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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파어웨이 (Faraway) >(2023) : 소통과 통합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가 있는 행복한 영화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파어웨이 (Faraway) >(2023) : 소통과 통합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가 있는 행복한 영화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5.08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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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파어웨이>는 독일 중견 감독 바네사 요프(Vanessa Jopp)의 로맨틱 코미디다. 그녀는 첫 작품 <미국은 잊어라 Forget America>(2000)로 뮌헨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신예가 되었다.  또한, 엘에이 독일 영화제(German Cinema Festival of German Cinema, 2000)에서 톰 티크베어(Tom Tykwer)의  <롤라 런  Run Lola Run>(1998) 과 빔 벤더스(Wim Wenders 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과 함께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롤라 런>의 롤라가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영화 내내 불꽃 같은 열정을 폭발하였다면, 새로운 독일 영화의 경향성을 보여주었던 바네사 요프 감독은 <파어웨이>의 제이네프 (나오미 크라우스)를 통해  빨간 원피스와 빨간 풍선으로 소통과 통합이라는 행복을 표현한다. 포스터의 빨간 로고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제이네프는 이를 잘 보여준다.

 

빨간색 원피스로 제이네프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포스터
<파어웨이> 포스터

빨간 원피스와 빨간 풍선 

독일에 사는  중년 여성 제이네프(나오미 크라우스)는 어머니의 장례식 아침을 분주하게 맞는다. 그러나 세계 여느 주부와 비슷한 일상의 아침이다.  아버지와 남편은 가부장이라는 이유로, 십 대 딸은 철없는 신세대라는 이유 등으로 모두 손 하나 까딱 안 한다. 남편은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읽기로 했지만, 새로 온 젊은 여직원과 시시덕거리느라 장례식까지 놓치고 만다.

어머니가 당신의 고향 크로아티아에 사놓은 집과 일기장을 제이네프에게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장례식날이다. 마음이 뒤숭숭한 제이네프는 크로아티아어로 쓰인, 읽을 수 없는 일기장을 들고 무작정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제이네프는 밤늦게 도착한 크로아티아 집에서 쓰러지다시피 잠이 든다. 눈떠보니 나체로 잠든 낯선 남자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예상되는 익숙한 출발이다. 원래 이 집에 살고 있던 요시프(고란 보그단)는 이때부터 제이네프와  옥신각신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기 시작한다. 

 

요시프와 제이네프의 달달한 로맨스
요시프와 제이네프의 달달한 로맨스

튀르키예 출신 독일인 제이네프가 낯선 크리아티아 섬에서 엄마의 크로아티아어 일기를 읽고 느끼게되며,  조금씩 적응할수록 변하기 시작한다.  엄마가 바라는 딸의 행복을 키워드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요시프와 로맨스를 시작하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제이네프는 점점 더 매력적이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리들리 스콧, 1991)>에서 델마와 루이스가 그러했듯이.  델마와 루이스 역시  평범하고 일상에 지친 아줌마들이지만 여행을 통해 점차 매력적으로 변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협을 거부하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때쯤에는 빨간 립스틱이 어울리는 화려한 아줌마들로 변신해 있다. 그녀들의 강하고 독립적인 ‘여전사’의 내면이 빨간 립스틱으로 표현된 것이다.

독일에서 검은 상복을 입었던 제이네프는 크로아티아 섬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는다.  그녀는 독립적이고 매력적이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던 그녀의 단단한 코르셋은 이제 필요 없다. 제이네프는 독일과 튀르키예 그리고 크로아티아 섬의 마초들에 둘러싸여서도 의연하게 여성성과 모성으로 헤게모니를 갖는다. 예컨대,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마초들이 제이네프의 집에 모여 난장판을 만들고 제이네프가 이를 수습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를 순식간에 평정한 것은 제이네프가 준비하는 작은 이벤트, 식사와 나눔 그리고 음악이다. 서로 치고받는 전투는 종결되고  다 함께 식사 준비하며 대화하고 춤을 추며 와인을 나눈다.

 

소통과 통합의 행복을 상징하는 만찬

제이네프의 딸도 행복한 엄마에게 힘을 실어준다.  딸은 엄마의 애창곡, 니나(NENA)의 독일 록 ‘99개 빨간 풍선(99 Red Ballons /99 Luftballoons, 1984)’에 맞춰 춤을 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빌 어거스트, 2013)의 여성 음악 감독 앙떼 포크(Annette Forks)는 80년대 독일 록을 효과적으로 소환한다. ‘99개 빨간 풍선’이 니나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통해  분단 독일 풍경을 매개로 전 세계에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처럼, 제이네프는 마초 이민자 아저씨, 할배들을 모아 놓고 국경, 세대와 남녀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이 행복하다고 메시지를 전한다.

 

소통과 통합의 행복

제이네프가 자연스럽게 소통과 통합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의미는 다국적 이민 사회에 대한 비전이다.  독일은 물론 프랑스, 영국 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노동자를 보충하기 위해 외국 근로자들을 유입하였고, 수많은 이민자가 돈 벌기 위해 이주했다. 

제이네프도 튀르키예 이민자고 어머니는 크로아티아인이며 독일 국적이니 가족 간에도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도 영어, 독일어, 튀르키예어 그리고 크로아티아어 등이 모두 사용된다.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없어진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다국적 이민 사회에 대한 현실도 반영된다.  그래서  ‘99개 빨간 풍선’이 노래와 이미지로 반복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제이네프가 빨간 풍선을 들고 뛰어오는 장면은 그런 이미지에 대한 방점이다.  제이네프의 빨간 풍선은 니나의 노래 가사 처럼 분단과 경계를 넘어가서 전쟁을 유발하는 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라, 달달한 로맨스를 담은 사랑이고 소통과 통합의 여성성이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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