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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언어로 나를 구성하는 세계, 다시 세계를 비추는 나 <가여운 것들>
[김현승의 시네마 크리티크] 언어로 나를 구성하는 세계, 다시 세계를 비추는 나 <가여운 것들>
  • 김현승(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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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투신하는 벨라(엠마 스톤)의 이미지로 막을 올려 해부학 강의로 이어진다. 백스터 박사(윌렘 데포)에게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일은 퍼즐을 맞추는 일종의 놀이다. 인간은 저마다 유희를 즐긴다.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벨라가 재미로 접시를 내던진다. 해부용 시신의 성기를 만지고 눈에 수술용 메스를 꽂는 행위마저 그녀에게는 즐겁다. 메스를 남근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남자의 몸에 삽입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그녀의 섬뜩한 놀이는 성행위를 연상시킨다.

벨라를 창조한 백스터 박사는 그녀에게 ‘하느님’이자 ‘아버지’이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그의 이면엔 과잉보호라는 치명적인 그림자가 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벨라를 막기 위해 그는 급기야 딸을 약물로 기절시킨다. “내 연구는 모두 그녀를 위한 신의 계획이야!” 그로테스크한 음악이 딸을 옥죄는 독단적인 아버지를 감싼다. 그는 기어코 자신의 조수 맥스(라미 유세프)를 집에 들여 딸을 감시하도록 만든다.

“안 좋아 보이는구나, 내가 고쳐줄게.” 맥스를 향한 벨라의 대사는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던 유아적 행동들과 거리가 멀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내뱉은 것이 분명하다. 말의 내용보다 상대방의 말을 따라 하는 벨라의 발화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모방한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성인의 몸을 가진 그녀의 ‘학습’은 이 너무나도 익숙한 행위에 주목하게 만든다. 어린아이가 마치 거울처럼 어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면, 우리는 그녀의 말을 통해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 외에도 딸의 여러 모습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잡다한 해부학 지식, 영혼을 믿지 않는 물리주의자의 태도, 즐거움을 좇는 순수함이 녹아있다. 심지어 던컨(마크 러팔로)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기 직전 벨라는 약물로 맥스를 기절시킨다. 남편을 기절시키는 아내의 모습은 딸을 기절시키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있다.

 

가여운 맥스를 뒤로 한 채 리스본에서 벨라와 던컨의 파격적인 섹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여성 편력이 심한 남자는 애인에게 “나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벨라는 지금껏 그가 만나온 여성들과 다르다.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에 관심이 식은 벨라는 당차게 문밖을 나선다. 영화는 리스본을 근대와 미래가 뒤섞인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묘사한다. 벨라는 명화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세계에 금세 매료된다. 미처 성욕이 다 해소되지 못한 그녀가 외출을 택했다는 점에서 바깥 구경을 섹스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다. 몸이든 몸이 놓인 세상이든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그녀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던컨과의 생활에서 벨라는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다. 던컨이 직접 그녀에게 상류층에 어울리는 말을 가르친다. “멋있네요. 즐겁네요. 페이스트리가 바삭하네요.” 그러나 강요된 언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지며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벨라가 스스로 학습한 행동도 그를 미치게 만든다. 그녀가 낯선 남자의 윙크를 따라 하자 분노한 던컨이 자신의 애인을 유혹하는 남성에게 주먹을 날린다. 연인의 집착을 성가시게 여기던 그는 어느새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이 되어 있다. 팜므파탈에게 굴복한 옴므파탈이 서럽게 흐느낀다.

‘헤픈’ 애인이 불안한 던컨은 벨라와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그녀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에 가두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집착이 극에 달한 그는 이제 벨라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싫다. 과도한 집착에 지친 벨라는 그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 이 표현은 이후 던컨의 대사를 통해 그의 말버릇으로 밝혀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상류층의 언어를 강요했지만, 어린아이는 꼭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배우는 법이다. 심지어 독서가 취미인 그녀의 ‘못된 친구들’은 벨라의 “귀여운 말투”마저 사라지게 한다. 실제로 세상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부터 퇴행적인 말과 행동을 보이던 벨라가 놀랍도록 어른스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소주의자 해리(제로드 카마이클)의 도움으로 벨라는 세계의 추악한 이면을 목격한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Real World’의 참혹함에 서글퍼진 그녀는 꼭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계급 구조는 세계 곳곳에 만연하다는 점에서 수평적이지만, 그 본질은 한 사회 내에 작동하는 수직적 힘이다. 따라서 계급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닌 세계를 바라보는 위치(높낮이)다. 이때 극단적인 불평등을 두 눈으로 목격한 벨라의 감상평이 인상적이다. “영혼을 다쳤어요.” 물리주의자의 품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이제 본격적으로 둥지 밖을 나서려 한다. 이미 집을 떠나온 지 오래지만, 그녀가 깨달은 것처럼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벨라의 가치관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 왔다. 새로 사귄 친구, 혹은 그들이 추천해 준 문학을 통해 습득한 ‘영혼’이 대표적이다. 그녀가 경험한 변화의 주된 징후는 언어다.

