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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연호의 문화톡톡] 대안영상예술 2: 운동-감각-기억으로서의 동영상, 그리고 기원
[김장연호의 문화톡톡] 대안영상예술 2: 운동-감각-기억으로서의 동영상, 그리고 기원
  • 김장연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20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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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운동-감각-기억를 통해 신체 내부와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시네마의 출현은 운동-이미지의 시작을 알린 애니마(anima) 장치들을 뛰어넘는 운동-이미지 기계로 인간의 뇌 기능을 확장시켰다. 숭고한 신의 세계를 재현한 회화 이미지와 그를 흉내내는 모방(미메시스 mimesis) 세계일 뿐인 인간계는 그렇게 예술을 통해 다다를 수 없는 원형을 끊임없이 재현해왔다. 사진 기계가 모방이 아닌 실재의 어느 '찰나'를 포착하는 순간, 예술에서는 신의 죽음을 알리고 범접할 수 없었던 시간-이미지의 영역을 열며 더 다양한 시네마 장치가 발명되게 된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활용되고 있는 '영화(映畫, 비칠 영, 그림 화)'라는 용어에는 '움직임'의 의미가 빠져 있다. 그렇기에 영화 용어에는 회화 이미지 사유에 머물고 있는 듯한 인상이 깊다. 어느 누군가는 영화라는 용어에 이미 '움직임'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추정하지만 이 부분과 관련하여 사료에 근거한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면 될수록 그 특징을 짧게 표현하는 줄임말이 등장하곤 한다. 오늘날 활용되고 있는 치맥(치킨과 맥주),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상(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최애(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모션 픽쳐Motion Picture,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e도 줄여져 Kinema, Cinema, Movie 등으로 오늘날 활용된다. 용어가 줄어들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남는데, 시네마, 무비 역시 to movie(움직이는 것)의 의미를 갖고 있는 'kine-'가 중심이 되서 사용되고 있다. 즉, 모션 픽쳐에서 중요한 특징은 '픽쳐'가 아니라 '모션'이고, 시네마토그래피에서 중요한 특징은 '그래피'가 아니라 '시네마'였던 것이다.

'움직임'의 용어가 사라진 영화의 용어는 당시 대한제국에서 활용되었던 '움찍사진'과 같은 '움직임'을 포착했던 대한제국 관객들의 운동-감각적 사유를 외면한 것이다. 오늘날 자연스럽게 gif, 숏 폼과 같은 움직이는 짧은 이미지를 '움짤'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보면 과거 시각을 통해 운동-감각을 언어화한 '움찍사진'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렇기에 키네마, 활동사진((活動寫眞), 움찍사진에서 갑자기 '움직임'이 탈각된 '영화'로 변용된 상황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디지털로 수치화되고 데이터화되어 '콘텐츠'로 호명되는 상황에서 '영화'의 범위에서 가상 이미지의 '움직임'은 운동-감각-기억이라는 뇌의 확장과 연결되는 제거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촬영된 필름으로 제작된 움짤 사진

언어는 오랜 기간동안 공동체의 문화, 환경, 기후, 생활양식 등 공동체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얼'이 담긴 그릇으로 언어를 통해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공동체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그림자, 거울 속의 이미지, 강물에 비치는 사물들 등 가상 이미지를 어떻게 사유했을까? 한국인들은 영화 이전의 가상 이미지를 어떻게 언어화했을까? 남기웅(2020)은 다양한 고증을 통해 한국인이 시각문화에서 가상 이미지를 '영상(影像)'으로 언어화하여 폭넓게 사유했음을 제기한다. 고대부터 활용해 온 '영상(影像)'이라는 용어는 "빛에 의해 투사된 형상(iii)"이란 개념으로 이 용어 자체에 이미 "미적 감각(iv)"이 투영되어 있음을 밝혀 나간다. 근대문화를 받아드리며 '영상(影像)'에서 '영상(映像)'으로 용어가 변용되면서 '영상(影像)'의 역사성이 탈각된 채 '서구 또는 일본'에서 유입된 오늘날의 '영상(映像)'으로만 '환영들'을 사유해야만 했던 식민지 프레임에서 벗어나 가상 이미지에 대한 고사료를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칠실관화설(정약용, 여유당전서)(출처 YTN 사이언스, 검색일 2023년 2월 20일)
칠실관화설(정약용, 여유당전서)(출처 YTN 사이언스, 검색일 2023년 2월 20일)

활동사진이란 용어에서 '사진(寫眞)'의 유래 역시 <한국사진사 1631-1945>(1999, 최인진(1941~2016))와 같은 연구물에 의해 식민지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진(寫眞)'의 용어와 함께 1630년경으로 한국사진사의 기점을 시간적으로 확장하여 더 자주적으로 풍부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시문집(산문) 10권)에 기재된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은 조선의 카메라 옵스큐라의 기록으로 실학자들 사이에 사진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짚고 있다. 이후 이동형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기록으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영법변증설(影法辯證設)'이 있다. 그는 “그림자란 사물의 그늘이다. 공, 밝음의 반대이다. 물상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또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로 영법변증설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움직이는 모든 그림을 동영상(動映像, moving image)으로 부른다. 한자 문화권에 있기에 한자로 문자화한다면, 동영상의 '映'을 '影'으로 전환하여 과거의 영상미학을 전승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동영상(動影像)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오늘날, 가상현실이 일상화되고 있다.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가상현실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가능성은 끊긴 기나긴 통로, 단절된 과거로부터 탐색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풍성한 동영상(動影像)의 운동-감각-기억에 관한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는 여정들이 환영받기를 바란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시문집(산문) 10권) 보러가기

 

글 · 김장연호
문화학 박사. 한예종 객원교수.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대외협력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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