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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스터>를 위한 성긴 지도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스터>를 위한 성긴 지도
  • 김채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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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미국영화의 적자, PTA

 

  17살에 포르노 업계의 전설적인 스타, 존 C. 홈스(John C. Holmes)에 관한 모큐멘터리, <덕 디글러 이야기 The Dirk Diggler Story>(1988)를 제작할 정도로 영화광인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이하 PTA)은 스필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8살에 첫 영화를 만들었다. 뉴욕대학교에 진학해 영화연출을 전공했지만 단 이틀 만에 학교를 그만둔 PTA는 돌려받은 등록금, 도박에서 딴 상금 그리고 당시 여자친구의 신용카드로 대출 받은 자금을 모아 1만 달러 예산으로 단편 <담배와 커피 Cigarettes & Coffee>(1993)를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짐 자무시(Jim Jarmusch)의 <커피와 담배 Coffee & Cigarettes> 시리즈와는 하등 관련이 없지만, 자무시에게 <커피와 담배>가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작품이듯이, <담배와 커피> 역시 PTA의 유니버스를 고스란히 간직한 작품이다. 이 조숙한 천재는 이 영화로 1993년 선댄스에 픽업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를 장편으로 확대한 <리노의 도박사 Hard Eight>(1996)를 출시한다. 1994년에 완성된 러프 컷은 2시간이 넘는다는 이유로 제작자가 맘대로 편집해서 마켓에 내놓았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국 PTA가 2년 가까이 재편집한 파이널 컷이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면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1992),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의 <리틀 오데사 Little Odessa>(1994)와 더불어 1990년대 가장 빛나는 데뷔작으로 불리게 된다. 바로 다음 해, PTA는 다시 한번 자신을 ‘복제’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십 년 전 고등학생 때 만든 작품 <덕 디글러 이야기>를 확대한 <부기 나이트 Boogie Nights>(1997)는 바로 전해에 개봉된 <래리 플린트 The People vs. Larry Flynt>(1996)와 더불어 포르노 산업의 이면을 파헤친 수작이었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창대한’ 그것으로 인해 전 세계 개봉 이후 이 년 만에 국내에 선보일 수 있었다. <부기 나이트>의 주인공 덕은 온갖 고난을 딛고 다시 업계에 복귀하려 한다. 그는 포르노 촬영장 대기실의 거울을 보면서 마치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양, “나는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되뇐다. 이윽고 바지를 내려 러닝타임 내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다. 그리고 가라테 동작을 선보이면서 퇴장한다. 이상하리만치 숭고한 이 장면을 본 관객은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분노의 주먹 Raging Bull>(1980)에서 한물간 복서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니로)가 코미디 업소 대기실에 설치된 거울을 보면서 섀도복싱을 하던, 잊을 수 없는 엔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부기 나이트>의 성공은 PTA에게 탄탄대로를 깔아주었다. 이 영화 편집 도중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매그놀리아 Magnolia>(1999)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인용하지도 않았고 <분노의 주목>처럼 오마주로 마지막을 장식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PTA는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의 <숏컷 Short Cuts>(1993)에서 다중 플롯을 차용하고, ‘188분’이라는 러닝타임까지 그대로 따르면서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매그놀리아>의 딱 절반의 러닝타임으로 만든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2002)에서는 고전적인 영화 문법을 살짝 비틀어 평범한 러브스토리를 제목처럼 몽롱한 향기로 감싸 관객을 취하게 했다. 5년 후에 평론가들에게 PTA 최고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던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2007)는 <매그놀리아>와는 정반대로 스토리를 하나하나 쌓아서 만든 고전적인 연출 문법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5년의 숨 고르기 끝에 문제작 <마스터>를 선보인다.

