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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일용직의 제로섬 게임과 삶의 질을 통한 낙관적 세계관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일용직의 제로섬 게임과 삶의 질을 통한 낙관적 세계관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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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살이 인생과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박송열, 2022)는 실직한 부부의 하루살이 인생을 그려낸다. 이 영화는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 26회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KBS독립영화상, 10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2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실직한 부부인 정희(원향라)와 영태(박송열)는 대리교사, 대리운전 등 일용직의 삶을 살아가지만, 긍정적 에너지로 버텨나간다. 정희·영태 부부는 항상 소통하며 힘겨운 일상을 견뎌오지만, 정희 모친의 생신, 카메라 대여, 사채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2. 일용직: 존재 잊기와 자존감 무너지기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일용직의 존재 잊기와 자존감 무너지기를 그려낸다. 카메라, 면접, 다단계 사건을 통해 신뢰/불신, 생계/자존감, 이기심/이타심의 대립을 보여준다. 영태는 선배 명수의 부탁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2주간 빌려주고, 2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 명수로 인해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명수를 신뢰하는 영태와 명수를 신뢰하지 않는 정희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영태는 명수가 추천해 준 직장의 면접을 보지만,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를 묻는 면접 질문에 마음이 상해서 거부함으로써 생계와 자존감의 갈등을 보여준다. 영태는 친구 철이의 다단계 권유를 거부하지만, “돈도 못 버는 백수새끼”라고 멸시당한다. 친구는 영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말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표면적인 이타심과 내면적인 이기심을 보여준다.

 

정희·영태 부부가 특이한 점은 둘 다 백수 상태여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만,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 혹은 돈 버는 기회를 거부하는 상황에 대해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 부부는 둘 다 쓸데없는 것을 질문하는 면접에 대해 공감하며 수많은 일용직 경험으로 존재를 잊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마음을 공유한다. 이 부부는 술과 안주를 마주하며 하루의 일과를 나누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감정을 소통하고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해 이해해주며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낀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바스트숏, 고정된 카메라, 앞모습/앞모습(거울), 미디엄숏/롱숏을 통해 감정이입, 결핍, 희망, 미약한 존재를 표현한다. 밤에 정희가 생활비 걱정으로 한숨을 쉬는 장면은 바스트숏으로 인물의 근심에 감정이입한다. 영태가 명수에게 카메라를 빌려주는 장면은 영태와 명수가 화면 밖으로 나가고 텅 빈 공간을 잡아주는 고정된 카메라로 부재와 결핍을 표현한다. 영태가 명수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게 된 사실을 정희에게 알리는 장면은 정희의 앞모습과 정희 옆 거울에 비친 영태의 앞모습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 영태의 취업 실패 후 정희·영태가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시커먼 하늘, 흐린 날씨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을 미디엄숏에서 롱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로 담아냄으로써 미약한 존재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을 표현한다.

 

3. 가능성/당위성의 딜레마와 가난의 굴레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가능성/당위성의 딜레마와 가난의 굴레를 그려낸다. 이 영화는 생활비, 생신, 사채 사건을 통해 삶의 질, 가능성과 당위성, 가난의 굴레를 그려낸다. 이 부부는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고민하면서 아껴 쓰기와 삶의 질 중에서 삶의 질을 선택한다. 정희 모친 생신에서 선물이나 돈봉투를 챙기지 못해 난처해진 상황 때문에 부부가 갈등한다. 정희는 생활비가 없어서 대출금 이자를 내지 못하고, 결국 대출금 이자와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사채를 빌려 쓴다. 정희는 후배 미선의 빚 독촉에 생활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무리하여 빚을 갚는다. 이 부부는 돈이 없지만 가오가 있는 삶을 추구하지만, 생활비가 없어서 부모에 대해 효도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당위성을 문제를 제기하며,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로 원칙을 어기고 사채를 쓰는 상황에 직면한다.

 

정희·영태 부부가 특이한 점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지만, 삶의 질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부분이다. 부부는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껴 썼어야 한다고 후회하지만,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부분에 공감한다. 첫 장면이 소주와 삼겹살을 곁들인 저녁 식사이고, 이후에도 회와 소주 등 부부는 힘겨운 살림에도 항상 술상을 앞에 두고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다. 한편으로는 삶의 질을 고수하기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하여 힘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삶의 질을 고수하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버텨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삶의 질은 바로 이 부부의 낙관적 세계관을 받쳐주는 주요한 요소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바스트숏/미디엄숏, 고정된 카메라, 바스트숏/미디엄숏을 통해 우울함과 고민, 객관적 시선, 힘겨운 상황을 표현한다. 비가 오는 밖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정희의 바스트숏과 영태의 미디엄숏을 통해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영태보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계속 고민한 정희에게 좀 더 감정이입을 한다. 정희가 사채업자와 만나러 가는 장면은 무표정한 얼굴의 정희를 고정된 카메라로 잡음으로써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정희와 텅 빈 공간을 통해 암담한 미래를 표현한다. 정희가 사채업자와 만나는 장면은 정희의 바스트숏과 사채업자의 미디엄숏을 대비시키며 정희의 불안과 괴로움에 감정이입한다.

