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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헌트> ― 스파이 동림, 남북 냉전시대와 군부 독재정권의 그림자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헌트> ― 스파이 동림, 남북 냉전시대와 군부 독재정권의 그림자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3.06.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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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트>: 배우 이정재에서 감독 이정재로

<헌트>(이정재, 2022)는 배우 이정재에서 감독 이정재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42회 황금촬영상 편집상, 2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기술상, 58회 대종상 영화제 조명상, 43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편집상, 촬영조명상, 4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신인감독상, 영평10선, 31회 부일영화상 신인 감독상, 제59회 백상예술대상 with 틱톡 영화 예술상, 촬영상 등 화려한 수상 실적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배우 이정재의 첫 영화 연출작으로서 많은 수상으로 비평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손익분기점 400만 명을 넘어서는 관객수 435만 명을 달성하여 안정적인 흥행을 보여, ‘감독’ 이정재를 각인시킨 작품이다. <헌트>는 안기부 내에 침투한 북한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해외팀 박평호 차장(이정재)과 국내팀 김정도(정우성)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을 관통한다.

 

2. 표 국장 망명 작전 실패: 해외팀과 국내팀의 대립

 

<헌트>의 전반부는 한미 정상회담의 폭탄 테러 사건과 북한 표 국장 망명 작전 실패를 통해 안기부 해외팀과 국내팀의 대립을 보여준다. 안기부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폭탄 테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사절단의 신기철 교수를 스파이 동림으로 모함하는 조작을 계획하며 고문으로 거짓된 증언을 확보한다. 또 안기부 부장은 북한 표 국장 망명 작전의 실패를 무마하기 위해 국내팀 박평호 차장에게 사표를 강요하지만, 박평호의 사찰 증거로 인해 기업의 뇌물을 먹은 자신이 옷을 벗게 된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문제해결식 구조를 보여준다. 안기부는 계속되는 작전 실패라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문제 해결 방법이 조작과 고문이라는 점에서 군부 독재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인 사건 해결이다. 누구도 진실에 관심이 없다. 이러한 문제 해결은 표면적인 해결을 위해 내면적인 진실을 묵살하는 국가 폭력의 잔인성을 보여준다. 국가 폭력은 권력의 존속을 위해 교수, 학생, 요원 등 국민을 희생물로 바친다. 두 사건의 실패의 궁극적인 원인은 안기부에 침투한 스파이 ‘동림’이다. 안기부의 핵심 간부인 해외팀의 박평호와 국내팀의 김정도는 스파이 ‘동림’으로 인한 작전 실패에 대해서 상대방의 실수를 질책하며 대립하며 스파이 ‘동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상대방을 바라본다.

 

<헌트>의 전반부 스타일은 유리창, 핸드헬드, 익스트림클로즈업, 시선을 통해 대립, 박진감, 복선을 보여준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도가 박평호에게 시위대를 빨리 처리하라고 화를 내는 장면은 앞서는 김정도와 뒤따라오는 박평호 사이에 유리창을 배치하는 투숏을 통해 앞으로의 대립을 암시한다. 김정도와 박평호가 테러범을 추격하고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핸드헬드로 현장감과 박진감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방일 일정에 대한 1급 기밀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은 서명하면서 서서히 결재판을 넘겨주는 김정도와 박평호의 시선을 통해 해외팀과 국내팀의 대립을 보여주고, 서명의 익스트림클로즈업을 통해 스파이 동림의 정체를 밝혀주는 복선을 암시한다.

 

3. 라인 빤스 벗기기: 간첩 천보산과 반정부 목성사의 비밀

 

<헌트>의 중반부는 안기부 내의 라인 빤스 벗기기를 통해 간첩 천보산과 반정부 목성사의 비밀을 드러낸다. 영화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두 주인공의 비밀을 보여주면서 스파이 ‘동림’의 정체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동경에서 박평호는 작전 중 정보원 조원식이 죽게 되자 조원식의 딸 조유정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광주에서 김정도는 광주 시민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에 고통스러워하며 이후 안기부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신임 안기부장은 국내팀의 김정도 차장과 해외팀의 박평호 차장에게 각각 상대팀 라인의 빤스를 벗기라고 지시하여 박평호와 천보산의 관계, 김정도와 목성사의 관계를 밝혀낸다. 국내팀은 양 과장을 스파이 ‘동림’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팀 요원들을 심문하고, 암호를 해독하여 간첩이 은닉하고 있는 세탁소를 급습하여 1급 비밀문서를 발견하고, 박평호가 돌보는 조총련 출신 조유정을 체포하여 고문하며 간첩 천보산으로 몰아간다. 해외팀은 김정도가 비자금 관련 인물을 목성사로 데려간 정황을 포착하고, 목성사의 최규창 대표를 체포하여 고문하며 김정도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박평호의 정보원 죽음과 김정도의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두 주인공 모두가 스파이 ‘동림’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안기부 부장의 상대 라인 빤스 벗기기 명령은 해외팀 박평호의 조총련 여대생 보호와 천보산 간첩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을 드러내고, 국내팀 김정도와 군납 업체인 목성사의 수상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안기부 부장은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기 위해서 국내팀과 해외팀에 각각 상대팀을 조사하게 만들어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정보를 캐낸다. 영화는 스파이 동림을 찾는 과정에서 요원에 대한 심문, 요원 주변인물에 대한 고문 등 대상을 불문한 증거 조작과 고문을 보여줌으로써 국가 폭력의 무자비함을 드러낸다.