 

2.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 <마스터>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 <마스터>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대다수 평론가는 호평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푸념하며,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라벨을 영화에 붙였다. 한편 PTA는 <마스터>가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스터>에 대한 엇갈린 반응은 ‘예술 영화’라고 불리는 많은 작품이 걸었던 길이다. 이 작품은 관점에 따라서는 종교극(사이언톨로지에 관한)이 될 수 있고 인간관계에 관한 우화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프로이트 관점에서 본다면, 자아의 세 형태가 벌이는 투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색다른 러브스토리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에게해를 떠돌던 오디세우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디세이아』의 영화 버전으로, 한 인간의 내면 여행담으로 볼 여지도 있다. 어쩌면 다양한 가능성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수렴시킨, <매그놀리아>와는 다른 방식의 다중 서사로도 읽힐 수 있다. PTA는 많은 편견들과 달리, 관객을 배려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인생작’이 내팽개쳐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PTA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처럼 알아듣기 힘든 힌트를 작품 곳곳에 심어놓은 채 학자들에게 보물찾기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은근히 친절하게 자신의 의도를 배우와 미장센을 통해 여러 번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그는 음악(노래 가사)을 이용해 인물 내면 탐구를 위한 상세한 여행 지도까지 작품 속에 삽입해놓는다.

 

3. PTA 버전의 ‘오딧세이아’

  영화가 시작되면, 배가 출발하면서 만든 포말(泡沫)을 비추며 한 인간의 내면을 향한 ‘오디세이’의 시작을 알린다. PTA는 이제 관객에게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는 1950년을 배경으로 진행되기에 그 전의 배경 사건은 몽타주 시퀀스로 처리하면 간단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PTA는 플래시백을 사용할 것인가 혹은 시간순으로 진행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왜냐하면 오프닝에서 보여준 포말 쇼트만으로 관객은 시간 배경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세 차례 반복해서 등장하는 포말 쇼트 중에 첫 번째 선보이는 오프닝 쇼트는 오디세이의 출발 이외에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포말 쇼트는 무시간성 혹은 시공간의 이동을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PTA가 발명한 특별한 시공간 이동 장치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45년 그 사이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수병으로 보이는 주인공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모래로 여자 나체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섹스 행위를 흉내 낸다. 동료들은 이 남자의 ‘미친 짓’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여기까지는 전장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군인들이 할 법한 행동이라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이 남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위하고 난 후, ‘모래 여자’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장면이 전환되면, 맥아더의 종전 연설이 보이스 오프로 들리는 동안 전함의 기관에서 빼낸 에탄올을 마시고 만취한 끝에 그는 마스트에 올라가 뻗어버린다.

 

  이 강렬한 오프닝은 관객이 프레디라는 인물에게 짙은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이어지는 제대 이후의 생활 묘사는 전형적인 에피소드식 구성을 따른다. 프레디는 사회 적응을 위해 교육받고 이 와중에 정신 감정까지 받는다. 하지만 그는 교보재로 쓰이는 그림 카드를 온통 성적인 것으로만 읽는다. 동료들은 그가 두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하게 울고 야뇨증 증세까지 있다고 말하지만, 프레디는 그건 전부 거짓이고 신장이 안 좋아서 그랬다고 둘러댄다. 그러다가 사실은 고향에서 온 여자의 편지 때문에 향수병이 도져서 그렇다고 둘러댄다. 검사관이 애인이냐고 묻자, 프레디는 ‘알던 친구 동생’이라고 답한다. 현재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 과거에 알던 친구, 게다가 당사자도 아닌 친구의 동생은 왜 편지를 보냈을까? 우리는 검사관과 달리 멀게만 느껴지는 친구 동생, 도리스를 기억해야 한다. 그 이후에 프레디가 검사관에게 했던 가족에 관한 진술 역시 아리송하다. 이 진술은 프레디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지만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윽고 그는 백화점 사진사로 근무하다가 손님과 다툼 끝에 그만두고 양배추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밀주로 같이 일하던 노인이 사망하자 그는 줄행랑을 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마스터’로 등장하는 랭카스터(필립 시모어 호프만)가 자신의 추종자들과 파티를 즐기고 있던 유람선에 몰래 잠입한다.

