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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광한루-에펠탑 그리고 21
[최양국의 문화톡톡] 광한루-에펠탑 그리고 21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05.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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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무게는 사랑이다. 고독이라는 짐을 지고, 불만족이라는 짐을 진 채 그 무게,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할 그 무게는 사랑이다.~(중략)~.사랑이 없으면 쉼이 없고, 사랑에 대한 꿈이 없으면 잠도 사라지며- 천사 혹은 기계에 집착하여 미치거나 냉소적이 되는 것이니, 최후의 소원은 사랑이다.~(중략)~. 그래, 그렇다, 내가 원하던 것은, 언제나 그리고 늘 원하던 것은 내가 태어났던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노래, Song>,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년~1997년) -

 우리는 언제나 걷는다. 여인의 주름치마 같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는 광한루에서 사랑의 그네를 만난다. 그네의 밀당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표의 시작이다. 수평적 욕망의 게임인 그네는 반달의 완성을 향해 올라가다 그 욕망의 무게만큼 떨어진다. 에펠탑은 사랑의 성장을 위한 수직적 욕망의 게임이 푸른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공간이다. 사랑의 시작과 성장을 통해 완성과 소멸로 가는 길에 또 다른 질문에 답을 한다. 사랑은 ‘나’와 ‘너’의 연인이 대여섯 살 먹은 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 것이다. 사랑은 둘의 하나 됨이며, 타원으로 도는 궤도와 같다.

 

광한루 / 그네 타기 / 사랑의 / 밀당 시작

<춘향전>은 작자나 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로써 다양한 이본이 존재하여, 우리가 걸어가는 사랑의 경로를 다양한 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다.

 

* 광한루와 원앙새(2023년 4월)
* 광한루와 원앙새(2023년 4월)

<춘향전>에서 그려낸 광한루 그네에서 만난 한 쌍의 인연은, 서정주(1915년~2000년)의 <추천사(鞦薦詞)-춘향의 말 1>로 시간 여행을 한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 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 <추천사-춘향의 말 1>(1955년), 서정주 -

이 시는 판소리계 고전 소설인 <춘향전>을 모티프로 하여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서정주는 '춘향의 말'이라는 부제를 붙인 3편의 연작시 <추천사-춘향의 말 1>~<다시 밝은 날에-춘향의 말 2>~<춘향 유문(遺文)-춘향의 말 3>을 통해 춘향의 이몽룡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린다. <춘향의 말 1>에서는 춘향과 이몽룡의 운명적 만남을 위한 매개체인 그네를 타며, 시간적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향단과 대화 하는 춘향. 사랑을 좇는 이상과 현실적 한계 사이의 갈등을 벗어나기 위한 지극한 의지와 소망을 이루고자 한다. 그네를 밀어 올리는 행위를 통해 사랑의 완성을 향한 초월적 세계를 꿈꾼다. <춘향의 말 2>는 떠나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공간적 한계까지도 극복하고자 한다.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며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의지를 절대자인 신령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춘향의 말 3>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몽룡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유서를 쓰는 듯한 간절함이 되어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추천사-춘향의 말 1>은 그 부제가 나타내듯이 춘향이 그네를 타면서 향단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춘향전>에서 ‘그네’는 춘향과 이몽룡을 만나게 하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나’와 ‘너’였던 두 사람의 관계를 ‘우리’인 연인으로 변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 시에서도 ‘그네’는 춘향이 이몽룡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현실적 괴로움과 인간적 운명의 시공간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화자인 춘향은 ‘수양버들 나무, 풀꽃 더미, 나비 새끼, 꾀꼬리’ 등으로 대별되는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며 수(繡) 놓아져 있는 듯 정지되어 있는 자잘한 애착의 대상으로 느낀다. 이러한 애착의 대상을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향해, 채색한 구름을 지나 나아가고자 하는 곳이 바다와 하늘이다.

