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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의 문화톡톡] 에덴
[김창주의 문화톡톡] 에덴
  • 김창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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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עֵדֶן

 

이상적인 공간을 뜻하는 파라다이스는 본래 페르시아 말 파르데스(פַּרְדֵּס)에서 왔다. 울타리나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 문자적으로는 ‘과수원’을 가리킨다. 파라다이스가 서양에서 흔히 낙원이나 유토피아 등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 잡는 데는 성서의 영향이 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기원전 3세기 유대인들의 성서가 당시 국제적 공통어(lingua franca)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한 편지에 따르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사서가 건의하여 벌어진 일이다. 소수 유대인의 사상이 세계사에 편입된 놀라운 사건이다.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70인역,’ 또는 ‘70인경’이라 부르며 로마 숫자 LXX, 라틴어 Septuagint 등으로 표기한다. 

창세기 서두에 에덴이 등장한다(창세기 2:8; 3:23). 하느님이 정원을 만들어 사람을 그곳에 살게 하였다. <70인역>은 에덴을 고유명사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παράδεισος)로 옮겼다. 파라데이소스는 페르시아어 ‘파르데스’의 음역이다. 나중에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성서가 보급되자 파라다이스는 최초 인류가 노닐던 아름다운 꿈의 동산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구약성서의 표기는 다양하다. 예컨대 에덴동산(창세기 2:15; 에스겔 36:35), 에덴(창세기 4:16; 이사야 51:3; 에스겔 31:9), 하느님의 동산 에덴(에스겔 28:13; 31:9), 야웨의 동산(창세기 13:10) 등이다. 탈무드와 신약성서에서도 파라다이스는 초월적이며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공간이란 개념으로 쓰인다(누가복음 23:43, 요한계시록 2:7). 

에덴(עֵדֶן)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어원으로 보면 ① ‘두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연안을 뜻하는 아카드어 edinu와 관련된다. ② 수메르어 adin은 오아시스를 가리키니 건조한 사막에서 이따금 형성되는 목초지일 수 있다. 구약성서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비유적으로 ‘물 댄 동산’(נַן רָוֶה)으로 묘사하는데 ‘두 강 사이’나 ‘오아시스’를 떠올린다(이사야 58:11; 예레미야 31:12).
의미상으로 보면 ③ 담이나 숲으로 둘러싸인 장소를 지칭한다.1) 성서에는 안전한 공간을 뜻하는 ‘잠근 동산’(נַּן נָעוּל)이 나온다(아가 4:12). ④ 물을 얻기 쉽고 토양이 비옥하여 각종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먹거리가 넉넉하여 사냥이 고달프지 않다. 창세기에 의하면 에덴에서 네 강이 흐른다(창세기 2:10). 식량을 위한 노력이 필요 없으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다. ⑤ 우가리트어 eden은 기본적인 삶의 요건이 충족되고 행복한 동산이란 의미에서 ‘기쁨’이다.

따라서 에덴의 구체적인 장소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만 그 해답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2) 라틴어(405년) 성서와 듀아이(1610년) 성서가 창세기의 지명 에덴 대신에 ‘쾌락의 낙원’으로 옮겼듯 환희의 동산이나 태고의 낙원으로 새겨 들으면 된다.3) 이미 시편의 ‘에덴의 강물’이 ‘복락의 강물’로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시편 36:8). 이쯤에서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인근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이상향에 대하여 비교해봄 직하다. 수메르 신화에서 딜문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밝은 곳, 즉 고대 수메르인들의 낙원이다. 

딜문은 순수한 곳 딜문은 깨끗한 곳 딜문은 찬란한 곳
딜문에는 까마귀가 울지 않고 소리개가 울지 않으며
사자가 물어뜯지 않고 늑대가 어린 양을 잡아먹지 않으며
… …
환자가 아프다 호소하지 않고 늙은 여인을 늙은이라 부르지 않으며
노인이 노인이라 탄식하지 않은 그곳에는 어떤 한숨 소리도 들리지 않네 (Pritchard, 37-41).

딜문은 삶의 모든 것이 충족되는 완벽한 공간이다. ‘신들의 정원’(코란), ‘황금시대’(헤시오도스),‘무릉도원’(도교), 그리고 ‘청학동’(靑鶴洞) 등도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낙원으로 여긴다. 창세기의 에덴동산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에덴동산” 모자이크

5세기 Ravenna, Italy.