  알레테이아(Aletheia), 즉 ‘감춰진 것을 드러낸다’라는 이름을 지닌 이 배는 캘리포니아를 출발해 뉴욕을 향하는 중이다. 율리시즈가 온갖 고난에 직면하면서도 페넬로페와 재회하려는 일념으로 에게해를 떠돌던 것처럼, 프레디는 이제부터 알레테이아를 타고 미국 서부를 출발해 북태평양을 따라 파나마 운하를 건널 것이며, 카리브해를 경유하여 대서양을 다다를 것이다. 그 이후로도 알레테이아는 한참을 북상한 후에 마침내 또 다른 이타카, 뉴욕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PTA는 아마도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는 이 항해를 아주 짧게 요약한다. 프레디는 이 여정 중에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마녀 키르케 그리고 사이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스터를 만나, 내면에 숨겨놓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야 하는’ 특별한 시련에 맞닥트리게 된다.

 

4. 코즈(The Cause)와 프로세싱(Processing)

  몰래 배 안에 잠입한 프레디는 난동을 부리다가 잠이 든다. 아침이 되자, 승객 중 한 사람이 그를 깨워 ‘마스터’에게 데려간다. 마스터는 어리둥절해하는 프레디에게 “작가, 의사, 핵물리학자 이론 철학자. 그 이전에 한 인간이지. 자네처럼 나도 궁금한 게 참 많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연신 질문을 퍼붓는다. 마스터의 아내, 페기는 프레디와의 대화 후에 그가 오랜만에 밤에 글을 다시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얼떨결에 코즈(The Cause)라는 종교 집단이 벌이는 최면술, 프로세싱(Processing)에 참여하게 된 프레디. 마스터는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에, 영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모든 부정적인 충동을 그만두고 태초의 완벽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짐승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며 코즈의 핵심 교리이자 수행법인 프로세싱을 설명한다. 프레디가 점차 코즈에 동화되면서 그는 마스터의 도제, 실험체, 추종자 역에 충실하게 되고 점차 마스터와 정신적으로 공명하는 사이가 된다. 프레디는 시너, 에탄올, 페인트 희석제, 과일 주스 등 주변에서 눈에 띄는 액체를 이용해 밀주를 만들고, 마스터는 매번 다른 재료로 주조되는 프레디의 밀주에 흠뻑 빠진다.

  마스터는 왜 프레디의 밀주를 좋아할까? 답은 간단하다. 밀주에 섞인 재료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디 역시 즉흥적으로 아무거나 섞어서 밀주를 제조하기 때문에 그 역시 자신의 제조법을 설명하지 못한다. 마스터는 프레디의 과거에서 상처를 끄집어내 ‘프로세싱’을 통해 치유하여 그를 영적인 상태로 이끌려고 한다. 하지만 프레디의 상처는 너무 복잡한 요인들이 뒤섞인 상태라서 쉽사리 치유할 수가 없다. 온갖 액체가 섞인 밀주는 바로 프레디라는 인간과 그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래서 마스터는 프레디와 그의 ‘연금술’에 이끌리는 것이다. 가장 파악하기 힘든 인간, 보통 사람들에게 시행하는 프로세싱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이 실험 대상은 내용물을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마스터를 자극한다. 그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던 여타 신도들과는 너무 다른 인간이며 어쩌면 동물의 상태에 놓여있다. 프레디는 프로세싱을 진행하는 도중에 웃는다. 마스터는 그런 프레디에게 화내는 대신 “웃는 건 좋아. 왜냐하면 그건 동물의 상태니까!”라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화답한다. 끊임없는 프로세싱이 드디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마스터는 이 짐승의 트라우마 가장 깊숙한 곳에 ‘아는 친구 동생’, 도리스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레디는 도리스를 떠났고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도리스에게 돌아가겠다고 했던 옹이처럼 각인된 그 약속이 그를 이 세계 곳곳을 떠돌게 만든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떠돌다가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가 페넬로페 품에 안겼다. 그렇다면 이 가련한 현대판 오디세우스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그들이 프로세싱에 집착하는 사이 배는 뉴욕에 도착한다. 마스터는 추종자들을 데리고 대부호이자 신도 중 한 사람인 밀드레드 여사를 방문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스터가 프로세싱을 홍보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한 과학자가 나서서 비논리적이라며 딴지를 건다. 프레디는 밤에 그를 찾아가 린치를 가한다. 이제 프레디는 마스터의 실험체이자 도제에서 걸림돌을 제거하는 행동대장 노릇마저 하게 된다. 이윽고 마스터 일행은 또 다른 코즈의 신도인 헬렌 집에 머물면서 포교 활동을 편다. 그러던 어느 날, 불법 의료 행위와 횡령으로 마스터가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프레디는 이를 지켜보다가 분을 못 이겨 과도한 폭력성을 드러낸 끝에 마스터와 함께 수감된다.

