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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단할 수 없는 삶 <괴인>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단할 수 없는 삶 <괴인>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1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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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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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 비어있는 피아노 학원에서 잠을 자던 하나(이기쁨)는 자신의 공간으로 침입해 오는 그림자를 본다. 이 그림자는 결국 그녀의 자리를 빼앗고 하나를 건물 아래로 추락하게 만든다. 침입자인 기홍(박기홍)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곳에서 곤히 잠이 든다. 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은 영화 후반부에 다시 한번 역할을 바꾸어 나타난다. 어스름하게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정환(안주민)은 자기 집 별채에 들어오려는 하나를 발견한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침입은 아내인 현정(전길)과 세입자 기홍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정환에게 환기시킨다. 그가 자는 사이에 두 사람이 몰래 밖을 나간 것이다. 이는 영화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침입자의 등장이 주거인인 정환과 기홍의 관계에 균열을 발생시키며 보금자리의 안락함을 빼앗는다. 이때 그 사실을 모르는 하나는 정환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이 2층에서 일주일만 지낼 수 있게 해달라 부탁하고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된다. 오프닝에서 화장실 문이 잠긴 게 이상하다는 경준(최경준)의 말을 무시하고 잠에 빠진 기홍처럼 하나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곤히 잠이 든다.

이처럼 침입자와 주거인이 역할을 바꾸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대구로 장식하는 <괴인>은 구성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던 하나가 자기 집 2층에서 자는 모습을 본 기홍이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때, 영화를 보는 관객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의 구성적 깔끔함 만큼이나,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는 사건의 모호함, 괴이함을 마주하게 된다. 기홍과 현정이 카페에서 보았던 고정 되어 있지만 떨어질 듯 느껴지는 돌의 그 기이한 감각처럼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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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은 사건과 관계의 모호함과 달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는 일면 명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홍이 친구에게 자기 일을 설명하며, 자신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로 보조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계급 또는 권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수인 기홍과 목수 보조인 경준의 관계, 임대인인 정환과 임차인인 기홍 간의 관계, 집은 없지만 월세를 내며 사는 기홍과 임대로 살 돈도 없어서 음악 학원에서 몰래 잠을 자는 하나와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영화의 핵심적인 무대가 되는 기홍의 주거지이자 정환의 집은 그것을 드러내는 은유적 무대로 활용된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공유공간인 2층을 제외하고 1층으로 한정해 보았을 때는 분리 된 애매한 공간을 계급과 권력의 알레고리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서로가 만나기 위해서는 계단이라는 수직적인 이동을 통하거나, 수평적이지만 문이라는 불편한 매개체를 통과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만들어, 앞서 언급한 이야기 구성처럼, 위와 아래의 위치 차이로 권력을 도식화 한 것이 아니라 수평적 계약 관계이지만 수직적인 계급의 차이를 지녔고, 한편으로 이웃이기도 한 정환과 기홍의 명확하면서도 모호하기도 한 인간과 사회 속 관계를 다층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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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면서도 모호한 인물관계와 공간처럼 <괴인> 속 각각의 인물들 또한 단순화할 수 없는 양면적 캐릭터들이다. 기홍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전기기사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르거나, 지인에게 허세를 부리고, 몰래 옆집 커플을 관음하거나, 낯선 여성에게 무례하게 호감을 표현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차를 부순 하나의 과거와 사정을 듣고서는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정환도 기홍의 임대인이자 자본적, 계급적 우위에서 그와 하나의 불행을 무료한 삶에 발생한 흥미로운 사건처럼 소비하는 인물이지만, 그 흥미로운 사건을 자신의 요구로 무리하게 파헤치다가 발생한 일에 관해 항의하는 기홍에게 사과하고 과도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 하나 또한 기홍의 차를 파손한 행위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배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인물이다.

<괴인>에는 영화의 제목과 달리 괴인은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관계에서 선을 넘지만, 그 선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 폭주하는 인물은 없다.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된 2층 공유공간처럼 선의 안과 밖을 애매하게 오가며 인간관계의 계급과 권력이 만들어 내는 긴장을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 경계선 주변을 맴돌 뿐 과도한 긴장과 장력으로 줄을 끊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핵심이 되는 미스터리 또한 그렇다. 누가 내 차를 찌그러뜨렸는지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력이 되지만, 차는 천장이 내려앉은 것일 뿐 굴러가는 기능에는 문제가 없다. 따라서 미스터리가 밝혀져 그것이 해결 단계로 넘어갔을 때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큰 교통사고를 겪었고 쉼터에서 나왔다는 하나의 과거를 듣고 그녀가 부모님을 잃고 힘들게 살고 있음을 짐작한 기홍은 그녀를 용서하고, 차 전체를 다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천장이 내려앉은 상태로 살기로 한다.

