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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육체에 침투한 체계의 냉소, 〈인피니티 풀〉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육체에 침투한 체계의 냉소, 〈인피니티 풀〉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3.09.27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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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풀〉 타이틀 (출처: NEON Official YouTube)
〈인피니티 풀〉 타이틀 (출처: NEON Official YouTube)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꾸준히 정체성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다루어왔다. 이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브랜드 크로넨버그를 구분하는 중요한 분기가 된다. 아버지 크로넨버그가 특정한 사회적 체제를 겨냥한다기보다는 인물 개개인의 욕망이 사회의 시스템과 결합되는 과정을 바디 호러를 통해 이미지화 했다면, 아들 크로넨버그는 특정한 체계가 개인의 정체성에 어떻게 침투되는지 바디호러를 통해 캐릭터화한다. 가령, 아버지 크로넨버그가 <비디오드롬>(1983)을 통해 주인공 맥스의 세속적 욕망이 미디어 체계가 결합되며 맥스의 육체를 점령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아들 크로넨버그는 <포제서>(2020)를 통해 자본주의가 만든 ‘대리적 체제’(Agency System)가 주인공 콜린의 정체성을 점령한 이후의 이야기를 바디호러로 그려나간다. <비디오드롬>이 맥스의 육체가 변해가는 과정을 호러로 그릴 지언정, 맥스는 육체의 변형 과정을 꽤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반면 <포제서>의 콜린이 육체를 옮기는 행위는 타인의 정체성을 처분하기 행위는 대리 수행하기 위해서이며, 이 수행 과정에는 타인의 육체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이러한 모습들과 차이점은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신작 <인피니티 풀>(2022)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미래의 범죄>(2023)에서도 확인된다. 

아버지 크로넨버그의 <미래의 범죄>에서 기계와 인간이 결합되는 이유는 다분히 종교적이다. 이 점에 있어 <미래의 범죄>는 <크래쉬>(1996)를 계승한 영화로 보인다. 테오 앙겔로풀소가 <크래쉬>에 심사위원특별상을 쥐어주며 "이들은 성적인 경험을 통해 초월을 경험하려는 동기로 사고를 일으키며, 이는 구원을 갈망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같다"고 지적한 바와 같이, <미래의 범죄>의 주인공 사울과 카프리스는 개인적인 구원을 위해 엽기적인 수술을 반복한다. 반면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신작 <인피티니 풀>에도 구원의 모티프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들이 있지만, <인피니티 풀>의 등장 인물들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계급논리와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주인공 제임스 포스터과 그의 아내이자 미디어 재벌 2세인 엠은 가상의 국가 라 톨카의 리조트를 방문한다. 이들은 신작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라 톨카를 방문했지만, 이들은 그저 관광객의 정체성으로 리조트를 누빈다. 제임스에게는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줄 재벌 2세 아내가 있지만, 사실상 주체성을 잃어버린 상태다. 때문에 제임스가 영감을 원하는 이유는 인정받는 작품을 통해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함에 가까워보인다. 그는 리조트를 벗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지만,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자신이 클론이 처형을 당하는 "대리 사형"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인피니티 풀〉 스틸컷 (출처: 다음영화)
〈인피니티 풀〉 스틸컷 (출처: 다음영화)