고전 소설인 <춘향전>에서 찾은 어느 시인의 시적 모티프는, <춘향전>의 등장인물을 화자로 삼아 우리들 삶 속으로 들어오는 상상력의 바다와 하늘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춘향전>에서 시작하여 춘향의 독백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랑의 괴로움과 갈등에 빠진 어떤 여인과 우리의 정감 속에 살아 숨 쉬는 그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보편적 서사로서 다가온다. 현실적 애착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를 향한 의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인 ‘그네’는, 우리가 마주하는 사랑을 향한 고통과 번민의 구속이자 구원의 수단으로써 여인의 바람과 함께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사랑의 시작은 우리 한계를 향한 수평적 연둣빛 욕망 게임인 광한루 ‘그네’를 타며 서정주와 밀당을 한다. 향단의 손에 의해 밀려올려 간 그네에서 춘향은, 이몽룡을 만나서 바다와 하늘의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사랑의 / 성장 단계 / 에펠탑의 / 욕망 게임

 바람과 사랑으로 밀려 올라간 그네에서 이몽룡을 만난 춘향은 결혼한다. 바다와 하늘 얘기를 나누며 채색 구름 속 여행을 통해 파리에 도착한다. 춘향과 이몽룡이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년~1985년)을 에펠탑에서 만난다. ‘사랑의 화가’로 불리는 샤갈은, 작품 세계의 핵심 소재가 사랑이며, 그의 첫사랑이자 부인인 벨라(Bella Resenfeld, 1895년~1944년)를 향한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의 서사를 이미지화하여 작품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 The couple of the Eiffel tower>(1938년)는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오랫동안 방랑하던 그가 파리에 정착하여 프랑스에 귀화한 후에 그린 그림이다.

 

* 에펠탑의 신랑신부(The couple of the Eiffel tower,1938년), Google
* 에펠탑의 신랑신부(The couple of the Eiffel tower,1938년), Google

왼쪽 중앙에는 고향의 작은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신부의 모습과 함께,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큰 수탉을 타고 에펠탑 아래에서 하늘로 비상하는 자세를 매우 밝은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땅을 바탕으로 집과 나무를 제외하고 그림에 나오는 모든 소재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신랑신부의 행복한 감정을 그와 그의 뮤즈에게 감정이입 하고자 함이었으리라. 노란 태양과 하늘로 향하는 천사, 그리고 수탉이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향하려는 의지라면, 파란 에펠탑과 거꾸로 선 천사, 그리고 바이올린은 현실 세계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은 그의 인생 궤적을 그리듯 중의적이다. 주체에 대해서는 고향, 아내 벨라 그리고 신(유대교)에 대한 것이며, 공간은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고향(현재의 벨라루스)과 예술에 대한 영혼을 표현하며 살고 있는 파리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주체와 공간의 중첩성이 환상적인 색으로 어우러지며 화폭에 그려진 모습은, 춘향과 이몽룡의 베갯모 풀꽃 더미와 이어지며 사랑의 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중의적 사랑의 대상을 표현하려는 그에게 당시 시대적 사조로의 일방향적 쏠림은 사치로 작용한다. 그는 강렬한 원색의 야수파, 형태를 깨부수는 한편 부자연스러운 조합을 통해 의미의 틀을 만들어 가는 입체파, 그리고 사물의 형태를 벗어나 선명한 색채와 역동적이면서 기하학적인 방식의 구성을 주도하는 추상주의 등 어느 유파에도 속하길 거부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거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부 속 자유를 통한 다름과 화합으로 공존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마티스, 피카소, 그리고 칸딘스키도 웃으며 나타난다.

