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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일상과 예술 사이 <쇼잉 업>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일상과 예술 사이 <쇼잉 업>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1.0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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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 직원이자 조각가인 리지(미셸 윌리엄스)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개인 전시회라는 과업 외에도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동생,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 세 들어 사는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는 상황, 집주인이자 친구이며 같은 예술가 동료이기도 한 조(홍 차우)에게서 느끼는 불만이라는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이때 그녀의 일상 안에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상처를 입혀 날지 못하게 된 비둘기가 들어오게 된다.

비둘기에 대한 리지의 태도는 복합적이다. 자신이 한 것은 아니지만 반려묘가 해코지하여 다친 비둘기를 죽더라도 밖에서 죽으라고 쫓아냈다가, 다음날 그 비둘기를 조가 구출하여 치료한 후 그녀에게 맡겼을 때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이러한 모순적인 행동이 자신과 모든 면에서 다른 조를 향한 열등감의 발현인지 아니면 다친 비둘기를 버린 죄책감 때문인지, 단지 삶과 일상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대상에 관해 관심과 걱정을 거두지 못하는 리지의 본성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출처: 다음 영화
출처: 다음 영화

이처럼 <쇼잉 업>은 예술 대학을 배경으로 예술인과 창작 과정을 묘사하면서 파인 아트와 그것을 둘러싼 문화나 사회적 요소들 혹은 예술 작업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창작 과정을 방해하는 일상의 요소들 사이에서 번민하는 예술가이자 동시에 누군가를 질투하고 아픈 이를 걱정하고 불편한 상황에 답답해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 사이에서 모호하게 서 있다. 때문에, 예술과 삶의 관계에 관해 말하면서 특별히 어떠한 대상을 비판하거나 옹호하거나 판단하지 않기에 영화를 끝까지 보았을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예술에 관해 말할 때 <쇼잉 업>은 단순히 보여주기만 한다. 마치 <퍼스트 카우>(2019)에서 빵을 만드는 작업처럼, 특별하고 낭만적인 창작의 작업이 아니라 하루하루 출근하며 노동하는 행위로서 예술대 학생들의 모습과 리지의 작업을 담는다. 작품에 관해 이런저런 비평을 하는 언급들이 지나가지만 결국 우리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창작 중인 과정이거나, 앞뒤 맥락이 생략된 예술로서의 예술이자 리지의 조각품이 드러내는 미적 감흥뿐이다. 즉 창작이라는 노동과 예술의 결과물 사이에 연결고리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고한 분리는, 영화가 진행되며 예술의 아름다움이 레이카트의 다른 영화들처럼 정처 없이 떠돌지만 작은 도시(웬디와 루시), 사막(믹의 지름길), 숲(퍼스트 카우)에 갇혀 각자의 문제와 맞닥뜨리는 삶과 그것이 속해 있는 세계에서 비롯하고 있기도 함을 드러내며 모호해진다.

 

출처: 다음 영화
출처: 다음 영화

리지도 예술가로서 작업실에 또는 예술가 사회 안에서 헤매고 있는 인물이다. 계급적으로 레이카트의 전작 속 인물과는 다른 위치에서 생존이라는 절박한 문제와 결부된 것은 아니지만, 리지는 조와의 관계에서 세입자와 집주인이라는 계급뿐만 아니라 대학과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평가의 차이와 조용하고 개인적인 자신과 달리 사교적이고 큰 걱정 없이 사는 그녀의 성격적 차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또한, 이혼한 것인지 별거 중인지 알 수 없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과 정신적인 문제를 앓는 동생이 있고, 아버지에게는 주기적으로 찾아와 민폐를 끼치는 친구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리지에게는 이 모든 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상처를 입고 작은 상자 안에 갇혀 생의 문제에 직면한 비둘기는 이러한 리지의 마음에 거울이 되는 대상이다. 숨을 헐떡이는 비둘기를 보고 걱정하며 병원에 가고, 별로 춥지 않은 날씨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자신을 보는 마음으로 물주머니가 식을까 걱정한다. 그녀의 이러한 우려는 기우였을까? 영화의 결말에서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전시장 안을 날아다닌다. 많은 이야기에서 늘 보통의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와 광인이 비둘기의 붕대를 풀고 전시장 밖으로 풀어주자, 비둘기는 사람들의 시야 밖으로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리지는 새를 찾아 전시장 밖을 두리번거리지만, 보이는 것은 나무와 건물들, 하늘과 같이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의 풍경이다. 여기에는 그녀의 작품들과 유사하게 특별한 맥락 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미지의 미적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출처: 다음 영화
출처: 다음 영화

예술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사실 일상의 작은 고민들, 인간관계, 예술가의 노동을 비추며 삶과 예술의 관계에 관해 부드럽게 읊조리고 있었다. 드라마 채널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션(존 마가로)에게 리지가 DVD를 사줄까 물어보자, TV에 무엇이 나올지 알면 무슨 재미냐고 했던 것처럼, 재방송 되는 드라마의 반복적인 틀 안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즐거움을 만들 듯, 삶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리지의 전시회에 찾아온 조가 여러 조각품 중 하나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예술은 반복되는 노동(창작) 안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을 품는 삶에서 비롯한다. 최고의 작품이 가마 안에서 불타 버렸지만, 그 작품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닌 것처럼 말이다.

통제된 것 사이로 스며든 우연으로 완성된 리지의 조각품들이 그녀의 삶과는 무관한 멋을 지닌 듯 보이면서도, 시점 쇼트로 확대되어 보이는 여성 조각상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조용하고 작은 문제들로 어지러운 그녀의 삶을 투영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쇼잉 업>은 명쾌하면서도 기묘한 모호함을 품은 삶과 예술을 과장하지 않고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비춘다. 극적이지 않은 듯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면서, 리지의 삶 속 문제들이 그녀의 전시장 안에 모여들어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비둘기라는 비일상적 대상을 따라 극적 결말로 마무리하면서 말이다. 이 결말은, 리지가 걱정했던 그 무엇도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지만, 건강을 되찾은 비둘기의 날갯짓이 주는 동적인 해방감과 곧바로 이어지는 조용하고 경건한 이미지의 풍경을 통해 모든 걱정과 불안이 아무것도 아닌 듯한 편안함과 따스한 감흥 안에 오래 머물게 한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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