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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과정이 생략된 결말의 허전함-<리바운드>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과정이 생략된 결말의 허전함-<리바운드>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05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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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2023)는 스포츠영화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이다. ‘교과서와 같다’라는 표현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먼저 <리바운드>가 스포츠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충실하게 따른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장르적 특징은 <리바운드>가 관객들에게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된다. 반면 인물, 사건, 전개가 전형적이고 상투적이어서 관객들에게 진부한 영화라는 이미지를 줄 있다는 것은 단점이다. 그렇다면 저울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을까?

흔한 말이지만, 대중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영화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거나 혹은 반 발짝 옆길로 빠지는 전략이 필요하다. 너무 뻔한 스토리텔링도, 너무 낯설거나 앞서 나가는 스토리텔링도 관객과 소통하는 데 방해가 된다. <리바운드>는 한 걸음 혹은 반 발짝 뒤에서 기존 스포츠영화의 장르 문법을 따라간다. 문제는 앞사람의 등을 쳐다보며 따라가기만 한다는 것이다.

<리바운드>는 부산 중앙고 농구부가 2012년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에서 기록한 실화를 각색한 영화이다. 그리고 인물, 주제는 물론 이야기 전개 방식까지 실화 소재 스포츠영화의 특징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리바운드>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두드러져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를 불쑥 제시하기 때문이다.

<리바운드>의 인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결핍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인물에게 상처가 된다. 강양현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MVP 출신이다. 하지만 농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채 지금은 모교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농구부는 학교 동문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형식적으로만 유지되는 처지이다. 팀은 있으나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다. 또 학교 관계자들이 강 감독을 앞에 두고 ‘싼값에 쓴다’라고 말할 만큼 농구부는 찬밥신세이다.

 

그 팀이 온전한 것도 아니다. 강 감독은 정규 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없고, 배규혁은 발목 부상과 가난으로 농구를 떠난 뒤 길거리대회에서 돈내기 게임을 했고, 홍순규는 학교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던 중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센터로 스카우트되고, 허재윤은 초등학생 때부터 농구를 했으나 벤치만 지킨 탓에 공식 경기 출전 기록이 없다. 자칭 마이클 조던인 정진욱은 열정만 프로급이다. 그나마 포인트 가드 천기범이 에이스로 버텨준다. 하지만 천기범이 농구부에 합류한 이유인 센터 한준영은 곧바로 서울 용산고로 떠나버리고 만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영화의 서사 전개를 어느 정도 눈치챈다. 그러면서도 기대한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신임 코치와 6명뿐인 선수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준우승까지 한 것일까? 하지만 실화는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이다. <리바운드>는 영화적인 설정과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설정과 전개가 익숙하고 평면적이다. <국가대표> 및 <국가대표2>와 판박이인 점도 눈에 띈다. 강 감독은 방종삼과 강대웅 감독, 천기범은 밥(차헌태)과 리지원을 닮았다. 다른 선수들의 성격도 비슷하다. 감독이 선수를 모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 팀이 된 선수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설정도 마찬가지이다.

스포츠영화에서 인물 설정과 팀 구성 과정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스포츠영화의 이러한 특징이 장르 문법으로 통용되고, <리바운드>는 교과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바운드>는 서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중반 이후에 고유의 개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개성은 일차적으로 디테일에서 나온다. 선수 개인의 인물 묘사와 행적, 사건과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리바운드>는 에피소드가 평면적이다. 그래서 인물과 사건이 관객의 손에 잡힐 듯 생생하지 않다. 즉 이야기의 개연성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핍진성과 사건 전개 과정이 허술하다. 천기범과 배규혁의 갈등 내용과 그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영화 후반의 역동적인 경기 장면이 주는 감동이 희석되고 만다.

스포츠영화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주제의 측면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포츠를 통한 인물의 내면 성장이나 희생정신, 도전과 모험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리바운드>는 스포츠영화의 이러한 장르적 특징에 충실하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각색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장르의 영화도 유사하지만, 스포츠영화에서는 결말보다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사건의 결과를 알고 있는 실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리바운드>는 아쉽게도 과정의 핍진성을 징검다리처럼 건너뛴 채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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