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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착시로 쌓아 올린 배타적 도피성, <드림 팰리스>(가성문 감독, 2023)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착시로 쌓아 올린 배타적 도피성, <드림 팰리스>(가성문 감독, 2023)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6.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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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힌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흙탕 싸움, 승패 없는 그 허탄한 꿈과 욕망의 아이러니
<드림 팰리스> 해외 포스터, 사진: (주)인디스토리 제공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 1장 2~3절>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뿌리가 같은 기독교지만 구약성서의 권수면에서는 가톨릭이 46권, 개신교가 39권으로 7권의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언어의 문제가 내재해 있다. 초기 기독교 전파 당시 성경은 히브리어역만을 정전으로 삼다가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 일종의 공용어로 사용되던 그리스어로의 번역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이본이 등장하게 되고, 이후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며 중세 시대 링구아 프랑카(국제 공통어)의 헤게모니를 획득한 라틴어로의 번역본 또한 무수히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번역의 질과 순수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이는 1500년대 당시 기독교(구교, 지금의 가톨릭)의 뿌리 깊은 타락과 맞물려 정경과 외경 논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프로테스탄티즘(신교, 지금의 개신교)이 분파하며 개신교는 기존에 46권이던 구약성서 중 외경으로 받아들여지던 7권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517 종교개혁>(2017, 21세기 북스) 표지

사견이지만, 이러한 정경과 외경을 둘러싼 기독교계의 갈등은 결국 사람들을 기독교의 본질에서 멀어지게만 할 뿐이므로 그 대립각 속에 갇힌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구약성서의 전도서 저자가 고백한 '헛됨'과 '헛수고'가 아닐까? 영화 <드림 팰리스>는 바로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반복적으로 교환하며 다툼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성벽 안팎 사람들의 허탄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이 싸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에서 흙탕물이 쏟아지는 신규 분양 아파트의 깨끗한 욕실에서 시작한다.

 

드림 팰리스 분양 사무소를 찾은 혜정, 사진: (주)인디스토리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은 같은 피해를 입은 수인(이윤지)과 회사를 상대로 함께 싸우다 합의금을 받고 시위를 멈춘다. 혜정은 스스로와 타협하며 받은 합의금으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지만 수인은 다른 유가족들과 시위 현장에 남는다. 혜정은 그렇게 남편의 목숨값과 동료 배신값으로 얻은 '드림팰리스'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자 하지만 이사 온 첫날부터 집안 전체 수도에서 더러운 흙탕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난감할 뿐이다. 혜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사 분양 사무소로 찾아가지만 담당자는 아파트에 아직 미분양 가구가 많아 특정 가구 하나만을 위해 수도 공사를 벌이기는 어렵다며 미분양 가구를 팔아줄 경우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수도 공사가 시급했던 혜정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미분양 가구를 팔기 위해 애를 쓰고, 건설사에서는 대폭 인하된 분양가로 신규 가구를 모집한다. 그러다 '드림팰리스' 입주민 대표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혜정의 분투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신규 분양 가구의 입주를 저지하는 드림 팰리스 입주민 대표단, 사진: (주)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드림 팰리스>는 '혜정'이라는 여성의 공시적 삶 속에 펼쳐지는 생의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남편에게 산업재해를 입힌 회사와 싸울 때에는 철저하게 피해자이지만 합의금을 받고 시위 현장을 떠나는 순간 함께 시위하던 사람들에게는 회사의 편에 선 가해자가 된다. 또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편히 안식하고 싶지만 깨끗한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덕에 혜정의 삶은 맑은 물을 얻기 위한 또 다른 투쟁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투쟁은 다시 본의 아니게 아파트 입주민들을 피해자로 만든다. 이렇게 <드림 팰리스>는 하나의 거대 시스템 속에 갇갇힌 채 소외되고 사소화되는 개인의 삶과 그것이 우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거대한 나비효과라는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드림 팰리스라는 아파트는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도피성처럼 작용하지만, 그곳에 입성할 자격은 '나는 다르다'라는 자기인식 아래 '고로 나는 되지만 타인은 안 된다'는 식으로 배타적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1970년대 경제 대공황을 겪으며 케인즈주의의 반발로 나타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드림 팰리스>는 거시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라는 미명으로 국가가 시장경제에 손을 놓는 순간 시스템이란 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불합리한 시스템 안에서 계층의 문제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주목받는 계층이 어디까지 위선적일 수 있는지, 반면 그렇지 못한 개인의 문제는 어디까지 사소화될 수 있고, 사소화된 개인들의 살아남기 위한 연대는 또 어떻게 또 다른 카르텔과 권력을 형성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미시적인 여파 또한 여실히 보여준다.

<드림 팰리스>에서 보여주는, 그야말로 누구 하나 피해자라 주장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의 사슬은 최근 충무로 신인 감독들이 주목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김소형 감독, 박동훈 감독, 최하나 감독, 송현주 감독, 한인미 감독, 윤성호 감독 등 여섯 명의 감독이 연출한 여섯 개의 단편 옴니버스식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국면에서 포착되는 아이러니의 순간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공정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무엇을 위한 논쟁인가 등과 같은 생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의 막연한 환상과 그것을 향한 욕망 그리고 그 허망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림 팰리스 분양 사무소를 찾은 수인, 사진: (주)인디스토리

<드림 팰리스>는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코믹하게 포작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좀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를 위해 캐스팅된 배우 김선영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혜정 그 자체로 분한다. 또한, 오래간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배우 이윤지는 혜정을 상대로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동지애를 드러내야 하는 수인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영악하게 이해하고 흔들림 펼쳐 보인다. 이렇게 김선영과 이윤지라는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아이러니로 점철된 극 속에 더 큰 파급력을 부여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서두에서 인용한 전도서의 저자는 지혜로운 왕의 대명사, 솔로몬이다. 아기를 두고 누가 친모인지를 판가름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리한 판단으로 지금까지도 '솔로몬의 지혜'로 회자되고 있는 바로 그 일화에 등장하는 인물. 그렇게 지혜로운 왕이 말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모든 것이 헛되며 헛수고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이러한 고백은 인생무상이라는 허무주의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각자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나는 삶의 본질을 알고 있고, 그것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내가 알고 집중하는 그것이 '나는 다르다'라는 착시로 쌓아올린 배타적 도피성은 아닌가?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그 아이러니한 도피성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드림 팰리스>(가성문 감독, 2023), 사진: 네이버 영화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대학에서 강의하며 대중문화, 담화분석, 다문화 문식성, 한국어교육 콘텐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계명대에서 국문학, 영문학을 복수전공하고 연세대 국문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영상작가교육원에서 지상학 작가, 하원준 작가 등을 사사했으며,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으며, 미국 에모리대 펠로우십, 대만 국립정치대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로 지내다 2019년 귀국 후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와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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