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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의 문화톡톡] 죽음의 서사(敍事)를 ‘상여소리’로 풀어낸 <꽃신 신고 훨훨>
[김기화의 문화톡톡] 죽음의 서사(敍事)를 ‘상여소리’로 풀어낸 <꽃신 신고 훨훨>
  • 김기화(문화평론가)
  • 승인 2023.07.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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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1. 하지(夏至), 음(陰)과 양(陽)의 변곡점(變曲點)에 오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지난 6월 29일과 3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전통적 죽음의 서사를 하나로 집적(集積)한 공연이 올랐다. 2023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 공연 <꽃신 신고 훨훨>이다. 과거 꽃신은 비단을 두르고 그 위에 색실로 매화, 대나무, 나비 등을 수놓아 아름답게 장식한 신발이다. 부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소유하기 어려웠던 꽃신은 장신구이자 의례의 상징인 사치품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꽃신 신고 훨훨>은 제목부터 소중한 신을 신고 자유롭게 날아갈 것 같은 어감(語感)으로 죽음을 찬미하였다.

 

2023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2023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꽃신 신고 훨훨>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으로 새로 선임(選任)된 서도소리 유지숙 명창(名唱)이 부임(赴任)하여 제작한 첫 작품이다. 따라서 공연은 죽음과 관련된 전통적인 상엿소리가 중심이 되었다. 1979년 창단된 민속악단에서 죽음을 테마로 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은 전통적인 상례(喪禮)에서 보이던 죽음의 미학을 차분하고 서정적이며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2. <꽃신 신고 훨훨>, 전국의 상엿소리로 풀어낸 전통적 죽음의 미학(美學)

<꽃신 신고 훨훨>은 장례 의식에서 부르던 소리와 전통 성악(聲樂)에 전해지는 이별과 죽음에 관한 곡을 연결하여 상례의 시간적 서사(敍事)를 덧대어 전개하였다. 관객들은 몰입(沒入)과 감정 이입(移入)을 통한 진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하기보다는 시간에 입각한 에피소드(episode)를 통해 죽음의 상징(象徵)을 이해하고 이별의 정조(情操)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공연의 큰 축을 이어가는 에피소드는 전통적인 의례나 서민 예술들로 장면의 상황(狀況)을 구성하였다. 서도소리를 비롯한 경기소리, 남도소리 등의 상엿소리와 성악이 지역성에 따라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상엿소리는 매기고 받는 전통적인 노동요(勞動謠)로서 선후(先後) 가창(歌唱) 방식과 교환창(交換唱) 방식을 활용하여 묵직하면서도 정감이 있었다. 또한 노래 사이사이에 춤, 상여 행렬, 극중극 ‘진도 다시래기’와 자막 등의 의사소통 장치를 가동하여 죽음과 죽음의 의례를 서정적으로 각인(刻印)시켰다.

 

1) 1장 서도 상여소리

공연을 여는 소리는 ‘제전’이었다. 서도좌창(坐唱)으로 연행하던 소리를 서서 하는 입창(立唱)으로 설정하여 유지숙이 노래했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서 제사(祭祀)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읊던 노래 중(中) 탄식(歎息)의 대목을 발췌(拔萃)하여 불렀다. 이어서 황해도 연산군에서 구전(口傳)되던 ‘상구소리[상여소리]’를 애잔하게 불러 도입부 초반의 몰입을 위한 정적(靜的)인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유지숙은 속청과 본청의 서도소리 기법을 묵직하면서도 조화롭게 불러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상구소리’에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원 백미진(수석 단원)이 느리고 절제된 춤으로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강화하였다. 뒤이어 서도 소리꾼 김민경과 장효선이 ‘산염불’을 불렀다. 이 곡은 불가(佛家)의 염불 소리가 혹은 무속(巫俗)의 무가(巫歌)가 민간에 세속화되어 황해도지역 전문 예인들이 전승해왔다. 구성진 ‘산염불’소리가 끝나고 나면 황해도 배천과 평양에서 부르던 복원(復元) ‘상여소리’가 이어졌다. 문영식이 종을 울리며 상두꾼의 선소리를 하면 한 손에는 흰색 꽃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길게 늘어뜨려 어깨에 멘 흰 천을 잡고 유지숙을 비롯한 소리꾼들이 일렬(一列)로 행렬(行列)을 이루고 입장하여 구슬프게 노래하였다. 행렬을 이룬 소리꾼들과 그들의 어깨에 걸친 흰색 천으로 출상하는 운구 행렬을 연상하게 하여 분위기는 한층 장엄해졌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유지숙의 상구소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유지숙의 서도 상구소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서도 상여소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서도 상여소리

