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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 여전히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영화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 여전히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영화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9.1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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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9.9 개봉) 포스터

정창화 감독의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는 사회비판적 작가로 평가받는 김기팔의 1964년 동양 방송 라디오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1964년과 65년은 연일 한일 협정 반대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였고, 이 영화는 위수령(1965년 8월 26일에서 9월25일) 중에 개봉(1965년 9월 9일)했다. 그 민감한 시기에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룬 영화가 개봉한 것이다.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복잡한 정치 상황과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국민이 치러야 했던 역사의 무게가 친일과 반일, 학도병과 위안부의 형태로 등장한다. 1965년은 해방 20주기가 되는 해였으니,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던 세대의 삶과 기억이 생생하던 시기였고, 한일 협정으로 인해 일본 강점기의 억압과 상처가 소환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정창화 감독은 당대의 반일 감정에 대한 소회를 그가 추구하는 영화적 스펙터클에 담아 저예산 글로벌 프로젝트로 성공시킨다.

 

이국적 공간, 해외영화에 대한 맹아

 

태평양 전쟁과 미얀마
태평양 전쟁과 미얀마

‘사르빈강’은 낯선 이국의 이름이고, 영화의 배경인 버마(미얀마) 라는 남태평양 전쟁 격전지에 대한 상징적 이름이다.  수많은 학도병이 일본군의 이름으로 희생된 그곳에는 현지 게릴라군과 연대하며 독립운동을 하는 학도병 가네다와(남궁원), 뼛속까지 친일파인  마쓰모토(신영균), 그리고 항일의 뜻을 품고 탈영하는 마쓰모토의 절친한 친구들 사와이(윤일봉)와 미와자키(이대엽)도 있다. 사와이와 미와자키 그리고 마쓰모토(신영균)는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지만  이들의 우정은 친일과 항일의 바탕 위에서 공과 사, 조선과 일본,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불신하게 되며  종국에는 친일 금수저인 마쓰모토만 생존하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죽음과 현지 게릴라 대원 후라센(김혜정)의 사랑을 통해 점차 자신의 정체성과 일본 제국주의 실체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영화는 해외라고 하더라도 만주 독립운동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졌던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스펙터클을 펼친 것도 신선했지만 당시 어려웠던 영화 제작 현실로 인해 현지 로케이션 촬영 없이 광릉 수목원에 열대 나무를 빌려서 현지 촬영처럼 만들어 낸 것도 기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이국적인 정서를 담은 것도, 음악 전공자 감독다운 탁견이다. 예컨대, 영화 도입부의 ‘진주조개잡이’는 그 기원이 하와이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받기 전의 아름다웠던 섬 모습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이기도 하려니와, 이 노래의 이국적인 태평양 정서를 통해 외국 현지 촬영하지 않은 저예산 국내 제작 해외 영화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이 경쾌한 이국적 음악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일제 강점기나 태평양 전쟁 등에 대한 답답한 심정과 당시로는 드물게 주인공 모두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 정서를 비틀어서 음악과 영화 주제를 충돌시킨다. 정창화 감독의 해외에 대한 관심은 다음 해에 한홍 합작 영화 <순간은 영원히> (1966)가 홍콩 번화가에서 촬영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

 

일제 강점기를 보는 영화적 해석 :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친일파 

 

이 영화를 통해 재현된 일제 강점기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를 보는 시각은 마쓰모토(신영균)의 무지한 친일적 소견에 대한 일침이다. 신영균 친일파 일본군 장교를 통해 민족의식 각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계몽적이다.

여기에는 십 대 시절 일본제국주의를 겪은 정창화 감독의 ‘일제 강점기’ 그리고 그의 영화 스승 최인규 감독 등 친일 인사에 대한 소회가 보인다. 예컨대, 주인공 마쓰모토는 카리스마 넘치고 반듯한 군인이지만, 그는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 학도병이 아니라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넘치는 황군 학도병이다. 관객은 마스모토 캐릭터를 통해 친일 논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고, 그가 어떤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으며, 그의 ‘죽음’을 통해 영화 서사적으로 그가 응징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그가 비록 영화 뒷부분에서는 일본군 사령관(최남현)을 죽이고, 무기 창고를 폭발하는 등 미얀마 해방군을 돕고 조선 독립을 위해 공을 세우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죄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가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민족적 주체성을 잃어버린 조선 출신 일본군은 철저하게 소모품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했고, 일본군 위안부가 속아서 끌려온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무지했으며, 복잡한 국제 정세 속 학도병의 정체성에 대해도 무지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재현된 일본군 위안부

정창화 감독은 한국 최초로 영화 속에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과 목소리를 재현하게 된다.  영화 속 일본군 위안부(최지희)는 친일파 주인공 마스모토의 무지에 대해 거침없이 질타한다.  마스모토가 민족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뜨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 학도병 친구들의 탈영과 죽음이라는 영화 주제는 1965년 한일 협정 반대 시위와 위수령 속에 개봉된 시점에 매우 시의적절했지만,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이렇게 비극적이며 답답한 현실을 ‘진주조개잡이’나 미얀마 야자수 풍경으로 살짝 가볍게 털어 흥행과 작품성, 심지어 역사성까지 담보하게 된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는 광복 80년이 되가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시의 적절’하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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