<나의 인생, Ma Vie>(1931년) 이라는 자서전에서 샤갈은 아내 벨라와의 첫 만남을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 그녀의 눈은 나의 눈. 나는 마치 그녀가 오랫동안 나를 알아 왔고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며 나의 속마음을 읽어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임을 예감했다."라고 묘사한다. 우리 한계를 향한 수평적 연둣빛 욕망 게임에서 시작한 사랑은, 수직적 파란빛 욕망 게임인 에펠탑 ‘망루’를 오르며 샤갈과 밀당을 하며 성장한다. 수탉을 타고 영원한 낙원을 좇아 비상하는 신랑신부는, 천사를 만나서 고향과 아내와 신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21은 / 둘의 하나 되는 / 타원 향한 / 궤도 흔적

 <춘향전>은 작자와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로써, 다양한 설화를 바탕으로 사랑을 지켜내는 평면적이며 전형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당 세태를 반영하는 형태로 다수의 이본(異本)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고 내용도 일부 개작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춘향전군(春香傳群)’이라는 작품군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본은 이몽룡이 과거 급제후 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인 신관 부사를 파직시키고 춘향을 구한 후에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백년해로를 향해 가는 길에 춘향과 이몽룡은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년~1967년)의 <연인들 Ⅱ, The Lovers Ⅱ>(1928년)를 조우한다.

 

* 연인들(The Lovers) Ⅱ(1938년), Google
* 연인들(The Lovers) Ⅱ(1938년), Google

단정하게 의복을 갖춘 사랑하는 듯한 남녀가 서로 입맞춤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하나의 벽과 천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실내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불확실성에 노출된 채, 흰색 또는 회색 천으로 머리와 얼굴 및 목덜미까지 덮은 상태이다. 가려진 천의 앞부분은 상대적으로 밀착되어 얼굴 윤곽을 드러내며 닫혀 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느슨한 상태로 헐거워지며 열려 가는 듯하다. 현실의 연인들이 눈과 마음을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입맞춤 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얀 회색의 천으로 가려진 상태는 서로의 순수한 열정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어 가는 것을 드러낸다. 천을 뒤집어쓰고 입맞춤한다는 것은, 서로가 같은 곳에 있지만 바라보는 눈과 마음은 각자의 몫이 되어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살아있다는 최고의 감정 표현이어야 할 입맞춤이, 불확실한 공간에서 천으로 가려진 모호함 속에서 그 윤곽만으로 드러나 있다. 이는 어느 공간 그 누구에게도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의 틀을 반영한다. 하얀 회색으로 대변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가 점차 익숙해져 가는 적나라한 단절감의 고통과 번민을 안기고 있는 듯하다.

사랑의 시작과 성장을 통해 나아가야 할 사랑의 성숙과 소멸의 길은, 진정한 연인으로서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서로의 원을 인정하는 배려와 존중에 있다. 하나의 원점 주위를 도는 물체의 궤도는 원, 2개의 원점 주위를 도는 물체의 궤도는 타원이다. 둘이 하나 되는 연인으로서의 부부는 각자에게 해당하는 2개의 초점을 인정하며, 서로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타원 궤도 위의 두 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시작은 서투르고 성장은 더뎌지는데, 부부를 향한 결혼의 밈(Meme)은 비혼과 졸혼의 천으로 덮여서 흐른다. ‘나’는 춘향이 되고 ‘너’는 이몽룡이 되어 우리 연극의 페르소나(persona)가 된다. 마그리트처럼 '베일'에 덮인 비대면형 입맞춤을 할까, 아니면 광한루의 'Propose Bench'처럼 대면형 입맞춤을 할까?

 

* 광한루-Propose Bench(2023년 4월)
* 광한루-Propose Bench(2023년 4월)

바다와 하늘을 향한 채색 구름이 파도 위에 머무를 때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둘의 하나 됨은, 우리 삶에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자화상이자 흔적이다. 사랑의 시작, 그리고 성장과 함께 성숙과 소멸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서정주는 질문을 던진다. 시간의 햇살 따라 흰색이 하얀 회색이 되듯, 사랑의 관계도 조금씩 헐거워지며 열려지는 것일까?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 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 <내 늙은 아내>(1998년), 서정주 -

부부왈(夫婦曰)-화이부동(和而不同). 부부는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되(和), (자신의 중심과 가치를 잃어버려) 연인과 똑같아져서는 안 된다(不同).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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