북녘 소리인 서도소리의 탄식하듯 미묘한 꾸밈음으로 공연의 분위기를 잡고 나면, 가야금 병창(竝唱) ‘백발가(白髮歌)’가 연주되었다. 단가(短歌)의 하나인 ‘백발가’는 3인이 가야금 병창으로 구성되어 서도소리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노래는 백발의 한탄을 노래하고 절의 재맞이를 구경하는 내용이다. 백발을 한탄하는 ‘백발가’는 공연의 주제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가야금 연주로 소리의 연행에 변화를 꾀하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가야금병창 백발가(白髮歌)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가야금병창 백발가(白髮歌)

2) 2장 경기 상여소리

‘백발가’를 사이에 두고 다시 서도소리와 유사(類似)한 맑은 음색의 경기소리가 이어졌다. 2장 경기 상엿소리는 ‘회심곡’, ‘이별가’, ‘고양 상여소리 중(中) 회다지소리’로 구성되었다. 불교 대중 곡의 하나인 ‘회심곡’의 연행은 채수현의 소리에 백미진이 홑 춤을 추었다. 노래는 불규칙한 장단의 구절마다 꽹과리를 쳐서 제의적 분위기를 구성하였다. 백미진은 살풀이 수건을 어깨에 메고 늘어뜨린 수건을 날리며 절제되었으나 애잔하게 춤추었다. 뒤이어 김세윤과 성슬기의 ‘이별가’가 이어졌다. 경기소리의 ‘이별가’는 판소리 ‘이별가’와는 달리 장단이나 후렴이 이어지기보다는 길게 뽑는 청아함으로 아련함을 나타내었다. 임과의 이별에 관한 서글픔을 표현하고 난 뒤, 경기도무형문화재 고양상여놀이의 ‘상여소리 중(中) 달구질 소리’가 연행되었다. 서도 상엿소리에서 사용했던 소담하고 흰 꽃과 길게 늘어뜨린 흰 천으로 상여 행렬의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소리꾼들은 동선(動線)에 변화를 주어 중심에 소리꾼 한 명을 두고 일곱 명의 소리꾼들이 방사형으로 천을 잡아 펴는 등 구성을 통한 조형을 보여주어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경기 상여소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경기 상여소리

3) 3장 남도 상여소리

경기소리를 뒤로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남도 상여소리가 이어졌다. 진도 지역에서 출상(出喪) 전날 밤에 놀던 ‘진도 다시래기’로 3장이 시작되었다. 다시래기는 전라남도 진도 지역에서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상가의 상주(喪主)를 위로하던 놀이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중(中) 거사사당놀이’에 근거를 두고 재구성한 놀이가 펼쳐졌다. 가상제 추헌종, 거사 정준태, 사당 안연주의 3인이 벌이는 소극(笑劇)으로 희화화하였다. 다시래기는 다시 나기, 혹은 다시 낳기를 뜻한다. 다시래기는 마치 죽음과 배치되는 몰상식적(沒常識的)인 상황이나 성적(性的) 묘사 등으로 상례의 분위기가 흩어질 것처럼 보이나 맹인(盲人)인 거사와 부인 사당의 사이에서 아이가 출산되는 것으로써 멸(滅)이 생(生)으로 전환되는 삶과 죽음이 변증법적(辨證法的) 상황을 연출하여 상례의 비통함을 축제로 바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다시래기’를 구성하여 상례 문화의 일면을 보이면서도 공연의 재미를 더하고 풍속의 깊이를 관객들에게 전하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창작 진도 다시래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창작 진도 다시래기