 

5. 이런 사람(사랑) 또 없습니다.

 

# love scene 1.

  알레테이아 안에서 벌어지는 프로세싱 중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마스터는 프레디가 질문에 무성의하게 답하자 프로세싱 중단을 선언한다. 마스터의 갑작스러운 포기 선언에 외려 당황한 프레디는 프로세싱을 다시 하자고 청한다.

 

마스터 : 평생 갇혀 있게 된다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어?

프레디 : 도리스! 최고의 여자야. 언젠가 결혼할 거예요.

마스터 : 왜 그녀에게 돌아가지 않나?

프레디 : 돌아간다고 해놓고 가지 못했어요.

마스터 : 그 이유가 뭐지? 눈을 감도록 하게.

(마스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프레디의 플래시백)

마스터 : 단어가 떠오르나?

프레디 : 네….‘떠나다(away)’라는 단어요.

마스터 : 그 말을 누가 했지?

프레디 : 제가요.

 

  프레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를 실은 군함이 상하이로 떠나는 장면이 흐른다. PTA는 오프닝과 똑같이 포말을 비추면서 씬을 마무리한다. 프로세싱이 끝나자 만면에 웃음을 띤 마스터는 프레디에게 “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용감한 남자”라고 추켜세운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프레디, 둘은 즐겁게 밀주를 나눠 마신다.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너는 내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어떤 말일까? 어떤 남자라도 듣고 싶은 그 말을 마스터는 프레디에게 전한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말은 상대를 들뜨게 하지만 ‘가장 용감한 남자’라는 말은 남자에게 모종의 행동을 부추긴다. 이제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용기백배해서 불을 지고 섶에라도 뛰어들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 love scene 2.

  헬렌의 저택에서 경찰에게 연행된 마스터.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미친 사람처럼 경찰에 대들다가 프레디 역시 마스터 옆 감방에 수감된다. 프레디는 좁은 감방에 갇히자 폐소공포증이 발작해 기물을 파손한다. 그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벽을 발로 차지만 분이 풀리지 않자, 변기를 부순다. 그런 프레디를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다가 마스터가 빈정거리는 투로 프로세싱을 시전한다.

 

마스터 : 자네의 폐소공포증은 수백만 년 전부터 시작된 거야. 자네가 알기 전부터 시작된 전투라네. 이건 진정한 자네가 아냐.

프레디 : 닥쳐! 그 입 닥치라고!

마스터 : 지금 자네는 잠든 상태야. 자네 영혼은 자유로웠네. 하지만 침략자가 나타나 자네를 어둠의 길로 이끌었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으니 권위를 두려워하고 파괴적으로 된 거야.

프레디 : 네놈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다 네가 지어낸 거야. 너는 자기가 하는 말이 뭔지도 모르지?

마스터 : 내가 모른다고? 꺼져! 이 게으른 인간 말종 새끼야!

프레디 : 다 네가 만든 거야. 너나 꺼져. 네 가족조차 널 싫어해!

마스터 : 너한텐 나 말고 없잖아!

프레디 : 웃기시네. 거짓말하지 마라!

