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노 마스크 시대,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관객들
노 마스크 시대,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관객들
  • 윤필립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28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영화는 정말 죽었을까?

일반적으로 성공은 모험을 이끈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 말이 적어도 2000년대 초반 대기업의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영화가 다시 한 번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을 때만 해도 유효했다. 그리고 팬데믹 직전까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게만 보였다. 자본은 한국 영화의 규모를 확대시켰고, 그에 따라 한국 영화는 볼거리를 중심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에 얹힌 다채로운 이야기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인하기에 충분했으며, 동남아와 미주를 중심으로 해외로까지 확장된 국내 영화 배급망을 통해 한국 영화는 해외 현지 관객들에게도 차츰 매력적인 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염병 사태의 정점에 터진 <기생충>(봉준호, 2019)의 오스카상 수상 낭보. 이렇게 한국 영화계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영화 <바빌론>  스틸컷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런 축제는 딱 거기까지였을 뿐이기에 당시 한국 영화계에 퍼진 상기된 기운은 마치 신기루나 일장춘몽처럼만 느껴진다. 그 사이 다양한 오티티(OTT) 플랫폼이 감염병 사태로 집에 발이 묶인 관객들을 유인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영화관 중심의, 이른바 ‘극장 영화’의 죽음을 우려하며 <바빌론>(데이미언 셔젤, 2023)의 메시지처럼 영화의 동시대적 정체성과 그 역할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엔데믹을 지나 노 마스크 시대에도 도무지 극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요지부동의 관객들 앞에서 한국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연 그런 죽음을 피하려면, 지금부터 한국 영화는 어떤 모험을 시작해야 하는가?

 

직시와 공감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노 마스크로 실내 취식까지 가능해졌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수는 감염병 사태 이전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물론 <범죄도시 2>(이상용, 2022)가 한국 영화의 상업적 대성공의 지표로 자리 잡은 천만 관객 동원을 이끌었고, <공조 2: 인터내셔날>(이석훈, 2022)이 명절 대목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상회하며 엔데믹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외계+인 1부>(최동훈, 2022),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2022), <비상선언>(한재림, 2022) 등 이른바 ‘큰 영화’들의 저조한 흥행 성적은 염려를 낳았고,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등 기대작들의 기대 이하의 관객 동원은 관계자들의 미간에 ‘슬픔의 삼각형’을 남겼다. 

거기다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 2022)의 발랄한 시도도, <올빼미>(안태진, 2022)의 흥미롭고도 안정적인 서사도, <영웅>(윤제균, 2022)의 애국주의 마케팅도 더 이상 관객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며 한국 영화계의 시름이 깊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온전히 팬데믹 사태의 후폭풍인가? 

혹자들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오티티의 일반화와 홈시어터와 같은 개인 미디어 재생 환경의 보편화가 관객들의 탈(脫)상영관 현상에 일조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영화를 대하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그들이 영화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영악하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넷플릭스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 2016년 1월이고, 이후 디즈니 플러스가 2019년 상륙한 뒤 이 시기 직전 후로 다양한 토종 오티티 플랫폼 또한 앞다퉈 서비스를 개시했기에 관객들의 탈(脫)상영관 현상은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됐거나 그때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즉, 관객들이 극장을 외면하기 시작한 상황에서도 한국 영화는 관객들의 습관에 기댄 채 화려한 볼거리,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이름 있는 배우와 감독들의 스타성이라는 낡은 흥행 관습을 답습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런 모든 요소는 이미 오티티에 차고 넘치며, 스펙터클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는 개인 미디어 기기를 통해 안방에서도 충분히 그 웅장함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관객들이 굳이 극장에 갈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한국 영화는 여전히 규모와 스타 마케팅에만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이며, 그렇게 영화계의 주요 자본이 큰 영화에만 집중되는 사이에 상영관에 걸리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점차 붕괴됐다. 이는 곧 관객들이 선택권을 도둑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보고 싶은 작품을 안방에서 얼마든지 시청할 수도 있는 관객들이 나름 ‘대형 멀티플렉스’라는 곳에서 천편일률적인 상영 프로그램을 대할 때 느낄 그 답답함과 피로감에 대한 한국 영화계의 직시와 공감이 필요한 때다.

 

다양성의 회복

 

영화 <클로즈> 포스터

그렇다면 이 오티티 범람의 시대에 영화의 다양성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포착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 사태 직전에 개봉한 <윤희에게>(임대형, 2019), 코로나 사태로 큰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거나 오티티로 넘어간 빈자리를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채울 때 존재감을 드러낸 <세 자매>(이승원, 2021), <정말 먼 곳>(박근영, 2021)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2022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합작 영화 <클로즈>(루카스 돈트, 2022)는 2022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돼 티켓 오픈과 함께 매진을 기록했다.

물론 이 모든 결과가 저예산 영화의 특성상 매니아층의 충성심이 발현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화려한 스펙터클과 배우의 스타성보다는 메시지의 심도와 정서적 울림에 방점을 둔 영화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관객들이 극장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점에서 동시대인들에게 영화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최근에는 <다음 소희>(정주리, 2023)가 그 대열에 합류해 저예산 영화임에도 작품의 화제성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작은 영화 <다음 소희>에 대한 관객들의 지대한 관심은 단순히 사회적 이슈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영화가 주는 정서적 울림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모두 동시대의 구성원들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의 시각적 스펙터클과 스타성에만 몰두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는 영화의 정서적 스펙터클로 형성되는 공감 그리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메시지의 울림과 사회적 유대에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이는 곧 지금의 관객들이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이 극영화의 핍진성과 다큐멘터리의 사실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발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한국 영화계가 이런 동시대 관객들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기대를 외면한 채 작품의 규모와 캐스팅의 스타성에만 몰두한다면, 그래서 그런 영화들이 주요 배급사를 통해 상영관의 전산망에 획일적으로 나열된다면, 앞으로도 관객들은 작품의 선택권을 압수당한 그런 극장을 굳이 찾지는 않을 것이다.

 

글을 맺으며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한국 영화는 정말 죽었을까? <바빌론>(2023)의 메시지를 한국 영화에 적용한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다. 한국 영화는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변화무쌍한 맥락에 따라 진화할 뿐이다. 즉, 한국 영화를 대하는 낡고 안일한 관습이 관객들과의 불통을 일으킬 뿐 한국 영화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모하며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동시대 관객들에게 영화란 무엇이며, 동시대에 영화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함께 다양한 웰메이드 저예산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관객들의 다양한 목소리, 그 작은 소리에 세심히 귀 기울이는 모험 없이는 한국 영화는 계속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글·윤필립  
세종사이버대학교 한국어학과 초빙교수.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이 당선됐고,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학에서 담화분석, 문화교육, 문학치료 등의 연구에 집중하며 강의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