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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두 대통령의 운명은…
'닮은꼴' 두 대통령의 운명은…
  • 성일권
  • 승인 2012.05.14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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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르 디플로' 읽기

잠시, 저는 임기를 몇 달 남겨둔 이명박 대통령이 니콜라 사르코지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어떤 심정일까 헤아려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가 '사르코지가 누구였지?'로 1면을 장식한 것처럼, 혹여 이 대통령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 뒤 '이명박이 누구였지?'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연일 터지는 측근 비리가 쓰나미처럼 넘쳐 이 대통령의 존재감마저 삼킬 기세입니다. 이런 그에게 집권 우파의 패배로 끝났다는 프랑스 대선 소식은 달갑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1, 3면).

돌이켜보면,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07년에 사르코지가 집권당 대선 후보가 되자 서한을 보내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같은 보수의 기치와 실용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는 정신적 동지에게 축하드린다"며 친밀감을 과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내 보수 언론들은 "프랑스 사회가 일은 하지 않고 복지 혜택만 누리는 이른바 '프랑스병'을 앓고 있어 유권자들이 위기의식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감세정책 등을 주장하는 우파 후보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며, 이 후보를 은근히 두둔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사르코지와 이 대통령은 한쪽은 바람둥이처럼 '블링블링'(bling-bling) 기질이 다분했고, 다른 한쪽은 돈 먹는 하마 같은 최측근들의 비리로 얼룩졌다는 사실을 빼면, 놀라울 정도로 거의 모든 면에서 닮은꼴을 보여줬습니다. 부자 감세, 공영방송의 시녀화, 대학의 시장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기업의 민영화, 측근들의 회전문 인사, 그리고 1%만을 위한 국가권력…. 사회학자인 팽송 부부가 쓴 <부자들의 대통령>이나, 장 피에르 슈벤망의 <프랑스는 멸망하는가>를 읽다 보면, 사르코지와 이 대통령이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눈물 많고 인사성 밝은 이 대통령의 성품으로 볼 때 '정신적 동지'에게 통한의 메시지를 보내는 걸 그냥 잊지 않을 터인데, 요즘 자신을 공격하는 기회분자들에게서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보수 언론들만이 약속이나 한 듯, "프랑스 국민이 좌익 포퓰리스트의 달콤한 구호를 선택하고 말았다"며 "재정 투입만 확대하는 정책은 국가 부채를 늘려 시장의 보복을 초래할 뿐"이라고 쓴소리를 뱉어냅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의 좌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적 보도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일깨웁니다.

늘 그렇듯이, 5월호에도 <르 디플로>의 세상 읽기는 까칠합니다. 중산층의 붕괴 속에 무의미한 존재이길 거부한 99%의 저항을 다각도로 분석하고(9~15면),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초국적 노조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며(6~7면), 미국의 지구화 전략과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중-미 관계, 용병 문제 같은 불편한 진실을 뒤집어보고(16~19면), 지구적 관점에서 니카라과·카자흐스탄·이집트·앙골라 등 3세계 국가들의 고뇌와 희망을 살펴봅니다(20~28면). 이 밖에 영화와 문학에 대한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준비했지만, 무엇보다 대선 전초전에서 '박근혜 독주론'의 실체에 대한 인문학적 비평이 여러분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1, 30면).

독자 여러분! 혹여, 우파의 실패를 교훈 삼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분이거나, 통합진보당의 갈등을 안타까워하는 분이라면 이번호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대통령에 대한 사랑이 여전하고, 그에 대한 망각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여러분의 진정 어린 고민과 질책이 이 대통령의 행로를 바꾸게 할지 모를 일입니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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