 

  감옥에서 마스터와 도제는 그동안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 폭발하면서 상대를 향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이 갈등은 폭풍 이후 잔잔해진 바다처럼 순식간에 마무리된다. 이윽고 두 사제는 감옥에서 출소한다. 야외에서 식사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잔디밭에서 엉겨 붙는다. 얼핏 보면 싸우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싸움이 아니다. 그들의 뒤엉킴은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흔한 전희이자 서로를 향한 최고의 애정 표현이다. 장 아누이(Jean Anouilh)의 희곡 『친애하는 앙트완 또는 사랑의 실패 Cher Antoine ou l'Amour raté 』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너희들은 아침이 올 때까지 함께 피 흘리고, 소리치고 싸우는 어린 두 마리 짐승 같구나.”

 

  이는 사랑하는 연인들을 지켜보는 조물주가 그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 두 사람은 지금 ‘지독한 사랑’을 하는 중이다.

 

# love scene 3.

 프레디는 극장에서 <꼬마 유령 캐스퍼 Casper the Friendly Ghost>(1945)가 상영되는 동안, 마스터에게 전화를 받고 영국으로 그를 방문으로 간다. 마스터는 아마도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영국으로 이주한 듯하다. 그는 교외의 으리으리한 저택에 거주하며, 이전보다 훨씬 교세를 확장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쿨(Cool)만 피우는 마스터에게 담배 한 팩을 건네며 두 사람은 진하게 포옹한다. 부인 페기는 두 사람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프레디에게 경계심 가득한, 날 선 몇 마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간다. 이윽고 이 공간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된다.

 

프레디 : 내 꿈에서 우리가 만난 곳을 알아냈다고 했죠?

마스터 : 되돌아가서 자넬 찾았지. 파리에서 우리는 우편 비둘기였네. 우린 풍선을 달고 우편물과 비밀 메시지를 전달했지. 프로이센의 봉쇄를 넘어 예순다섯 가지 임무 중에 두 가지만 실패했어. 최악의 겨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이곳을 떠난다면 다시 자네를 안 볼 거야. 하지만 자네는 여기 남아도 되네.

프레디 : 다음 생에서는요?

마스터 :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면 우린 철천지원수가 될 거야. 그땐 자비를 기대하지 마.

 

프레디가 비통하게 웃자, 마스터도 울먹이며 온 힘을 다해 ‘Slow Boat to China’를 부른다.

 

느린 배에 당신을 태우고 중국으로 가고 싶은데

나 홀로 가네요. 당신을 붙잡아 영원히 내 품에 안고 싶어요

당신의 모든 사랑이 먼 해안에서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세요

크고 반짝이는 저 달이 당신 마음을 녹이는 그곳

느린 배에 당신을 태우고 중국으로 가고 싶은데

그런데 나 혼자 가네요

 

  이보다 절절한 엘레지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던가? 그들의 사랑은 아득한 시공을 넘어 온갖 고난을 이겼지만 이제 여기서 종말을 고하려 한다. 프레디는 마스터의 저택을 나와 바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자를 만나 처음으로 '진짜' 섹스에 성공한다. 프레디는 여자와 섹스 도중에 마스터가 자신에게 했던 프로세싱을 그대로 따라 한다.

 

프레디 : 내가 질문하는 동안 내 눈을 보면서 눈 깜빡이지 않을 수 있어?

여자 : 아마도요. / 프레디 : 좋아 시작한다. 깜빡이면 안 돼. 벌써 깜빡이네. 시작한다. 이름이 뭐지?

여자 : 얘기했잖아. 까먹은 거예요? / 프레디 : 그냥 이름을 말해. 눈 깜빡였네. 처음부터 다시, 이름을 말해봐.

여자 : 윈 / 프레디 : 성까지 전부 말해.

여자 : 윈 멘체스터. / 프레디 : 다시.

여자 : 윈 멘체스터. / 프레디 : 전생이 있었나?

여자 : 그거야 모르죠. / 프레디 : 지금 삶이 전부가 아닐지 몰라.

여자 : 그랬으면 좋겠어요. / 프레디 : 당신은 최고로 용감한 여자야.

 

  이 장면은 과거에 랭카스터와 프레디 사이에 진행되었던 프로세싱을 남녀의 섹스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이윽고 씬이 바뀌면, 프레디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로 여자를 만들어 놓고 그 옆에 눕는다. 페티 페이지(Patti Page)의 '체인징 파트너(Changing Partner)'가 울려 퍼진다. 참으로 적절한 선곡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친절한 설명과 자기 참조가 삽입된 영화라니! 