<인피니티 풀>에는 브랜드 크로넨버그가 <항생제>(2012)와 <포제서>에서 다루어왔던 주제들이 골고루 섞여있다. <항생제>가 바이러스 혹은 혈액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려는 이야기였다면, <인피티니 풀> 역시 '대리 처형'이라는 사건을 통해 정체성이 해리되는 모습을 그린다. 또한 <포제서>가 타인의 육체에 침투해 암살을 수행하는 청부살인업자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가 낳은 "대리 체계"를 겨냥했다면, <인피티니 풀> 역시 클론을 만들고, 주인공의 클론을 대리 사형하는 과정을 통해 대리 체계에 포획된 인간상을 그린다. 이처럼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자본주의가 개인의 정체성에 침투하는 과정에는 대리 체계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등장한다. 이는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의 인물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행위 원칙을 제공한다. 그것은 대리자 혹은 대리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의 대리자가 주인공 본인을 잠식할 때까지 계속된다. 여기에는 모종의 계급적 합의가 있다. 화폐를 지불하여 교환가치를 대리했다면, 대리적 대상이 된 객체에게는 주체에게 귀속된다는 합의다. 이 합의는 침투와 착취의 모티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리적 대상이 된 객체가 교환가치의 과정을 완료한 주체에게 귀속된다면, 대리적 대상은 필연적으로 교환가치의 과정을 완료한 교환 주체에게 착취되게 된다. 

그러나 교환 주체가 대리적 대상에서 관심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대리적 대상은 정주해야 한다. 이 때 교환 주체가 대리적 대상을 떼어놓고 싶다면, 대리적 대상은 다른 교환 주체에게 이관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환 주체가 이관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대리적 대상은 교환 주체의 빚 혹은 짐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빚들이 쌓인다면 교환 주체는 사회적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위험은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끌고가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인피니티 풀>에서 주인공 제임스는 대리 처형에 중독된다. 영화에서 제임스가 대리 처형에 빠지게 된 계기는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지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하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없는 소비자로서 위치를 점유하게 된 제임스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이란 것이 죽음 밖에 남지 않았을 수 있다. 즉, 자본주의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 욕망하게 되는 것은 죽음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기억이 복제된 클론의 죽음을 반복하면 정체성이 해리되었고, 그리고 해리된 정체성은 교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바라보는 자본주의는 주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피니티 풀〉 스틸컷 (출처: 다음영화)
〈인피니티 풀〉 스틸컷 (출처: 다음영화)

다만, 제임스가 대리 처형에 빠지게 된 이유를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동기 자체가 비어있는 미지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다루는 자본주의와 정체성의 관계는 그 자체로 일종의 항등적인 함수 기계가 된다. 어떤 방식의 인풋이 들어오던 간에 결과값은 정체성이 해리되는 것으로 산출된다. 그 동기와 과정은 확인할 수 없지만, 교환 주체든 경제 주체든 자본주의 속에서 주체성을 가지려는 자가 마주하게 되는 말로는 자아의 해체와 정체성의 해리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관점이 녹아있다. 그는 자본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과정이 아닌 결과에 있으며, 그 결과는 (자본의 대리자인 화폐가 그러하듯) 일종의 상징물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자본주의와 같은 동기나 원인을 검토할 수 없는 사회체계의 과정에는 침투가 있다고 바디 호러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브랜든 크로넨버그 영화에서 의 영화가 가지는 공포는 자본주의가 정체성을 해체하는 공포라기보다 자본주의라는 사회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로 보인다. <인피티니 풀>의 인물들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행위를 반복하지만, 그들이 가학적인 대리 처형을 반복하는 이유는 끝까지 공허한 미지수로 남는다. 여기에는 우려나 두려움 혹은 걱정보다 어떤 냉소가 짙게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피티니 풀>에는 유달리 이질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제임스는 대리 처형을 경험하고 난 뒤, 대리 처형에 빠진 자들이 만든 모임에 빠지게 된다. 제임스가 모임의 일원이 되는 순간, 영화는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모임을 일원들을 하나 하나 소개한다. 이 장면은 마치 머그샷 혹은 프로필처럼 연출되어 있다. 유달리 인위적인 연출의 개입이 두드러지는 이 장면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이미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과정을 검토할 수 없는 사회체계 속에서 인간이란 그러한 표상 밖에 남지 않은 체계의 대상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브랜드 크로넨버그의 냉소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자본주의의 본질 자체가 냉소일 수도 있겠다.

 

 

글·이현재
평론가.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2021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게임비평상. STRABASE 객원연구원,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현재의 시네마크리티크」에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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