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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의 문화톡톡] 전통춤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 구성을 위한 시론
[김기화의 문화톡톡] 전통춤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 구성을 위한 시론
  • 김기화(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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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춤에 대한 시선(視線)

전통춤은 현재 연행되는 예술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의 유물과 같은 고정된 시선이 작동한다. 한정된 예술 양식으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국악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보존에 대한 가치 인식조차 부족한 상황이라 변화와 창조를 통한 계승은 소수 전문가의 몫이 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국악이나 전통춤이 현대인의 생활 범주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예술을 당대 예술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사회집단이 공감하고, 동시에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생활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 기반이나 구조가 변화된 상황에서 전통예술은 양식성에서 드러나는 시대적 간극(間隙)을 극복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지점은 연행을 담당하는 현장 예술가들만 떠맡아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전통예술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고, 이에 대한 일반 대중의 올바른 가치 인식을 통해 형성되어야만 발전을 위한 새로운 예술적 패러다임이 구성될 수 있다.

 

2. 전통춤의 사적(史的) 위상

우리의 전통춤은 최소한 조선 후기나 근대 이전까지의 춤 유산을 지칭한다. 전통춤은 봉건사회가 근대의 자본주의사회로 이행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강제된 서구문화가 수용되자 전통춤은 지속된 문화 전승의 경로에서 이탈되거나 분리되었다. 근대화로 유입된 서구 예술 양식은 이식(移植) 되자마자 엘리트들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전통춤에 대한 사회집단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민간의 춤은 전통사회의 기층문화로 구성되어 대부분 느린 것, 뒤떨어진 것,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설자리를 잃은 전통춤 전승자들은 발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장르 유지에만 급급하였다. 생존을 위해 유랑하며 자신들의 기예를 팔아서 살거나, 스스로 은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970년대 80년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주도했던 세대, 계급, 성별, 지역을 망라한 민족 공동체 담론이 한반도에 집회문화로 뜨겁게 달구면서, 전통춤을 비롯한 풍물, 탈놀이, 등의 전통예술은 실천문화의 표본으로 집회 예술의 꽃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재 대다수 사회구성원의 공감대를 구성하는 일상생활의 범주에도 속하지 못하였고, 현대예술의 범주에도 편성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사회체육이 큰 이슈로 떠오르자 전통춤도 이와 궤를 같이하여 도래하는 평생학습 시대에 편승하게 되었다. 전통춤은 사회교육 기관이나 지자체의 공적 기관에서 전통문화 강좌의 하나로 개설되어, 마침내 사람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문화 요소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사회적 공감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었다.

 

3. 전통춤 마니아(mania)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1990년대부터 전통춤 교육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마니아(mania)층을 구성하며 전통춤은 사회집단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구성하게 되었다. 주부층으로 확장된 전통춤 교육이 30여 년간 지속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 층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주부들은 춤추는 몸에 몰입하고, 신체의 리듬을 생성하며 풍요롭고 자유로운 신체적 해방감을 맞이하였다. 이제 춤을 추는 주부 K씨는 황혼의 여정에서 춤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일상의 외출이 가능해졌다.

 

4. 전통춤 전승자의 새로운 위상

춤 교육을 통해 전통춤의 전승 토대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국가의 정책적 변화가 맞물리며 전승자의 위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문화재청이 그동안 한정적으로 제한했던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을 시도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으로 확대하자 전통춤의 맥을 힘겹게 지켜가던 전승자들은 인간문화재 반열에도 오르게 되었고, 이수자를 양성하면서 하나의 유파(流派)를 구성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간 사회적으로 냉대 받았던 전통춤 전승자들이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당당히 예술가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배출된 춤꾼들이 유파 구성에 합류하면서 춤꾼의 역량이 강화되었고, 춤의 외적 양식이 한층 세련되게 변화되었다.

 

5. 전통춤 전형

전통춤의 인식 변화로 인해 사회적 위상이 한층 명확해졌다. 하지만 전통춤의 양식에 대한 고정된 틀은 현대예술의 지형에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가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독려하는 문화의 하나로 전통춤의 위치를 존중하더라도, 전통춤이 전통문화의 범주에서 발생하였듯이 현대문화의 범주에서 새로운 양식적 담론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최근 국가의 문화재 보존 방침도 ‘원형’에서 ‘전형’으로 전환하고, 그것의 변용을 통한 문화적 진화를 독려하고 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으나 전통춤 학술연구자와도 협업하여 전형에 대한 학술적 담론을 함께 구성하고, 연행에 필요한 미학적 논의도 개진해야 한다. 그동안 시대적 격변기를 통해 춤의 외적 꾸밈만 성(盛)해서 그 바탕을 상실했다면, 바탕과 꾸밈이 겸비되고 감정과 형식이 모두 풍성할 수 있도록 전통춤은 당대의 예술 미학으로 재론(再論) 되어야 한다. 전통춤은 정제(精製)의 과정을 통해 왜곡된 꾸밈을 덜어내고 성립 당시 구축된 본질적인 춤의 원리나 특성을 전형으로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2022 송년공연 임인진연 (사진제공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무용단 2022 송년공연 임인진연 (사진제공 국립국악원)

 

6. 전통춤 패러다임(paradigm)의 재론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2022년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포스터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2022년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포스터

공연의 현장에서도 전통춤의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약하나마 시도되고 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등 전국의 국·시립단체들의 전통춤 공연도 아트-테크놀로지의 다양한 매개를 활용하여 전통춤 해석을 위한 무대 아이콘을 확장하고 있으며, 전통춤 해체를 통해 본질적인 신체의 동력을 미니멀(minimal) 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열악한 재정 여건을 극복하며 스토리텔링으로 공연을 진행하거나 춤의 해설로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통춤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무용단  2022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한국문화재재단 무용단  2022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한국문화재재단 무용단&nbsp; 2022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br>
한국문화재재단 무용단&nbsp; 2022 기획공연 ‘처용나례희’ (사진제공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다양한 노력들이 다발적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이보다 우선하여 전통춤의 유파적 전형 특성을 구축하고 공론화하여 당대의 미학을 담아 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현대의 다변화된 사회에서 조직화·계열화의 논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춤은 명확한 논의를 통해 한층 더 단단해져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코로나로 인한 공연계의 휴지기가 전통춤 재정립의 호기(好期)가 될 수 있다. 우리 전통춤을 애정(愛情) 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성찰하고 열린 사고로 다가선다면 전통춤의 변화를 끌어낼 것이다. 우리 선인들이 풍류(風流)를 통해 세상을 조화롭게 한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도 넉넉하게 마음을 내고 우리의 춤을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졸고를 마친다.

 

 

글 · 김기화(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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