 

6. 인간은 모든 영향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말과 행동이 위엄을 갖길 원하며, 그 힘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내가 했던 말을 타인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한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마스터>는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통제하려 드는 사람과 통제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투쟁의 장이다. ‘마스터’는 정치인, 구루(guru), 선생, 지도자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 중에서 타인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이 극대화된 존재는 단연 종교 지도자일 것이다. 마스터는 자기가 개발한 이론, 교리 혹은 깨달음으로 타인을 끌어들여 어떤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 프로세싱을 진행하는 동안 과학자가 마스터의 이론에 반기를 들자, 마스터는 그에게 먹고 있던 사과를 집어 던진다. 후반부에 코즈의 일원이자 추종자인 헬렌은 마스터의 새로운 저서에서 프로세싱의 질문 틀이 ‘기억하라’에서 ‘상상하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질문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느냐며 마스터의 이론에 의구심을 품는다. 화가 난 마스터는 헬렌을 12사도 중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로 취급하고, 그녀는 마스터를 경멸적으로 바라본다. 마스터는 자기가 펼친 자기장이 위협받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는 자기의 영향력 아래에 모든 것을 두려 한다.

 

  코즈의 지도자인 마스터는 인간의 나약한 곳을 파고들거나 도저히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점으로 신도를 끌고 와 불가해의 신비 속으로 타인을 빠뜨린다. 애초에 프레디는 마스터에게 코즈의 이론을 증명해줄 가장 적임자였다. 그는 상처받은 짐승이며 오랫동안 연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프로세싱으로 그를 인간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마스터는 그 권위를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다. 그래서 마스터는 프레디를 교화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뇌하려고 해도 동물의 상태에서 그를 빼낼 수 없다. 마침내 마스터는 어쩔 수 없이 프로세싱의 종료를 선언하고 둘은 포옹한다. 코즈 총회가 끝나고 마스터는 딸과 사위 그리고 프레디를 데리고 애리조나 사막으로 향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포인트 찍기’라는 게임을 한다. 드넓은 평원에서 저 멀리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전속력으로 왕복하는 이 게임 도중에 프레디는 돌아오지 않고 사막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가장 신심 가득했던 사도는 그렇게 마스터의 영향력에 벗어난다. 떠나는 프레디의 마음을 PTA는 친절하게도 조 스태포드(Jo Stafford)의 ‘No other love’를 통해 들려준다.

 

다른 어떤 사랑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없어요

이제 당신의 품이 주는 편안함을 알았으니 다른 사랑은 없어요

오, 매번 당신과 함께하는 달콤한 만족감

나는 당신의 키스에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어요

영원히 당신의 것 나는 당신의 사랑으로 축복받았어요

다른 사랑은 없답니다. 다른 사랑을 허락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의 주문의 경이로움을 알고 있답니다.

 

  마스터 곁을 떠나 다시 항해에 나선 프레디. 하지만 그의 페넬로페, 도리스는 이미 남의 여인이 되어 있다. 그녀는 짐 데이란 남자와 결혼해서 애 둘을 낳고 그의 성을 따라 ‘도리스 데이’가 되어 떠나가 버린 옛사랑이다. 그의 항해는 이제 목표를 상실한 채, 바다 한가운데에서 부유한다. 그는 매일 꿈의 공장인 극장에서 삶을 허비하는 중이다. <꼬마 유령 캐스퍼>를 보면서 마스터와 통화하는, 실재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이 장면 다음에 프레디는 영국으로 가서 그와 마지막으로 대면한다. 마스터와 사제는 ‘포인트 찾기’ 도중 이미 헤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의 이별 장면은 그전 씬의 반복이자, 관객의 비감 어린 파토스를 최대로 끌어올리려는 PTA의 전략이다. 마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로운 바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나. 자넨 뱃사람이니 집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원하는 곳으로 가게. 발붙일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로. 그 어떤 마스터도 섬기지 않고 사는 방법을 자네가 발견한다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려주겠나? 아마도 자네가 최초의 인물이 될 테니까."

