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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노빈의 확신, 이탕의 우연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노빈의 확신, 이탕의 우연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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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o난감>의 또 다른 관점

<살인자ㅇ난감>에 관해서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인식의 오류가 없는 지식과 인식의 오류가 없는 의심의 비교가 가능한가. 여기서 지식이란 자기가 갖는 확신의 근거를 말한다. 대부분 우리는 ‘안다’라고 말할 때 더 나아가서 그건 ‘확실해’라고 말할 때 이른바 암묵적으로 오류 없는 지식을 담보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점적으로 내가 말하려는 인물은 주인공 이탕(최우식)과 장난감(손석구)이 아니라, 노빈(김요한)이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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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노빈은 영웅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서 이탕이 영웅임을 확신하고 그를 지지한다. 노빈이 이탕의 영웅적인 행동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방식은 서사적으로 공감할만하고 어떻게 보면 논리적으로 치밀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인식적으로는 어떤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오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오류 없는 지식의 전통적인 조건, JTB조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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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지식의 조건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th belief)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그것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고 하긴 힘들지만, 분명한 건 노빈은 자신의 정당한 지식, 그러니까 인식의 오류 없는 지식을 확신의 근거로 삼아 그럴싸한 영웅 서사를 쌓아 가려 한다. 요컨대 노빈이 가지고 있는 이탕을 향한 헌신 그리고 자기희생은 인식의 오류가 없는 지식 아니 어쩌면 확신의 조건을 생각하게 만든다.

대체로 JTB조건에서 세 가지 항목은 정당화(Justified), 진리(Truth), 믿음(Belief)을 말한다.

먼저, 믿음(belief). 노빈은 어떤 인물(여기서는 이탕)이 악독한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영웅적인 행위를 한다고 믿는다. 이른바 ‘영웅은 존재한다’라는 노빈이 가진 믿음은 그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배트맨 피규어는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비범함으로 인해서 법체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과 정말 악독한 사람만 꼭 집어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송촌(이희준)을 처음 선택하게 된 것도 이런 믿음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웅은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문제는 어떻게 그 영웅을 특정할 것이냐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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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진리(truth). 노빈은 실제로 누군가(송촌/이탕)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마침 그 피해자들이 악랄한 범죄자였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한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낸다. 그건 다름아닌, 그를 특정할 증거가 전혀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가진 비범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악랄한 범죄자만 골라 살해해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에 실수가 없다.(송춘은 실수가 많았다.) 이런 사실은 객관적으로 만천하에 보도되었고, 살해된 자들의 범죄기록 역시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으며 이탕이 살인했다는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검찰, 경찰 측 진술까지 확인했다. 이 특성은 주관적 믿음을 넘어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사실이라서 거짓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참이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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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정당화(justified). 노빈은 법이 해결하지 못한 악당을 처단했다는 것(이탕의 행위)은 곧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는 없다. 사실 영웅에 대한 믿음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런데 이탕은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항상 악독한 범죄자만을 죽이고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법체계로는 처벌하지 못한다. 또한, 악랄한 범죄자만 꼭 집어 죽이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품고 있을 법한 원한도 해결해 준다. 법이 놓치고 있는 영역을 대신 처리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인물은 비범한 데다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적합한 증거를 확인했으며 심지어 현장에서 이탕의 살인을 목격하기도 했고 동조까지 했다. 따라서 이탕이 영웅이라는 노빈의 믿음은 거기에 적합한 증거들이 확인되므로 정당화 된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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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노빈이 이탕을 영웅으로 확신하는 구조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노빈에게 이런 판단은 정확하다. 하지만 노빈의 확신과 달리 이탕의 의심은 결국 이탕을 ‘영웅’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한다. 사실 노빈의 이 확신은 이탕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우연이자 돌발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탕의 살인 행위는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완벽한 증거 인멸도 마찬가지로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결과가 아닌 오로지 예상치 못한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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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은 누군가의 확신을 이루는 기반이 누군가의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두고 오류 없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이를테면 노빈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이탕의 절대적인 우연의 능력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참된 진리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절대적인 우연의 능력이 신의 능력이냐는 문제는 논외로 한다.) 실제로 이탕의 사회적 긍정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행위, 즉 악랄한 범죄자만을 정확히 처단하는 행위가 오로지 우연이라고만 한다면 노빈의 확신은 일종의 망상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탕의 우연을 가장한 그 능력(범죄자 선별 능력, 증거 인멸 능력)이 영속적이라면 노빈의 정당한 지식, 즉 그의 확신은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확신 덕에, 이탕의 입장에서도, 죽여놓고 보니 범죄자였다는 이른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에서 오는 오류를 만회할 수 있게 된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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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탕의 그 능력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신의 능력이 아닌 사회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이기만 하다면 정당한 지식의 기반은 모두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철학자 게티어(gettier)에 따르면, 이 우연 혹은 다른 요인에 의해 얻게 되는 믿음은 진정한 지식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면 전략은 한 가지다. 이탕의 우연을 신의 도움으로 확신하는 것. 그러면 그 둘의 관계는 인과관계도 아니고 상관관계도 아닌 이른바 신이 개입된 필연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노빈의 확신과 이탕의 우연은 그렇게 연결된다.

 

출처_넷플릭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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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마지막으로 노빈의 확신과 이탕의 우연을 비교해보자.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식과 관련해서 보면 노빈은 확신의 실패를 다루고 이탕은 우연의 성공을 다루는데, 노빈은 확신의 실패를 자립적으로 보호하려 하고 이탕은 우연의 성공을 의존적으로 강화시키려 한다. 노빈에게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신이 터널 끝의 불빛이라면, 상대적으로, 이탕에게 회피할 수 없는 우연은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광선이다. 노빈은 확신의 마법을 다룬다면 이탕은 우연의 기적을 다룬다. 결국, 그렇게 <살인자ㅇ난감>은 확신의 마법과 우연의 기적을 다른 차원에서 보여준다.

부언: '우연'이 개입한 지식의 오류는 역사관에서도 작동한다. 우연한 상황을 인과적 상황으로 오해했을 때 발생하는 비뚤어진 신념, 잘못된 세계관, 편향된 지식, 맹목적 믿음, 천박한 신격화 등등은 중독되기도 쉽다. 진리의 수용을 위한 믿음을 증거와 근거에 입각하여 객관화하려는 능력을 함양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믿음은 확신의 조건이지 확신의 근원이 아니다. 역사에서 만큼은 믿음이 맹목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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