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택시 드라이버>와 <살인자ㅇ난감>에 흐르는 ‘파시즘’의 그림자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택시 드라이버>와 <살인자ㅇ난감>에 흐르는 ‘파시즘’의 그림자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19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택시 드라이버>(1976)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은 불면증에 적합한 일자리로 택시 운전을 선택한다. 26살의 젊은 청년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명시되지 않는데, 트래비스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퇴역군인이라는 설정에서 전쟁터의 끔찍한 경험에서 기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증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베트남전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미국의 패배로 끝났기 때문에 당시의 퇴역군인들은 조국을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헌신한 영웅이라기보다 패권국가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트린 패잔병으로 치부되었다. 따라서 트래비스의 불면증에는 일종의 희생자라는 인식 속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오프닝씬은 전쟁터 같은 이미지와 불길한 사운드로 시작해 붉은색이 감도는 트래비스의 불안해 보이는 눈의 클로즈업(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의 오프닝씬에서 차용한 장면)으로 연결된다. 트래비스의 시선에 의한 택시 앞 유리창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구체적인 형상이 사라진 잭슨 폴락의 추상화 같다. 트래비스의 붕괴된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트래비스는 뉴욕의 밤거리를 운전하며 더러운 시궁창 같은 도시에 치를 떤다. 그는 “쓰레기는 밤에 쏟아져 나온다. 매춘부, 깡패, 남창, 게이, 마약중독자 등등, 인간 말종들이다. 언젠가 저런 쓰레기를 씻어내 버릴 비가 쏟아질 것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아마도 베트남에서 트래비스는 미국 병사를 (명목은 민주주의/실제로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로, 베트콩을 비롯한 대다수 베트남인을 (민주주의/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악의 화신으로 단정하고, 악을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용감하게 싸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래비스는 악과 싸웠던 자신이기에 뉴욕의 흘러넘치는 불결함을 민감하게 감지한다고 확신한다. 승객으로 택시에 탄 정치가 팰런타인이 국내 최고의 현안에 대해 질문하자, 트래비스는 “냄새나는 하수구 같은 이 도시를 청소해 달라. 어떨 땐 인간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미쳐버릴 정도다. 대통령이 화장실 물 내리듯 말끔히 씻어내려야 한다”라고 답하며 혼자 중얼거린 생각을 외부로 표출한다.