뱃삯을 내지 못해 파리에 버려진 벨라는 사회의 그림자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매음굴에 들어간다. 매춘부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스와이니 부인(캐스린 헌터)은 백스터 박사와 던컨을 잇는 세 번째 아버지이다. 포주는 신입 매춘부에게 매음굴의 규칙을 알려준다. 모든 여성은 성행위가 끝난 뒤 자신을 구매한 남성에게 “좋았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주체적으로 섹스 산업에 뛰어든 벨라는 이 비굴한 언행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에 스와이니 부인이 말한다. “가끔 세상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몽상가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직접 세상에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과 세계의 충돌은 언제나 양쪽 모두를 변화시키는 법이다.

낮에는 대학교 수업에 출석하고, 밤에는 매음굴에서 일하는 벨라의 앞에 던컨이 재등장한다. “널 용서해 줄 준비가 됐어.” 며칠이고 벨라를 그리워한 그이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기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갈고리 찬 남자랑 잤어?” 전남친의 비루한 남성성이 기어이 폭주한다. 던컨은 그녀가 그를 망가뜨렸다며 폭언을 퍼붓는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 벨라의 말과 행동은 거울과 같다. 그녀가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면 던컨을 괴롭힌 본질은 그 자신의 말과 행동에 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벨라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려준 사람들 속에서 벨라에게는 맥스와의 해피엔딩만이 남아있는 듯 보인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소유욕이 강하지 않은” 그는 벨라를 위한 최고의 남편감이다. 두 사람은 “실용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약속하며 결혼을 준비한다. 과학자의 이성과 벨라가 새로이 깨달은 감정이 결합하려는 그 순간, 최악의 사내가 스크린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벨라가 자살하기 전, 빅토리아 블레싱턴이 그녀의 몸을 차지하고 있을 때의 남편 알피(크리스토퍼 에봇)다. 벨라는 또다시 새로운 남자와 길을 나선다.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탐구 대상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 빅토리아다.

알피와의 생활은 벨라에게 천천히 이루어지는 ‘토탈 리콜’과 같다. “나는 어땠나요? 착했나요?” 총으로 대변되는 남성 질서가 도사리는 저택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 조각들을 모은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는 남편의 말은 벨라를 괴롭게 만든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스스로 그토록 혐오하던 “잔혹한 인간”이다. 늘 거울처럼 다른 이들을 비추던 벨라의 앞에 이번엔 알피가 과거의 그녀를 비추는 거울이 된 셈이다. “지나친 탐구심은 없는 편이 나았을지도.” 아내를 1년간 집에 가둔 알피는 이제 그녀의 음핵을 제거하려 한다. 이로써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그것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여성성과 결합하며 영화의 구조를 정돈한다. 사악한 남성은 끝내 자신의 총에 의해 모든 권력을 상실한다. 던컨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남성을 옥죈 것은 자신이 뽐내던 남성성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백스터 박사가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죽음을 직접 겪다니 흥미롭구나.” 평생 인간의 몸을 연구하던 과학자다운 유언이다. 연신 음악을 도중에 끊으며 갑작스럽게 컷을 전환하던 영화는 그의 육체가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자르지 않는다. 음악 역시 끊기지 않고 잔잔히 마무리되며 온전히 영원한 숙면에 들어서는 남자를 방해하지 않는다. ‘하느님’이라 불리던 그는 아버지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 이성과 논리에 대한 과할 정도의 집착은 자신이 겪은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감정은 곧 죄악이다. 한번 감정을 용납하게 되면 그는 영영 자신의 아버지를 저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운명같이 벨라가 찾아왔다. 그녀가 떠난 뒤 새로운 ‘괴물’을 만들 정도로 아버지는 딸을 그리워했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벨라를 보며 자신도 따뜻한 심장을 가졌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지 않았을까. 그의 말마따나 벨라는 정말로 그를 가엽게 여긴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글·김현승
영화평론가. 2022 영평상 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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