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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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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자기소개를 한다. 대개 이름과 하고 있는 일 정도가 소개일 텐데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망설인다. 나란 인간이 이 몇 단어로 소개가 될까?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 나의 일들을 대체 뭐라 말해야 할까? 이즈음 되면 벌써 자기소개는 엉켜버린다. 자기소개는 자고로 간단명료하게 나를 전하는 말일 터인데, 그게 쉽지 않은 나란 인간과 나란 인간이 하는 일은 첫 만남인 소개에서부터 힘이 빠진다. 그럼에도 애써 나를 열심히 소개해보지만 내 말을 다 들은 상대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응대를 하거나 엉뚱한 물음을 되돌린다. 이 때 나는 다시 한번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어쩐지 이 소개가 나처럼 그리 간단명료하지가 않다. 마을. 방과후. 교사.의 조합이 각각의 단어가 품은 통상적 의미 보다 포괄적이고 확장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열심히 말했으나 결국은 “그래서 무슨 일 하시는 돼요?” 혹은 “무슨 과목 가르치시는 돼요?” 라고 되묻던 이들에게 시간을 두고 자분하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라고 말을 건네고 하는 일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숱하게 되물은 마을 방과후 교사가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문과 사유의 성찰 보고서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일인칭으로 나를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런 나 자신을 내가 관찰하듯, 일인칭 나의 내레이션과 관찰적 시점을 견지한 영상을 공존시킨다. 나아가 영화는 한쪽은 소개하는 자를 향하고 다른 한쪽은 소개 받는 자를 향하는 쌍방 말걸기를 시도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3년간의 도토리마을 방과후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도 않고, 특정 사건을 구축하지도 않으면서, 도토리마을 방과후 터전의 모습을 미학적 과장법 없이 있는 그대로 담는다. 굳이 주인공을 꼽아야 한다면 터전 자체가 아닐까? 여기서 터전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고, 아이들과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만든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런 터전의 눈높이에 맞춰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스며들듯 담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대상이 대상 그 자체로 미세하지만 스스로 드러나도록 돕는 역할을 자임한다.

별다른 일이 없는 일상이 행복임을 안다면, 그러나 우리네 삶이 결코 별다른 일이 없을 수 없음을 또한 안다면, 영화가 견지한 ‘별일 없는 일상’과 코로나로 인한 ‘비일상의 일상’을 담은 실상(實相)의 리듬이 영화와 삶 사이 장막을 축소하기 위한 작업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삶의 반복과 변주와 흐름을 터전의 일상 속에 함께 녹여내면서 전체로 환원되거나 특정한 무엇으로 엮어낼 수 없는 미세한 부분들을 통해 마을 방과후 교사를 소개하고 관찰하고 그리고 조용하고 선명하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은 이들의 자리를 일깨운다. 지금까지 교육을 다룬 재현의 장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이들만의 무늬를 그려낸 것이다.

“나는 학교가 아닌 마을에 있는 교사이며, 배움의 주체는 아이들이고 배움의 대상은 일상이라고 믿는 동료들과 일합니다. 나는 매일 아이들과 만나며 일상에서 그들의 삶이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도록 질문하고 또 고민합니다.”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중.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일상적이지만 미세한 의미를 품고 있다. 터전 공터이자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에서 시작한 오프닝은 이들이 더 이상 뛰어놀지 않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표면적으로는 터전이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줄고 밖에서 뛰어 놀지 못하는 상황을 담고 있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아이들 뒤편에서 옆쪽에서 마을 방과후 교사들이 ‘함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맘껏 신나고 안전하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이 함께 있어야 하고, 그 어른은 아이들을 전면에서 이끌기 보다 뒤에서 보호하는 동시에 곁에서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 영화는 내내 오프닝 장면의 이 지점에 초점과 균형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의 일상과 이들의 뒤에서 옆에서 함께하는 방과후 교사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돌봄과 교육, 가치와 직업, 제도와 실험(적 실천) 사이에서 고민하고 성장하는 어른의 모습도 담는다.

영화로 마을 방과후 교사의 삶을 체험하다 보면, 영화는 마을 방과후 교사를 알리는 동시에 위로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진정한 위로는 따뜻한 말이나 토닥거림이 아니다. 실상을 제대로 알고 곁에서 그런 나를 이해하고 있을 때 위로를 받는다. 위로 받는다는 것은 이해 받는 것이고, 이해는 제대로 된 앎과 인식을 바탕으로 가능하다. 영화는 마을 방과후 교사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이들의 일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래서 이해를 바탕으로 위로를 건넨다. 인식과 정서는 이렇게 서로 닿아있다. 1월 11일 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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