‘다시래기’의 뒤를 이어 ‘진도씻김굿’과 ‘지전(紙錢)춤’으로 망자의 혼을 달래는 의례를 장엄(莊嚴)하게 보여주었다. 진도씻김굿의 무가(巫歌) ‘길닦음’의 유절형식의 메기고 받으며 저승길을 상징하는 질베를 양쪽에서 잡고 넋이 천도 되는 의레를 묘사하였다. 긴 천 위에 넋을 담은 넋당석이 천을 이동하여 혼이 저승길로 인도되는 장면을 의례를 묘사하여 전통적인 무속 의례의 멋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액과 살을 풀어 극락(極樂) 천도(薦度)를 기원하던 ‘지전춤’을 일체감 있게 춤추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김혜자(무용단 예술감독 직무대행)의 안무로 8명의 무용수가 춘 ‘지전춤’은 그동안 소리를 중심으로 연행되던 전체적인 분위기를 시각적 역동성으로 전환하여 전환되었다. ‘지전춤’은 양팔을 차례로 ×자형으로 몸 앞에서 교차하며 흔들거나 태극무늬를 그리고 팔을 엎었다 뒤집는 등 움직임의 반동을 이용하여 곡선을 이루고 회전하면서 춤추어 ‘길닦음’의 전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장엄하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무용단의 지전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무용단의 지전춤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의례가 끝나면 판소리 ‘심청가 중(中) 상여소리’가 이어진다. 정화석의 소리로 심청의 어머니 곽씨부인의 출상을 기리는 대목을 구슬프게 부르면 소리 후반에 상여 행렬이 입장한다. 상여 행렬은 진도지방의 만가(挽歌)를 부른다. 만장(挽章)이 늘어서고 악사와 상주가 뒤따르고 마지막에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입장하는 구성이다. 구슬픈 상엿소리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연희단원들의 사물악기 연주로 점차 흥을 돋우며 대미를 장식하였다. 경기도무형문화재 ‘고양 상여·회다지소리 보존회’ 회원들이 실제 상여를 메고 들어와 대열이 좌우로 장엄(莊嚴)한 파동(波動)을 만들며 경사무대의 언덕을 넘어갔다. 공연은 상여 행렬이 사라지고 우리나라의 전도(全圖)가 무대 바닥에 드러나며 막이 내린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출상, 진도 상여소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출상, 진도 상여소리

3. 상징적 미장센의 활용으로 상례 문화를 폭넓게 보여준 <꽃신 신고 훨훨>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보는 아날로그 시대의 극장 감성을 불러일으켜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극(觀劇)의 만족감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미장센이 간결하고 상징적이었다. 복식과 지전 등의 무구 등이 무채색인 흰색을 활용하면서도 간결하고 세련되었다. 특히 LED 판에 의해 전환되는 무대 배경의 현란함보다는 구부러진 언덕의 길 하나를 세워 삶과 죽음, 혹은 이승과 저승의 연결을 보이며 상징을 통해 죽음의 여정을 상상하게 한 장치는 작품의 완성을 높이는 데 한몫하였다. 서정적인 경사무대의 좌우(左右)에는 연주석(演奏席) 만들어 생생한 현장 연주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살리면서도 연희자(演戲者)들의 연행에 대한 몰입을 유지하는데 저해되지 않았다. 인간의 생애를 존중하고 산자를 위로하며 일상으로 회귀하던 우리의 상례 문화를 보고 듣는 가슴에 남기는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세련되고 매끄럽고 아름다운 정조를 살린 성악의 근간이 너무 명확하여 소리에 에포트(effort)가 실린 몸의 표현이 드러나지 못한 점이다. 옴니버스의 장별 전개에 따라 작품에 갈등 요소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악(正樂)과는 달리 민속악(民俗樂)의 범주(範疇)에서 수용해야 할 불균형, 혹은 비대칭, 무질서, 우연성, 즉흥성 등이 과감하게 보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죽음은 삶과 대대적으로 우주의 균형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으나, 한 인간의 생애로 볼 때 이것은 큰 탈이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음에 관한 소리 표현이 조금 더 폭넓게 해석되었다면 관객들은 더 진한 여운을 가슴에 남겼을 것이다.

그래도 <꽃신 신고 훨훨>은 관객의 만족도에서 성공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게 된다. 유지숙 신임 예술감독이 취임하고 두 달도 되지 않은 제작 기간에 성악팀, 기악팀, 연희팀을 아우르며 준비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무대에 올랐다. 이번 작품은 유지숙 예술감독과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들의 역량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유의미한 공연이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커튼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 커튼콜

 

 

글·김기화(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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