기홍에게 그러한 결정은 어쩌면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이미 천장이 내려앉은 차와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라 바위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감각만을 느끼고 뒤로 물러난 것처럼, 그는 자신이 카페에서 보았던 돌덩이와 같이 떨어질 것 같지만,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살고 있다. 망가진 핸드폰처럼 말이다. 기홍은 디자인은 적당히 베끼고 일은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서, 누구 밑에서 일하지 않고 큰돈을 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좋은 집에 살지는 못하지만, 좋은 집에 임차인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는 자기 집인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2002년에 한국이 월드컵에서 4강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16강까지만 갔더라도 충분했을 것이라며 그것을 보고 자란 30, 40대의 태도를 비난하는 정비 기사의 말은 기홍을 향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정말 정비 기사의 말대로 찌그러진 채로 사는 그의 삶은 기홍 그 스스로의 탓인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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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예컨대 정비 기사의 말은 하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마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불운 때문에 혹은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그저 운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사는 삶인데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고 얼버무리는 기홍의 말처럼 차가 찌그러진 것도 그로서는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삶을. 기홍의 삶 전체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정비 기사처럼 눈에 보이는 일부분으로 판단하고 비난한다. 기홍 또한 현정과 단둘이 술을 마시며 자신의 수염과 첫인상에 관해 자조적으로 묻는다.

<괴인>은 이처럼 우리 사회와 인간에 대해 말하는 보편적인 영화들처럼 세상의 모습을 계급이나 윤리, 겉모습으로 간단하게, 도식적으로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분리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모순적인 말처럼, 사랑은 하지 않지만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말처럼, 분명한 계급과 권력의 건축을 세우되 문으로도 계단으로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면서, 수직과 수평 사이의 인간관계와 인간 자체가 지닌 양면성에서 비롯한 긴장감, 기묘한 감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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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결말 장면으로 돌아오자. 피아노 학원에서 추락하여 떠돌던 하나는 2층의 잠자리를 되찾는다. 여전히 임시적인 거처이지만 그것이 그녀의 원래 위치였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바뀐 것은 침입자였던 기홍을 둘러싼 관계이다. 명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결말로 가기 직전 기홍과 하나, 정환, 현정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넷의 관계는 미묘한 틀어짐이 발생한다. 현정은 하나에게 관심을 두는 정환을 바라보고 말하지 않는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질투하는 것인지, 한심하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별생각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정은 정환이 잠든 후 기홍에게 찾아가고, 술을 더 마시기 위해 그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간다.

둘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환이 깨어있고 현정은 깨어있는 정환을 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말하지 않고 외투를 벗는다. 불륜인지 아니면 새벽에 술만 마시고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정환이 하나에게 가진 관심에 관한 복수 인지, 사랑하지 않는 정환과 관계에서 비롯한 사건인지, 아니면 그저 해프닝인지 알 수 없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기홍은 핸드폰을 확인하고 2층에 누워있는 하나를 확인한다. 그것만으로도 정환이 하나를 들여놓았고, 자신과 현정이 몰래 나갔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이제 기홍이 할 행동은 두 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정환과 만나 해명 혹은 변명하거나, 영화의 초반부에 침입자를 피해 보금자리 밖으로 추락했던 하나와 대구를 이루듯 탈주하거나 떨어지는 것이다.

이 모호한 불편함 속에서 기홍은 그 무엇도 아니라 1층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잠에 든다. 혹은 자기 위해 노력한다. <괴인>은 팽팽한 끈의 장력이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구성적으로 원형을 이루려는 순간, 그것을 비틀어 구멍을 낸다. 영화에서 기묘하게 도드라진 한 쇼트처럼, 흐릿한 포커스에서 시작한 긴 데드타임, 전후 씬과 연결이 되는 듯 되지 않는,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한 여성과 남성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꿈과 같은 장면처럼 말이다. 그동안 영화가 기홍의 시점에서 진행하며 바라본 것과 달리, 이 엔딩은 정환의 시점으로 진행하여 기홍이 겪은 사건을 관객들이 알 수 없게 만들면서 우리를 그 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면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 안에서 정비 기사처럼 단언하거나, 기홍의 수염 난 얼굴의 첫인상을 보고 누군가 선입견을 품듯 판단하거나, 아니면 불편하고 모호한 관계와 사건의 긴장감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험 앞에 선다. 이때 화면 위로 떠오르는 엔딩크레딧의 백색 빛은 잠으로 떨어지는 기홍의 감각이 아니라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영화, 재단할 수 없는 삶을 바라보는 우리 관객의 감각이 된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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