 

<헌트>의 중반부 스타일은 시선, 투숏, 표정, 행동/대사의 불일치를 통해 죄책감, 긴장감, 표면/이면의 괴리를 표현한다. 조유정이 아버지 조원식의 유골함을 가져가는 장면은 조유정의 원망스러운 시선, 박평호의 죄책감이 담긴 시선을 보여준다. 신임 안기부장의 취임 연설 장면은 강당에 앉아 있는 박평호와 김정도의 타이트한 투숏을 통해서 두 사람의 숨 막히는 대립을 표현한다. 김정도가 조유정을 심문하는 장면에서 박평호가 천보산으로 의심받는 조유정을 때리는 행위와 “지금부터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마. 그래야 내가 너를 데리고 나갈 수 있어.”라는 조언을 대비시키면서 표면/이면의 괴리를 드러낸다.

 

4. 아웅산 묘역 폭파 테러: 독재자 암살과 남북 전쟁의 딜레마

 

<헌트>의 후반부는 아웅산 묘역 폭파 테러 사건을 통해 독재자 암살과 남북 전쟁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두 주인공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공통적인 목적을 위해 1차적으로 협력하지만, 대통령 암살 후 남침 계획을 저지하고자 박평호는 대통령 암살을 저지하고자 한다. 김정도는 광주 시민 학살을 목격하고 총칼로 국민을 짓밟는 폭력을 저지른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는 ‘베드로 사냥’을 계획하고, 아웅산에서 대통령이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자 직접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총상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김정도는 군인으로서 상명하복하며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하지만 그 책임자인 대통령을 암살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박평호는 남파 13년차 간첩 동림으로서 1급 정보를 북한에 전달해 안기부의 주요 작전을 실패하게 만들지만, 대통령 암살 후 남침 계획을 알게 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암살하는 ‘불꽃 작전’을 저지하고, 조유정을 도피시키려다가 조유정과 간첩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두 주인공은 남한 국가 권력기관의 핵심 간부이지만, 혁명 세력과 남파 간첩 등 사실상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로 드러난다. 두 주인공은 각각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정보를 지켜보게 된다. 두 주인공은 국민의 희생을 막고자 하는 공통적인 대의를 품지만, 대통령 암살 사건 앞에서 암살의 시행 혹은 저지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다시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헌트>의 후반부 스타일은 동선, 시선, 표정, 클로즈업, 타이트한 투숏, 원숏과 편집, 영상/사운드의 대비로 긴장감, 두려움, 괴로움, 갈등, 거리감, 의문을 표현한다. 방 주임이 박평호가 동경과 오사카에 방문한 기록을 밝혀내는 장면은 박평호와 동림의 연관성을 깨달은 방 주임의 놀라는 표정, 방 주임 뒤로 가는 박평호의 동선, 방 주임을 응시하는 박평호의 시선, 안경을 벗는 행위를 통해 박평호가 스파이 동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방 주임을 살해할 거라는 긴장감을 표현한다. 김정도가 목성사 대표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장면은 목성사 대표에게 하는 강경한 발언, 눈물을 글썽이는 김정도의 눈빛, 전기 고문 장치를 최대치로 올리는 김정도의 손 클로즈업을 통해 행동과 표정의 괴리를 통해 동지를 죽임으로써 대의를 지키려는 고통을 표현한다. 아웅산 경호를 위해 이동하는 장면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를 타이트한 투숏으로 잡음으로써 대통령 암살이라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동질감과 북한 간첩/ 남한 요원이라는 거리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5. 안기부 스파이 동림과 국가 폭력의 잔혹성

 

<헌트>는 스파이 동림을 통해 국가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낸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현재 1983년 스파이 동림 색출 작전으로 안기부의 해외파와 국내파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3년 전 과거인 1980년 광주시민학살과 정보원의 죽음으로 두 주인공의 비밀을 드러낸다. 안기부의 핵심 간부인 두 주인공은 13년간 남파 간첩과 대통령 암살 작전이라는 비밀이 드러나게 되지만, 대통령 암살이라는 대의를 위해 표면적으로 협력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 암살의 추진/저지라는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전두환 대통령 암살 사건, 아웅산 폭파 테러 사건, 북의 남침 계획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큰 사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국가 핵심 정보기관의 간부가 스파이 동림이라는 허구를 결합시킴으로써 기대의 긴장과 불확실성의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안기부가 중요한 실책이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조작과 고문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군부 독재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이 난다는 점에서 대중의 욕망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충실하다.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가 남북의 국가 폭력에 희생되는 두 주인공의 죽음은 국가 폭력의 무자비한 잔혹성을 드러낸다. <헌트>에서 스파이 동림은 남북 냉전시대와 군부 독재정권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키워드이다.

이정재 감독은 데뷔작이지만 관객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에 집중시키는 안정적인 연출력을 보여준다. 박평호와 김정도의 투숏은 신임 안기부 부장의 취임연설에서는 해외팀과 국내팀의 대립을 보여주지만, 아웅산 경호에서는 대통령 암살을 위한 간첩/요원의 협력을 보여준다. 전반부에서 박평호와 김정도가 1급 기밀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은 익스트림클로즈업을 통해 스파이 동림의 정체를 밝히는 복선을 암시한다.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은 인물의 동선, 시선, 표정, 행위 등 섬세한 연출로 서서히 조여드는 긴장감을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은 죽어가는 박평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조유정과 곧 이어 들려오는 총성을 통해서 사운드만 들려주고 영상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의문을 품게 하여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렇듯 <헌트>는 화면에 집중시키는 연출력, 투숏의 더블링 장면 대비, 서명의 복선, 마지막 장면의 의문 등 장르영화에 대한 원숙한 구현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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