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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빈 이후
토빈 이후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2.02.13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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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窓)

1997년 우리 신문은 금융거래에 관한 세금 문제를 공론화했다.(1) 금융거래는 당시 연간 세계 총생산의 15배였다. 지금은 70배에 달한다. 15년 전만 해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유럽에서는 아무도 ‘소브린 리스크’(국제대출에서 차주가 정부 또는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일 경우 동 차주로부터 발생하는 채권 회수상의 위험도를 일컫는 말)가 닥칠 줄 상상조차 못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에 홀려서 대다수 유럽 사회주의자들은 단지 ‘금융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빌 클린턴은 저축은행이 고객 돈을 이용해 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는 미 연방준비위원회의 (앞으로 큰 재앙이 될) 정책에 찬사를 보내며(2) 미국식 모델에 도취됐다. 그래서 프랑스식 서브프라임모기지를 꿈꿨다.

1997년에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토빈세는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나 잘나가고 있었다. 프랑스의 재정경제부 장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단번에 실행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당시 야당 의원이던 사르코지는 단언했다. “토빈세 이야기는 비상식이다. (중략) 우리나라가 부의 창출을 징벌할 때마다 다른 나라의 부의 창출을 돕는 것이다.”(3)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는 재경부 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에게 증권거래세 폐지를 맡겼다. 현 IMF 부총재이기도 한 그녀는 이렇게 정당화했다. “금융거래지로서 파리의 매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경고도 곁들였다. “오래전 비슷한 세금을 폐지했던 외국에서부터 일련의 규제가 시행될 수도 있다.”(4)

이후 벌어진 금융 사태는 금융 덤핑을 남발하며 ‘금융 혁신’을 이용하려 했던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확인시켰다. 국가들은 그런 은행들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구원했다. 오히려 은행들은 더욱 큰 이익을 누렸다. 그럼에도 금융권을 제어할 어떤 정책도 내놓지 않고, ‘돈의 왕’에 반대해 말잔치만 요란할 뿐이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극보수 공화당 후보들조차 요즘 월가의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에 대해 “당신의 회사 돈을 모조리 벗겨먹고 부도를 낸 뒤 수백만 달러를 들고 떠난다”고 질타한다.

그러니 임기 4개월을 남겨두고 사르코지가 “금융권이 야기한 손실을 복구하는 데 금융권도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금융거래세의 ‘비상식’은 잊히고, 투자의 황금알을 외국에 뺏길 수도 있다던 위험은 날아가버렸다.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일갈했듯이, 우리 역시 ‘금융 톱니바퀴에 모래를 투척’하는 데 만족하는 것으로 계속 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은 중요한 공공재이고, 이를 쥔 금융 주주들이 공동체를 볼모로 삼을 수 있음이 명백한 만큼 우리도 진일보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들이 사적 이윤에 종속되는 것을 멈추라고 요구해야 한다.


/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남극보호연합(ASOC) 동아시아 지부 담당.


(1) 1997년 2월호 Ibrahim Warde가 쓴 ‘토빈세 프로젝트, 어둠의 투기꾼‘(Le projet de taxe Tobin, bête noire des spéculateurs)과 1997년 12월호 Ignacio Ramonet가 쓴 ‘시장, 무장해제’(Désarmer les marchés) 참조.
(2) 2004년 6월 23일 <Les Echos>에서 “하나의 모델을 취해야 한다면 앨런 그린스펀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3) 1999년 6월 7일 <France2> 방송 인터뷰.
(4) 2007년 11월 23일 상원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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