어느 날, 트래비스는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에서 ‘천사’ 같은 여성을 만난다. 팰런타인의 대통령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벳시다. 벳시는 허영심 많은 공허한 인물일 뿐인데, 뉴욕시를 문제투성이라고 인식하는 트래비스의 강박증이 그녀를 천사로 여기는 환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트래비스는 벳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데이트하는 데 성공하지만, 문화적 아비투스의 격차로 인해 부주의하게도 그녀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벳시에게 매몰차게 거부당한 트래비스는 좌절감으로 분노가 더욱 커지고, 심적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트래비스는 다량의 총기를 구입하고 체력을 강화하는 훈련에 돌입한다. ‘정의를 구현할(사실은 분노를 표출할) 진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래비스는 “인간쓰레기와 싸우는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하면서, 인간쓰레기를 청소할 임무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트래비스가 거울을 보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나 (청결한 숲과 호수를 연상시키는) 모호크족의 머리를 한 장면에서, 그의 망상증을 가늠할 수 있다. 트래비스는 물건을 사러 들른 상점에서 총을 든 흑인 강도가 주인을 위협하는 걸 보고 바로 총을 쏴서 죽인다. 이때 상점 주인이 강도의 죽음을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하자, 트래비스는 정의를 실현하는 자신의 임무를 확인하게 된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팰런타인을 암살하려던 트래비스는 경호원의 삼엄한 제지로 포기한다. 대신 그는 13살의 나이에 매춘하는 소녀 아이리스를 구해내기 위해 사창가로 발길을 돌리고, 그곳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다. 총을 든 경찰, 피투성이 상태로 눈을 감는 트래비스, 사건 현장을 서서히 빠져나가는 버즈아이뷰 쇼트의 카메라 등은 트래비스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트래비스는 죽지도 않았고 감옥에 가기는커녕 놀랍게도 범죄자들과 총격전을 벌인 택시 운전사 영웅, 아이리스를 부모에게 돌아가게 만든 위대한 영웅이 되어 있다(이러한 결말에 대해서는 죽어가는 트래비스의 환상이라는 등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에 대해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가 지적했듯이, 트래비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범죄자들을 해치웠다는 이유로 살인자가 영웅이 되는 결말은 ‘파시즘’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로빈 우드는 스코세이지 감독보다는 시나리오를 쓴 폴 슈레이더가 파시즘적 성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파시즘에 대한 연구서 『파시즘』에서, 로버트 O. 팩스턴이 나열한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에는 ‘어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인 위기감’,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도덕적 한계가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가능하다면 동의를 구하겠지만 필요할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윤리적⋅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를 추구한다’라는 파시즘의 목표 가운데 일부는 트래비스의 생각과 영화의 결론에 그대로 부합된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드라마 <살인자ㅇ난감>(2024)에도 그대로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이탕은 군대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이탕은 편의점 손님으로 마주쳤던 남자가 마구 폭력을 휘두르자 망치로 반격하다 그만 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남자의 정체는 강원도 연쇄살인의 범인이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이탕은 죽인 남자가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죄책감이 싹 사라진다. 이탕의 범죄가 문제없이 마무리될 즈음, 살인을 목격한 여자가 범행도구인 망치를 갖고 있다고 협박하며 2백만 원을 요구한다. 이탕은 어렵게 겨우 돈을 마련하는데, 여자는 이번 한 번이 아니라 매달 2백만 원을 바쳐야 한다며 비웃는다. 격분한 이탕은 여자를 살해한다. 이탕은 자살까지 시도하며 괴로워하지만, 이번에도 죽인 여자는 보험금을 타려고 부모를 살해한 사이코패스로 밝혀진다.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배트맨 로고의 백팩에, 배트맨 티에, ‘HEROES’라는 글자가 박힌 잠바를 입은 남자 노빈이다. ‘배트맨과 로빈’에서 로빈의 이름을 가져온 노빈은 실력이 뛰어난 해커로서, 함께 세상을 바꿀 배트맨 같은 팀원을 찾다가 이탕을 발견하게 된다. 노빈은 이탕의 살인에 대해 “잘못한 게 없다”면서, 트래비스의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한다. “인간쓰레기를 청소한 것뿐이다. 법망을 피한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에게 정의 구현을 한 것이다.” 노빈은 “복수를 위한 살인은 감정에, 악의의 살인은 그 대가에 발목을 잡히겠지만, 이탕의 살인은 어떠한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대가도 없는 순수한 선의이자 절대적 정의 그 자체”라며, 연쇄살인을 합리화한다.

트래비스처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탕과 노빈에게는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탕은 무자비한 학폭에 시달렸으며, 노빈은 어렸을 때 강도에게 부모를 잃었다. 학폭의 주동자들은 모두 잘 살아가고 있고, 강도는 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겪은 폭력에 무심한 세상에서 그들의 범죄는 더욱 정당화된다.

이탕과 노빈의 살인 행각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동력이 떨어질 즈음, 송촌이 등장한다. 교통과에서 근무했던 형사 출신인 송촌은 노빈이 처음 팀원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송촌이 ‘죽일 놈을 선별하는 게 헷갈렸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살인을 일삼는 살인마가 되자, 노빈과 결별하게 된다. 송촌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사이코패스로 설정되자, 드라마의 후반부는 그의 악행을 전시하며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2010) 같은 영화처럼 흘러간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이탕과 노빈 그리고 또 다른 주요 인물인 형사 난감이 노빈의 희생까지 초래하면서 송촌을 간신히 제거하는 과정으로 장식된다. 여기서 이탕의 어두운 판본 또는 그림자 같은 인물로서(이탕이 배트맨이라면, 송촌은 조커일 것이다), ‘죽일 놈을 선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다시 말해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송촌의 역할은 빨리 죽었으면 싶은 잔인무도한 살인마로 축소된다.

트래비스처럼 이탕 역시 감옥에 가지 않는다.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공권력이 주어진 형사 난감이 이탕의 범죄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탕은 죽어 마땅한 인간쓰레기를 식별할 능력이 있으며, 살인의 증거마저 남기지 않는 전지전능한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럼으로써 이탕은 송촌과 차별화되고, 그의 범죄는 합리화되며, 파시즘의 논리는 관철된다. 이 드라마는 이탕이 죽일 인간을 발견한 듯한 장면으로 끝난다. 송촌의 말에 의하면, “치울 놈은 산더미다”. 나치는 그 죽어 마땅한 인간을 유대인 등으로 지목함으로써, 대량 학살을 합리화했다.

 

사진 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