  '그 어떤 마스터도 섬기지 않고 사는 방법'이란 이 세계에 살면서 자신을 둘러싼 영향 관계를 벗어던질 수 있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역학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연인’은 존재할지언정, 우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러니 프레디가 그러한 삶의 태도를 함양하고 있다면, 마스터 역시 그를 사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영향 관계에서 벗어난 프레디는 바닷가에서 사람이 아닌 모래 여인과 함께 누워있다. 어쩌면 이 해변은 그가 찾은 이타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페넬로페나 어떤 환영 인파도 없다. 그의 물리적 여행은 멈췄지만 내면 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7. 세 가지 인격에 관하여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드(id)는 모든 유전적인 요인을 포함하며 이는 인간 성격의 토대가 된다. 이드는 독일어로 ‘das es’이며, 영어로 이를 직역하면 ‘the it’이 된다. 이 희한한 영어식 번역어로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고 느껴, 학자들은 라틴어 id를 ‘das es’의 번역어로 선택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드를 ‘거시기’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드는 정신의 영역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며, 이는 인간의 신체 조직에 기인하는 본능이다. 프레디는 언제나 등을 잔뜩 웅크린 자세로 살아간다. 자아를 내면에 가두려는 이드의 본능이 그를 이 상태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프레디 역을 맡았던 호아킨 피닉스는 촬영 기간 내내, 이 특이한 자세를 유지한 채 지냈다. 프레디는 모래로 여자를 만들어 놓고 희롱하고 먼바다를 향해 자위한다. 한편 그는 금지된 밀주를 마시면서 정신의 고통을 이기려고 한다. 헬렌의 저택에서 코즈 신도들의 회합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기념하여 열린 파티 장면을 떠올려보자. 모두가 즐겁지만 프레디는 구석에서 새우등을 한 채, 그들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비친 여자들은 모두 발가벗은 채로 춤추고, 첼로를 켜고,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이드만으로 가득 찬 프레디를 관찰하면서 마스터는 속으로 환호작약한다. 마스터의 프로세싱은 인간의 이드를 에고(ego) 상태로 변화시키려는 최면술의 일종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의식도 발달한다. 성장은 인간이 본능을 억누르면서 동시에 본능으로부터 오는 충동을 만족시킬 선택을 하게 한다. 즉 현실의 법칙에 위배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본능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과정에 에고가 관여하는 것이다. 에고는 이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위해 배우고 사고하며 인지적 기술을 발달시킨다. 마스터는 에고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코즈 신도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프로세싱은 자신의 에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마스터가 시행하는 프로세싱은 기독교의 원죄 의식, 불교의 윤회 그리고 프로이트를 섞어서 만든 이론이자 실천 체계이다. 우리가 초자아로 부르는 슈퍼-에고(super-ego)는 이상과 가치, 금지와 명령의 복합체계를 형성하며 이를 관리한다. 만약 에고가 본능으로 기울어지면 슈퍼-에고로부터 처벌의 위협을 받는다. 이때 인간이 보이는 반응이 바로 도덕적 불안이다.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되는데, 마스터가 선택한 이별은 그의 에고를 유지하기 위한 슈퍼-에고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수퍼-에고인 페기는 마스터와 프레디에겐 언제나 사회적 규범과 도덕으로 존재한다. 그녀는 프레디에게 금주를 명령하고 마스터가 과학자에게 봉변당하자, “더 공격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가진 것을 다 빼앗길 것”이라고 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그녀는 단순히 슈퍼-에고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지 않는다. 파티 후에 아침을 맞이한 마스터는 방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세수하고 있다. 그에게 다가간 페기는 코즈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을 설정해준다. 그리고 프레디가 술을 계속 마시면 그를 내보내라고 종용한다. 머뭇거리는 마스터의 뒤로 다가간 그녀는 남편의 이드적 욕구를 자위로 해결해준다. 마스터가 코즈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저술한 두 권의 책 내용을 그녀는 마스터보다 더 훤히 꿰뚫고 있다. 그녀는 코즈의 율법이자, 율법 집행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에고를 조정할 수 있지만 이드를 조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프레디와는 언제나 첨예한 갈등을 겪는다. 코즈의 창시자인 마스터는 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이드인 프레디가 만든 밀주에 탐닉하고 동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이유 없이 끌린다. 하지만 막후 실력자인 아내는 마스터가 이드로 기울어지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슈퍼-에고의 명령하에 그들은 ‘눈물의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다. 마스터가 출간한 두 번째 책의 제목은 ‘쪼개진 칼(The Split Saber)’이다. 영화 속에 제목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이는 분리된 두 자아, 마스터와 프레디를 일컫는 표현일 것이다.

