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인간보다 인간을 더 사랑한 뱀파이어? ... "판타지 소설의 새로운 세계관"
인간보다 인간을 더 사랑한 뱀파이어? ... "판타지 소설의 새로운 세계관"
  • 박지수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턴기자
  • 승인 2023.02.17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간] 『푸른 사과의 비밀』
『푸른 사과의 비밀』 1, 2권이 동시 출간됐다.
작가: 아르망
출판사: 이야기동네
가격: 각 16,500 원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존재들이 우리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아주 가까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디에선가 인간과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판타지 소설 『푸른 사과의 비밀』 1,2권이 2월 동시 출간됐다. 아득한 과거에서 시작된 동화, 혹은 비밀리에 떠도는 미신이나 전설처럼 전해져 온 합정동 절두산 기슭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인간보다 인간을 더 사랑한 뱀파이어, 파스칼이 보여주는 그의 삶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의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거대하고 따뜻한 세계관

고등학생 민주의 시선에서 본 이 세계는 얼핏 가볍고 발랄해 보인다. 독자들은 이 어린 소녀를 따라 학교 안팎을 오가며 사랑과 우정, 뱀파이어의 신비를 경험한다. 이렇게 마법 같은 세계를 누비다보면 이 이야기가 실상 무겁고, 중대하며 놀라운 메세지를 담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파스칼과 그의 동료들은 우리가 익숙하고 친숙하다 느끼는 흔한 뱀파이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살인과 흡혈을 하지 않고, 비건을 지향하며 삶과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뱀파이어라니.

우리는 그들이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또한 작가가 펼치는 광활한 세계관 또한 단지 뱀파이어만의 것은 아니다. 뱀파이어와 인간은 확연히 다른 존재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의 평화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만연한 행복까지도 구하려 힘쓰는 그 광대한 목표가 곧 독자에게도 이른다.

그들은 초고층 빌딩 건축으로 위기에 처한 나지막한 골목길의 길냥이와 강아지들, 비둘기, 그리고 낮은 돌담의 꽃과 나무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또 인간들을 물지 않기로 다짐해 뜻을 모으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누구도 반발하거나 소리치거나 이기적인 욕심에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문장 한 줄 한 줄에 담긴 밝은 기운과 인물들의 긍정적인 힘은 우리에게 조금 더 맑고 생기 있는 내일을 꿈꾸게 만든다. 어디선가 파스칼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설렘과 함께, 레몬 향을 맡는다면 분명히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될 우리를 기대한다.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뱀파이어의 행동강령인 ‘망원동 선언문’은 글을 읽는데 중요한 방향키가 된다. 마치 인물들의 정체성이 살아 꿈틀대는 기분이다. 파스칼이 양화대교에서 떨어지려는 민주를 구한 순간도 그렇다. 그들은 민주를 만나기 이전부터 사랑이 충만했으며 상처받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던 존재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뱀파이어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민주가 들어온 것이 아닌, 민주의 일상에 인간계에서 느껴보지 못하고 못할, 특별함을 마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 잊고 있었지, 싶을 때쯤 다시 한 번 깨우쳐주는 선언문의 내용은 여실히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들은 결코 인간의 혼과 정신을 잡아먹지 않으며, 살점과 피를 탐하지 않고 쓸데없는 욕심과 과오로 남을 이기심이 없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평화로 향하는 징검다리

그들이 강령을 지키며 평안을 도모하는 일은 단지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을 구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와 뱀파이어들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아주 중요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우생학을 앞세워 돈을 버는 병원을 처단하고,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소수자인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며 ‘공감력 증강 팀’을 만들어 위로가 필요한 약자들을 돕고...

푸른 사과라는 매개체는 어느새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 거듭되는 혼돈과 방황을 바로잡는다. 인간계에 만연한 불신과 배신의 마음은 씨앗을 심어 사랑으로 충만케 하라는 신의 말씀대로 점차 사라져간다. 민주와 뱀파이어들은 동물들의 아픔도 어루만진다. 개와 고양이, 참새, 강 속의 물고기까지 크고 작은 생명체 모두에게 그들의 사랑을 베푼다. 그렇게 베어 문 푸른 사과는 얼마나 달콤할까. 환희의 즙이 물씬 배어나는 사과의 맛에 나는 탄성을 지른다.

사실 뱀파이어들은 늘 피어있는 들꽃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공존했는지도 모른다. 골목길을 거닐다 마주치거나 바쁜 출근길에 슬쩍 곁을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파스칼, 니콜라, 셀린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열심히 딱정벌레 차를 몰며 인류의 미래를 구하려 수없이 애쓰는 중일까.

작가 아르망은 글을 쓰는 것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기도 했다고 말한다. 어떨 때는 민주와 파스칼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니콜라, 셀린, 루즈, 쇼브이기도 했다고. 꿈과 현실의 교착점에서 인간계 너머의 생명체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자주 즐기는 아르망의 글이, 또 <『푸른 사과의 비밀』이라는 첫 과실이 두고두고 뿌릴 씨앗을 기대하며 또 다른 민주가 될 나와 우리를 상상해 본다.

 

글 · 박지수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