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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또 다른 책읽기 (1)
[김정희의 문화톡톡] 또 다른 책읽기 (1)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7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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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이 그렇게 힘듭니까

 

서울시 일자리 Herb ‘Catch Event’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여 방법: Google Form에 작성한 댓글 Capture 해서 올리기

 

서울 Con’Contents, Beauty, Fashion 등을 주제로 열리는

세계 최초의 Influencer 박람회

주요 Influencer Line Up, Guide Map...

 

‘2023 Romantic 한강 Christmas Market’ 9m Tree Photo Zone, Luminarie,

Merry Village, 2m 높이의 대형 Snow Dome, 장애인 전용 Day, Winter Friends, Romantic Stage, Red Market

 

서울 Winter Festa 121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개최됩니다.

 

 

심심한 사과

위의 내용은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행사 홍보용 문구이다. 원래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울시 일자리 허브(Herb) ‘캐치업(catch 業) 이벤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여 방법: 구글 폼에 작성한 댓글 캡처해서 올리기

‘서울콘’은 콘텐츠, 뷰티, 패션 등을 주제로 열리는 ‘세계 최초의 인플루언서 박람회’

주요 인플루언서 라인업, 가이드 맵...

‘2023 로맨틱 한강 크리스마스 마켓’ 9m 트리 포토 존, 루미나리에, 메리 빌리지,

2m 높이의 대형 스노우 돔, 장애인 전용 데이, 윈터 프렌즈, 로맨틱 스테이지,

레드 마켓

서울 윈터 페스타가 1월 21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개최됩니다.”

서울시 홍보용 문구는 글만 한글일 뿐 영어를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내용의 절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서울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영어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몇 해 전 3.1절(삼점일절)로 시작되어 사흘, 금일, 고지식, 심심한 사과로 이어진 논란이

문해력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3·1절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상식의 문제일 수 있다고 애써 가볍게 생각했다가 금일이 금요일, 고지식은 높은 지식, 심심(甚深)한 사과가 심심해서 하는 사과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어휘력의 문제를 넘어서는 어떤 벽을 느꼈다. 그간 기발한 언어유희를 포함한 신조어와 줄임말을 접하면서 기성세대들이 새로운 문명과 더불어 배워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해력 논란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기존의 문명과 문화는 글을 통해 축적해 온 것이 아닌가.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우리나라 글은 훈민정음해례본에서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고 한 것처럼 배우고 읽기가 쉽다. 세종대왕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읽는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해하는 능력이 문제인데 문해력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어휘력이다.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인데 어휘력이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책을 읽는 습관을 키우고 학교에서도 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은 한자어가 많아서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자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한자 사용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매일 영어로 일기를 써서 남긴 윤치호(1865~1945)의 의견을 소개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자 사용에 대해 비판했던 일본 신문의 입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보다 더 한문에 의존한다는 내용이다.

이 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왠지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다는 사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배워왔기 때문인데,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한자 사용을 사대주의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윤치호가 한문에 더 의존하는 것이 일본이라고 비판했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인 일본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윤치호의 일기가 쓰였던 때로부터 백 년이나 지난 2023년에 와서 멀쩡한 우리 말과 글을 두고 영어로 바꾸어 읽고 쓰게 하는 공공기관이 아쉬울 뿐이다.

 

1921512일 목요일

 

東京日日新聞이 보통학교에서 조선어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조선의 모국어가 너무 빈약하다 보니, 조선인들 스스로 언문보다 한문을 더 많이

사용한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면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장려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필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얼간이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보다 더 한문에 의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아울러 가타카나만으로는 장문(長文)

기고나 책을 저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한글로 책을 집필하고 번역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은 것 같다.

더구나 언어의 장단점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전반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

이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가지고 가장 중요한 초등교육을 진행해서 어린아이들의 미숙한 두뇌에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학부모들은 모르는 e-북드림 서비스

문해력 논란 중에 교육부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2025학년도 부터 단계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고, 2028년부터 모든 초·중·고교에서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을 AI 디지털교과서로 가르친다고 한다. 책가방 대신 태블릿 PC하나만 들고 등교하게 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서 전자책 무료 구독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e-북드림’ 이라는 이 서비스는 전국의 초중고 학생 ·학교 밖 청소년·교원을 대상으로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무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정작 학부모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했고, 로그인 해보았는데 원하는 책이 없었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런데 이용기간은 2023.7.1.(토) - 2024. 6. 30(일) 이다. 이 사업과 연계하여 ‘디지털 기반 독서활동 우수사례를 발굴하고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이(e)-북드림, 슬기로운 독서생활 공모전>도 개최한다고 한다. 출품 내용은 학생의 경우 독서활동 영상 콘텐츠 (3-5분 이내) 교사는 수업 사례보고서(A4 5매 이내) 및 영상 콘텐츠(5~7분 이내)이다. 그런데 신청기간은 7월3일부터 9월 18일까지라고 하니 이미 신청기간은 끝난 지 오래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용기간이 7월1일부터인테 <이(e)-북드림, 슬기로운 독서생활 공모전>신청기간은 7월3일부터라니.

교육부 보도 자료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 등 교육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학생들이 디지털 역량과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함양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맞춤 독서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학교에서의 독서교육이 활성화되고, 나아가 책 읽는 학교 문화가 확산 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글·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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