 여성 영화인의 흔적과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을 엮여 영화는 리얼하고도 풍성한 결을 만들어낸다. 각자 모두 묵직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지만 영화는 무심한 듯 가볍게 이를 일상적 단상으로 풀어내면서, 관객의 현실과 접속하게 한다. 이는 스크린 속 세상이 스크린 안 세계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영화 밖 우리의 삶과 직관적으로 접속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영화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특히, 영화는 세 장면 (어쩌면 한 장면으로 통합될)을 통해 근사한 ‘영화적 순간’을 담는다.

 

장면 하나 - 빛

지완이 물어물어 당시 <여판사>를 상영했던 오래된 극장을 찾아간다. 극장을 처음 찾아갔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고, 더구나 다음 달 철거를 앞 둔 터라 불이 들어오지 않아, 지완은 다음날 밝을 때 혼자 극장을 찾는다. 극장은 어둠만 있어도 빛만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영사기에서 쏘는 한줄 빛을 등지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곳이다. 극장 관람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과 함께 보았든 오롯이 혼자만의 관람이다. 어둠과 빛, 집단과 개인의 조화 속에서 극장은 공간이기도 하고 대상이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철거 직전의 극장으로 들어선 지완은 천장에 구멍이 나서 어두운 극장에 한줄기 빛이 쏟아지는 순간을 만난다. 그리고 극장 앞 스크린에서는 극장 밖 도로의 그림자가 비춘다. 스크린에 담긴 것은 그림자라는 환영이기도 하지만 실재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장면 둘 - 필름

지완이 마침내 <여판사>의 필름 일부를 극장에 묵혀둔 모자들에게서 발견한다. <오마주>에서 모자는 특별하다. <여판사>를 만든 홍은원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고, 쇠락한 극장과 극장주의 잔해이기도 하고, 지완이 필름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꿈을 쫓는 피터팬의 모자이자 모험과 사랑을 주선하는 헤르메스의 모자가 연상된다, 지완은 모자 속에서 필름을 모두 챙겨들고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 그 천장에 구멍 뚫린 곳에 서서 필름을 살핀다. 영사실에서는 다른 빛이 흘러 스크린을 비추고 있지만, 지완의 모습을 살피던 영사 기사는 곧 영사기 빛을 꺼서 구멍 뚫린 천장의 자연의 빛으로 지완이 필름의 네가를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렇게 지완은 혼자 극장에서 그녀가 찾던 필름과 오롯이 대면한다. 어둠과 빛, 필름에 대한 <오마주>만의 오마주이다.

 

장면 셋 - 그림자

마침내 지완은 “의미있는 일”을 완수하고 복원된 필름을 상영하는 날이다. 이 장면은 그동안 엄마의 영화가 재미없다고, 꿈을 쫓는 사람 곁은 외롭다고 툴툴대던, 국문과 아들의 쉼보르스키의 시 낭송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영화와 시,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 스크린 안과 극장을 이어낸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빈 스크린에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그림자를 담는다. 플라톤의 동굴이 연상되기도 하고, 그동안 지완이 벽에서 만난 홍은원의 그림자가 소환되기도 하면서 영화는 극장과 스크린과 관객을, 그리고 이 시대 여성감독과 당대 여성감독을 이어낸다.

세 장면은 “극장”이라는 공간에 머문다. <오마주>는 그런 의미에서 한때 영화와 동일시되었던, 그러나 지금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장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지완은 수영으로 25미터를 완주하면 자신의 영화가 20만이 넘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감독의 페르소나 지완은 유연하게 물 속 수영을 한다. <오마주>는 20만이 넘었을까? 그래서 네 번째 영화로 발돋움하게 됄까? 아니 될까?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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