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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일상의 공평한 중력, 〈쇼잉업〉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일상의 공평한 중력, 〈쇼잉업〉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3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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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잉업〉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쇼잉업〉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21세기가 20년 지났지만, 지난 20여 년간 포틀랜드만큼 흥미로운 독립영화를 꾸준히 생산하며 인상적인 성과를 가시적으로 생산해 낸 지역은 없을 것이다. 최근까지도 포틀랜드는 미국 독립영화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하며 데보라 그래닉의 <흔적 없는 삶>(2018), 마이클 사노스키의 <피그>(2021) 등 전세계 시네필들의 주목을 받는 독립 영화를 생산해냈다.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꾸준히 활동해온 캘리 라이카트 역시 <올드 조이>(2006) <웬디와 루시>(2008)부터 <퍼스트 카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포틀랜드와 인연을 맺어왔다. 포틀랜드 출신인 구스 반 산트가 미국 독립영화에 대한 상징성과 함께 포틀랜드 자체에 영화산업이 주요한 문화 산업으로 뿌리 깊게 자리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여전히 감독들에게 포틀랜드가 매력적인 지역인 이유는 포틀랜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흥망성쇠의 드라마에 있을 것이다.

포틀랜드는 지난 10년간 가장 드라마틱한 흥망성쇄를 그린 도시 중 하나였다. '로컬라이즈'라는 명분으로 브랜딩 되었던 포틀랜드 지역의 문화적 약진은 새롭고 젊은 신규 인구를 유입시키며 포틀랜드를 신흥 도시로 만들었다. 포틀랜드로 쏟아진 신규 인구는 자연스럽게 포틀랜드에 젠트리피케이션과 부동산 자산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기존 자산가치를 지불할 능력이 부족해 포틀랜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그곳에 삶을 터전을 잡고자 했던 소상공인들을 좌절시키는 현상이었다. 포틀랜드를 새롭게 브랜딩 시킨 소상공인들이 빠져나가고 프랜차이즈들이 그 자리를 매우기 시작한 순간, 유동성을 소진해야 하는 기업들의 관점에서 포틀랜드의 젠트리피케이션는 상업 부동산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비춰졌다. 시 차원에서도 기업들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포틀랜드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포틀랜드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포틀랜드는 각종 정책을 통해 하이테크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와 높은 세수 창출을 통한 복지정책의 부흥 등 선순환을 어느 정도 이뤘으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시적 갈등과 빈부격차를 낳았다. 포틀랜드의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홈리스가 된 이들이 교외에 트레일러 촌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도시적 삶에서 낙오된 이들은 포틀랜드 시의 새로운 골치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교외로 떠난 이들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숲 속으로 사라진 이들에게서 친환경적인 삶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이는 '하이터치'라는 고유어와 함께 포틀랜드를 감성적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로 만들었다. 하지만 포틀랜드가 도시적 삶에서 낙오된 이들까지 품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포틀랜드는 친환경이라는 테마를 두고도 빈민과 도시, 낙오와 발전, 가난과 부유를 함께 둘러싸게 된 모순적 도시로 변모했다. 

그리고 코로나 봉쇄와 svb 파산을 기점으로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자금난을 겪으며 실리콘밸리와 함께 포틀랜드 역시 불황 국면으로 들어갔다. 도시 전반에 불어닥친 위기와 함께 포틀랜드는 새로운 삶과 기회, 과거와 미래의 갈등을 둘러싼 여러겹의 레이어가 새로운 갈등들을 일으키며, 이야기를 발굴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예술가들의 관심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도시 전반의 위기를 둘러싸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포틀랜드로 떠나왔던 신세대와 이들이 도시 전반에 인플레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자신이 일궈온 삶의 터전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구세대가 현재까지 매듭을 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태다. 포틀랜드 시민들의 삶은 코로나로 인해 서로 거대한 충돌의 장을 맞으며 시위나 폭동 등을 통해 판을 완전히 리셋시킬 부정성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며, 나날이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빈민들의 게토화를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쇼잉업〉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쇼잉업〉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캘리 라이카트의 <쇼잉업>은 위와 같은 사회 현상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라이카트가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사회 현상이나 사회 갈등으로 인한 풍경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인물과 환경의 관계에 집중해왔으며, 그 중에서도 인물이 환경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그려왔다. 그러나 <쇼잉업>은 여러모로 그의 커리어에서 분기점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다수 보이는 영화다. 가장 먼저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 <믹의 지름길> <어떤 여인들> <퍼스트 카우> 등에서 꾸준히 드러내왔던 떠돎의 상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더불어 하부 계급에 속하지 않는 인물로서 앞선 영화들의 인물들이 가졌던 억눌린 감정 또한 보이지 않는다. <쇼잉업>의 주인공은 어딘가에서 꾸준히 전시할 역량이 있는 중견 작가이며, 그의 어머니는 예술 대학의 학장이기 때문에 부모의 꾸준한 지지와 돌봄을 기대할 수 있는 상태다.

라이카트는 <쇼잉업>만큼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인물을 다룬 적이 없다. 대신 라이카트는 생계에 걱정이 없는 인물 '리지'(미셸 윌리엄즈)가 고민과 스트레스 속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노동을 스크린에 담는다. 리지는 전시회 마감을 위해 영감 없는 작품 활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발품을 팔며, 미술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자신의 동료이자 라이벌에게 신경을 긇힌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은 동료와의 새로운 우정도 아니고, 새로운 삶의 활력도 아니며, 작가적 각성도 이루지 못한, 전미 수많은 지역 어딘가에서 열리는 전시회 하나일 뿐이다. 라이카트는 탈일상으로 존재하는 예술의 신화를 일상의 영역으로 몰아넣으며, 포틀랜드의 양극화와 세대 갈등 역시 드라마틱한 신화나 특이한 현상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화편화한다. 

라이카트는 <쇼잉업>을 통해 우리의 일상은 갈등의 꿉꿉함을 벗어날 수 없으며, 하부 계급에서 상부 계급으로 이동한다 해도 쾌적함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누군가 일상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보는 이의 판타지라는 점을 설득한다. 결국, 라이카트는 <쇼잉업>을 통해 싸우고 반목하며 길항한다해도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 역시 일상의 일부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꾸준히 하부 계급의 일상을 비추며 그들의 삶을 재현해온 라이카트에게 일상이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되는 중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게 만든다. 결국 모두를 공평하게 만드는 것은 무언가를 견뎌야 한다는 눅눅함이라는 라이카트의 관점은, 변화란 무언가를 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것이라는 평범한 무게를 실감하게 만든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문화재단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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