 

 

위 모자이크는 이탈리아 라벤나에 소재한 갈라 플라키디아Galla Placidia의 영묘 천정이다. 정면의 선한 목자를 비롯하여 기독교 세계관이 반영된 사후 세계 모습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다. 아래 두 사진은 동일하며 곡면으로 처리된 천정을 평면으로 따온 것이다. 에덴이 울타리로 빙 둘러있듯 영묘의 천정은 반원형 아치 하단에 ‘아라베스크’ 장식으로 사방 경계를 삼았다. 파란색 바탕에 밤 나팔꽃의 하얀 꽃잎과 원형 황금 장식을 무한 반복 재생시켜 내부 곡면으로 입체성을 살려 에덴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구현했다. 이렇듯 망자의 공간을 안정감 있는 구도로 설계하여 에덴의 영원, 순수, 평화, 기쁨을 역동적으로 담은 것이다.

정작 창세기가 묘사하는 에덴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하느님은 동쪽에(מִקֶּדֶם) 에덴을 짓고 그곳에 사람을 살게 하였다. 에덴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에덴을 일구며(לְעָבְדָחּ) 지키라(לְשָׁטְרָחּ)고 말한다(창세기 2:15). 여기서 농부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에덴동산은 수고 없이 평화로이 먹고사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최초의 인류처럼 누구나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한다. ‘일구며 지키라’라는 요청은 에덴동산의 삶에 대하여 ‘경작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두 동사’에 함축된 일이란 식생활을 위한 기능일 뿐 직업의 귀천을 의미하지 않는다(고린도전서 7:20). 나중에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모든 직업은 하느님의 부름(Beruf)으로 신성한 가치를 갖는다는 ‘직업 소명론’이 제시되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네버랜드, 무릉도원 등과 ‘에덴’의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에서는 동화의 나라처럼 노동과 수고 없이 영원한 기쁨을 맛본다면, 후자는 땅을 경작하고 동산을 돌보고 가꾸는 등 육체적인 고통과 땀의 열매를 나누는 공간이다. 에덴동산, 또는 하느님의 정원은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풍요로운 동산이다. 이렇듯 땅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한 그곳에서 사람은 땀을 흘리며 ‘일구고’ 그 결실을 힘써 ‘보존하는’ 임무를 맡는다. 곧 에덴은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한복판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에덴은 완벽히 이상적인 낙원이란 뜻이 아니다. 물이 넉넉하고 땅이 비옥하면 어느 정도 자급자족은 가능하다. 원시적인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 땅을 ‘경작하고’(cultivate) 잉여를 ‘보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culture)를 일궈내기 시작한다. 에덴을 가꾸고 지키라는 초대로 하느님과 사람은 상호 협력자가 된다. 그러니 에덴을 동화의 세계나 수메르 신화의 딜문으로 간주할 수 없다. ‘경작하라’와 ‘보호하라’는 에덴의 삶에 주어진 임무는 식량을 확보하는 기술과 새로운 문명을 일구는 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태초부터’ 세상을 ‘경작하고’ 이웃을 ‘지키는’ 데 부름을 받은 것이다. 

에덴의 한자 번역은 애전(愛田)이다. 가차(假借)는 고유명사의 번역에 활용되는 한자 표기 방식이다. 예컨대 Shakespeare를 沙翁(사옹)으로 옮기는 경우다. 이 때 ‘沙翁’은 뜻이 아니라 영어 발음이 핵심이다. ‘愛田’은 에덴의 소리와 의미를 절묘하게 반영한 것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사랑의 정원’쯤 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정원’을 딜문이 노래하듯 어떤 결핍이나 탄식이 없는 낙원, 곧 파라다이스로 여긴다. “사랑은 잼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빵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이디시 격언이다. 에덴동산은 ‘잼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인다. 에덴을 ‘일구고 가꾸라’는 빵을 얻게 하려는 하느님의 초대이자 부름(calling)이다.*

 

1) 풍수지리설은 고대 동양인의 삶을 반영한 이론이다. ‘풍수’는 본래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자연 앞에 놓인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 요건이다.
2) 네덜란드 역사가 피에르 다니엘 후에(Pierre Daniel Huet)가 1700년 제작한 지도에는 에덴의 위치가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한 지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3) Kang, Seung Il. "The Garden of Eden as an Israelite Sacred Place," Theology Today 77.1 (2020): 89–99.
4) 윌리엄 퍼킨스/박승민 옮김, 『직업 소명론』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2).

 

 

글·김창주
한신대 신학부 교수. 히브리 유산을 인문학으로 푸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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