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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쩌면, 아니 분명히 다 알고 있었지만 -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쩌면, 아니 분명히 다 알고 있었지만 -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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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되지만,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간다. 어른들이 바라보는 아이의 세계는, 그리고 마음은 후자에 속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결코 읽어낼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어른이기에 느끼는 공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넘길 수도 있다. 도무지 모르겠는 아이들의 행동은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일 뿐 정작 그들에게는 분명 이유가 있다. 천진한 아이에게 세상 모른다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폭력적이다. 그 아이는 오히려, 무서워서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의 선유(조서연)가 유일하게 엄마와 자신을 찾아오는 인경 이모(이선희)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아이는 어떠한 비유도, 과장도 아닌 진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를 잃은 아이, 조금씩 지쳐가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채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아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 정국(최로운)을 부러워하는 아이가 <나를 구하지 마세요>라는 제목과 만났을 때,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가 읽히는 것은 어렴풋하게나마 아이가 겪을 일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서연 옆의 어른들은 자신의 상처를 아파하는 데에 급급해 서연의 상처에 까지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물론,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서연을 배려하는 중이며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남기 위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서연의 엄마 나희(양소민)는 서연이 불안해할까 엄마는 서연이를 두고 가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인경은 혹여 서연이가 상처받는 말을 들을까 갑작스레 작은 심부름을 시킨다. 선생님은 선유의 상황을 알고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다독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보호책은 예민한 감각으로 이미 상황을 파악해버린 아이에게 그리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방법으로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서연의 작은 반응들로 충분히 드러난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날 수 없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고, 엄마와 인경 이모의 사이가 삐걱댄다는 것 역시 서연은 알고 있다. 선생님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때 오히려 자신이 더욱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은 서연이 이미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누군가를 찾아갔을 때 서연은 엄마가 더 이상 인경 이모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됐다는 것, 이제는 누구도 모녀를 찾아 도움을 줄 이가 없을 것이라는 점 역시 짐작했을 것이다. 갑작스레 할머니가 찾아온다 해도 그것은 죽은 아들의 보험금 때문이며 이것으로 엄마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도 서연은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지쳐가는 엄마가 떠나자는 여행이 어디를 향하는지 서연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아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어른들의 배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가해가 되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어른들의 가해는 서연에게 조금씩 자신 앞날을 예상하도록 만들었다. 아빠가 물에서 삶을 버렸기에 생긴 물에 대한 공포를 떨쳐보려 했어도, 자신이 아무리 밀어내도 속없이 다가오는 친구가 생겼어도 그에게 허락된 날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여행이 아이가 내린 결정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 즉 아이가 결코 몰라서가 아니라는 점은 상당히 많은 것들이 어른들의 시선으로 곡해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천덕꾸러기가 될까봐 어쩔 수 없었다는 어른들은 오히려 홀로 갈 당신이 안타까워 아이가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테니까.

 

이처럼 어른의 생리를 파악해버린 서연이 도움을 청하는 이가 자신의 말들을, 그리고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감추지 않았던 같은 반 친구 정국이었다는 점은 이상하지 않다. 마냥 즐겁고 또 마냥 밝기만한, 서연이 절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정국은 서연에게 오해를 받으면서도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할 수 있다고 솔직히 표현하며 서연과 가까워진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적어도 생각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던 정국은 서연의 불안 역시 그대로 받아들였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했던 어른들과 달리 정국은 서연의 아빠가 죽은 곳, 그래서 늘 무서웠던 곳, 이제는 서연의 엄마가 여행을 떠나자는 곳이 서연에게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서연이 학교에 오지 않았을 때 정국은 지체없이 서연을 찾아나섰고, 그의 어렴풋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것 역시 서연뿐이었다.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어려운 이야기를 어쩌면 더 어려운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영화는 어른이 되면서 점차 아이가 어떠할 것이라고, 혹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멈칫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기사로 접했던 사건 내부에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시화한다. 한 교양프로에서 유사한 사건을 다루며 보여주었던 CCTV의 한 장면, 엄마를 따라걷던 아이가 잠시 멈추어 생각하다 결국 다시 엄마와 함께 걷기 시작한 장면은 알고 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던 무수한 마음들을 대변한다. 그 아이도, 서연도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이이기에, 그래서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함께 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결코 몰라서가 아니라 혼란과 공포를 꾹꾹 눌러담아 동행했을 아이들의 마음이 이제야 소리를 내기 시작한 듯하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2020)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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