 

4. 양심/생존의 딜레마와 배신의 관계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양심/생존의 딜레마와 배신의 관계를 그려낸다. 알바, 카메라와 외제차, 사채 사건은 자존감, 배신/양심, 양심/생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정희는 배달 알바와 대리교사 알바를 하면서 질책당하고, 영태는 대리운전 알바를 하면서 무례한 손님 때문에 손해를 본다. 영태는 정희가 사채 300만원을 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카메라를 멋대로 팔아치운 명수에게 300만원을 받아낸다. 영태는 바가지를 씌운 사실에 미안해하다가 100만원을 돌려주지만, 명수가 외제차를 산 사실을 알고는 배신감을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한다. 정희는 사채업자에게 빌린 300만원 때문에 독촉 문자와 전화에 시달리고, 영태가 준 200만원으로 원금을 갚는다. 정희는 남은 원금 때문에 모친의 집을 방문한 사채업자 때문에 모친이 대신 원금을 갚아줌으로써 부채 의식을 갖게 된다.

 

정희·영태 부부가 특이한 점은 생계비가 없어서 사채를 쓰는 상황에서도 양심과 배려심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영태는 명수가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하지만 계속 기다려준다. 하지만 영태는 자신의 아내가 사채를 쓰는 상황에 직면하자 비로소 명수에게 카메라 반환을 독촉한다. 영태는 명수가 자신의 카메라를 허락도 받지 않고 팔아치운 사실에 분노하지만,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껴 100만원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배려심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태는 정작 생계비가 없어서 힘들다며 자신에게 우는 소리를 한 명수가 외제차를 자랑하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 부부는 생계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후배의 빚 독촉에 돈을 마련해서 갚고, 선배의 하소연에 약해져서 돈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미디엄숏/바스트숏, 클로즈업, 고정된 카메라, 풀숏/익스트림롱숏을 통해 분노, 고민, 어두운 미래, 소외를 표현한다. 영태가 카메라를 팔아먹은 명수에게 300만원을 받아내는 장면은 명수를 쳐다보는 영태의 바스트숏을 통해 영태의 분노에 감정이입한다. 영태가 카메라값보다 돈을 많이 받아 고민하는 장면은 오만원 지폐 클로즈업을 통해서 영태의 양심을 표현한다. 정희가 사채업자의 돈을 갚기 위해 모친에게 돈을 빌렸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미동이 없는 부부를 고정된 카메라와 니숏으로 잡아냄으로써 어두운 미래를 표현한다. 영태가 명수집 앞에서 외제차를 바라보며 화풀이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풀숏, 롱숏, 익스트림롱숏의 순서로 인물에게 멀어지는 고정된 카메라로 인물의 소외와 고통을 표현한다.

 

5. 생활의 원칙과 제로섬 게임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생활의 원칙과 제로섬 게임을 그려낸다. 이 부부는 채권자/채무자의 관계, 계속되는 생활고, 취업의 어려움 속에서 소통하고 공감하지만, 돌고 도는 돈의 제로섬 게임으로 생활의 원칙과 낙관적 세계관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

이 영화는 정희·영태 부부를 중심으로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를 통해 돈의 순환과 가난의 굴레를 형상화한다. 정희/미선, 명수/영태, 정희/사채업자, 정희/모친 등 인물들 대부분이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를 형성하며, 정희·영태 부부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을 차지하며 채무자의 위치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 돈 문제는 돌고 도는 순환 과정을 통해 제로섬 게임을 보여준다. 이 부부는 미선의 독촉으로 미선의 돈을 갚아서 생활비가 부족해지고, 생활비 부족으로 은행 대출이자를 못 갚아서 모친의 생신에 돈봉투를 드리지 못하고, 사채 300만원을 써서 대출이자와 생활비로 쓰고, 카메라 비용으로 받은 200만원으로 사채를 갚는다. 돌고 도는 돈, 물고 물리는 돈. 돈을 갚으면 현금이 바닥나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이 부부의 경제 상황은 항상 바닥을 치는 제로섬 게임을 보여준다.

정희·영태 부부는 네 가지 생활의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 첫째, 가족의 병환을 묻는 비인간적이고 이상한 직장을 거부한다. 둘째, 사채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채를 쓰지 않는다. 셋째, 어떠한 권유와 유혹에도 다단계를 하지는 않는다. 넷째,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삶의 질을 중시한다. 이 부부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직장을 거부하고, 다단계를 거부하고, 삶의 질을 중시하지만, 결국 생활고로 인해 사채를 씀으로써 한 가지 원칙을 어기게 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다. 인생의 한순간도 봄날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소통하고 가치관을 존중해주고 삶의 질을 중시하고 생활의 원칙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정희·영태 부부는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낙관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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