 

8. 그래서…

 

  <마스터>는 어떤 측면에서는 다분히 성서적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수병으로 복무 중인 프레디는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어떤 전투나 잔인한 장면을 볼 수 없으며, 단지 군함, 해군 깃발, 청록색 바다를 통해 시대를 짐작할 뿐이다. 아마도 괌이나 남태평양의 어느 작은 섬일 수도 있는 이 공간은 창세기의 에덴동산처럼 보인다. 프레디를 포함한 수병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코코넛 밀크의 달콤함, 힘겨루기, 모래로 조각된 이브뿐이다. 그들은 이드로만 똘똘 뭉쳐있다. 이 창세기적 공간에서 부유하던 프레디는 어느 순간 에덴동산 밖으로 내던져진다. 그리고 그를 영적인 세계로 이끌려는 마스터를 만난다. 그런데 마스터 위에 더 큰 마스터가 존재한다. ‘페기’라는 그랜드 마스터는 이드와 에고를 분열시켜 스승과 제자를 두 개의 ‘쪼개진 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마스터가 이드 쪽으로 기울자 그랜드 마스터는 에덴동산인 신대륙을 버리고 영국으로 이주하는 결단을 내린다. 페기의 관점에서 프레디는 문명 세계에서 쫓아내야 할 야만인이며, 이드 그 자체이자 사탄이다. PTA는 도입부에서 이분법을 위한 정교한 설계도를 우리에게 제시한 적이 있다. 그는 프레디가 제대 후에 백화점에서 사진사로 근무하는 동안,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가 노래하는 ‘Get Thee Behind Me Satan’을 화면에 울려 퍼지게 한다. 이제 사탄이 등장했으니 그를 제압할 종교 지도자, 즉 마스터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 수순이다.

  여러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마스터가 이끄는 코즈 모디프는 로널드 허버드(L. R. Hubbard))가 창시한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에서 차용했다. 프로세싱 역시 이 종교의 교리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스터>를 사이언톨로지와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PTA는 종교, 지도자, 인간 사이의 영향 관계, 분열된 자아, 오디세이를 뭉쳐 한편의 ‘러브 스토리’로 각색했다. PTA는 언제나 두 인물이 가까이 다가와 서로의 궤도로 끌어당기는 수렴의 순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노의 도박사>의 시드니와 존, <부기 나이트>의 덕과 잭, <펀치 드렁크 러브>의 배리와 레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과 엘리, <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2017)(2017) 의 레이놀즈와 앨마, <리코리쉬 피자 Licorice Pizza>(2021)의 알라나와 개리 그리고 마스터인 랭카스터와 그의 사도 프레디에 이르기까지.

PTA는 <마스터>에서 두 자아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최대한 응축시켜 거대한 파토스를 구축한다. 그러므로 <마스터>는 이드와 에고가 벌이는 변증법적 투쟁에 관한 정치극이며, 두 남자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종교에 관한 우화이며, 영향 관계에 관한 심리극이며, 세계를 떠도는 모험담이다. 무엇보다도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동조하도록 유도하는 ‘음악’을 적재적소에 풀어 놓은, 아름다운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다. PTA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가 본인의 ‘인생작’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 긴 글이 현대 미국영화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PTA의 인생 영화를 위한 성긴 지도나마 될 수 있길 바라며 이쯤에서 마칠까 한다.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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