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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내면(內面)의 한 장면이 말해주는 모든 것: 넷플릭스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2024)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내면(內面)의 한 장면이 말해주는 모든 것: 넷플릭스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2024)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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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기생수:더 그레이>에서의 '정체성' 문제

<기생수: 더 그레이>(2024, 감독 연상호)는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주지만, 여기서 나는 한 장면, 그러니까 수인(전소니)의 진실이 담긴 내면(內面)에서 소위 ‘하이디’와 나누는 대화 장면(제4화)에 주목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 효과도 빼어날 뿐만 아니라, 그것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증폭시켜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라도 <기생수: 더 그레이>는 수작(秀作)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설명: 제4화 수인의 내면(內面) 장면의 일부

일단 <기생수: 더 그레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완전히 정복했을 때 인간은 이를 어떻게 눈치채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여기서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이 줄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 줄거리 안에 박혀있는 관계의 구조 때문이다.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설강우(구교환)와 수인과의 긴장감 넘치는 신뢰 관계나, 결코 화해의 틈을 보이지 않는 그레이팀 팀장 최준경(이정현)과 수인과의 강대 강 대결 관계, 그레이 팀과의 협조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강원석(김인권)의 절묘한 배신 관계는 서사 속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는 하나 그 자체로 뇌리에 남을만한 임팩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누구나 눈치챌 만큼 빤하게 드러나 보이는 관계의 순진함 탓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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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관계들 탓에 단순해지고 만 줄거리를 힘있게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하나의 관계는 전형적이긴 해도, 일부분 특이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주인공 정수인(전소니)과 형사 김철민(권해효)의 관계가 그러하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받아왔던 수인을 ‘아버지처럼’ 돌봐준 철민과의 관계 이를테면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아버지처럼 돌봐주었다는 소위 말장난처럼 들리는 그 관계가 특이함을 가리킨다. 풀어말해 여기서 특이함은 전자의 아버지가 행했다는 ‘폭력’과 후자의 아버지처럼 보살펴주었다는 ‘돌봄’이 논리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아버지라는 똑같은 이름 아래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다시 말해 같은 이름 아래에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명제의 충돌 즉 폭력과 돌봄의 충돌(이율배반(二律背反))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뜻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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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순된 두 명제의 충돌은 줄거리보다 캐릭터에서 대부분 일어나기 마련인데 연상호 감독은 유독 이런 충돌을 ‘장면’(scene)에서 곧잘 일으키곤 한다. 이것이 연상호 감독의 특기다. ‘수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하이디와 나누는 대화 장면’이 그 특기가 발휘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인의 몸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러니까 수인에게 기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하이디’는 사실 수인의 두뇌를 모두 먹어치움으로써 수인의 신체 전부를 장악하려 했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법칙이다. 두뇌를 먹어치웠다는 것을 의식의 장악으로 바꿔말해도 된다면 기생생물들 역시 몸보다는 의식을 더 중요한 것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의 성공은 몸이 아니라 의식의 장악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하이디의 대부분 동족은 이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애초에 하이디는 수인의 특수한 상황(이것은 드라마를 통해 확인하길 바람)으로 인해 의식 장악에 실패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디는 생존에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출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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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더욱 부각 되는 것은 몸과 의식의 충돌이다. ‘자기’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몸과 의식은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를 더욱 확고하게 증명하는 상황은 김철민의 죽음을 기점으로 나타난다. 두뇌를 ‘먹기’ 위해 귀로 침투하는 다른 기생생물과 달리 숙주(인간)의 머리를 직접 잘라버린 후 그 자리를 차지한 우두머리 생물에 의해 김철민은 전혀 다른 존재, 아니 우두머리 기생생물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의식을 정복당한 김철민이 우두머리 기생생물이 되었다는 것은 몸과 의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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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생 생물에게 정복당한 김철민을 수상하게 여기던 최준경 팀장이 그에게 던진 질문은 ‘기억’의 문제였다. 이는 의식과 기억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보여준다. 존 로크에 따르면 의식은 현재의 인식을 넘어 특정 기억에까지 확장되고 이로써 그 행위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행위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김철민이 수인을 아버지처럼 돌보려 하고 끝끝내 그녀를 구해내려 한 것은 의식과 기억의 관계가 곧 도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렇게 개인의 ‘정체성’은 완성된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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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기생수: 더 그레이>는 도덕적 책임을 지는 ‘나’라는 정체성의 문제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정체성은 사실상 자기의 도덕적 책임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정체성은 본질적이며 고유한 것 이른바 절대적인 신에 의해 부여받은 특성과 직결된 것이었으므로 자기의 모든 행위는 곧 신에 의해 이미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과(功過) 모두, 자기가 아닌 신에 의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수인의 내면의 장면은 먼저 자신이 본질적으로 벌레, 혹은 괴물로 규정되어 있었다는 그 동안의 절망을 보여준다. 수인은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신고를 했지만, 그 순간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신이 괴물이었던 것인 양 낙인을 찍었다고 원망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개체로 판단 안 해.”라고 말하면서 하이디는 전통적인 정체성의 그 개념을 거부한다. 하이디의 그 말은 본질로써 규정된 정체성이란 없다는 뜻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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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정신분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중인격자들의 구조 역시 내적 갈등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인과 하이디의 대화가 조작된 자아와의 싸움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디는 수인이 자기 정체성의 본질을 괴물이나 벌레로 규정하고 좌절할 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을 설명한다. 이는 정신분열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기생생물 하이디는 분명 수인의 의식 너머에 숨어 있는 잊혀진 관계마저 깨닫게 해주려 한다. 그래서 하이디는 이렇게 말한 건지 모른다. “네가 네 자신을 괴물로 여기는 동안에도 너를 도우려는 사람은 항상 있었어.”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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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면(內面)의 한 장면이 말해주는 모든 것이다. 하이디에 의한 자기 탐색과 자기 성찰의 이런 과정을 담은 그 장면은 자기를 타고난 괴물성으로 규정하고 좌절하는 수인이 거기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잘 보여준다. 하이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인의 건강한 신체보다 새로운 정체성 수립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연상호 감독은 유려한 미장센으로써 그렇게 표현했다. 게다가 이는 곧 도덕적 책임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새로운 정체성, 그것은 본질로써 규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의식의 확장과 그로 인해 더욱 민감해질 도덕적 책임감을, 운명적으로, 연루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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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괴물성으로 규정하는 것의 반대, 자신을 타고난 황제(皇帝)성, 혹은 타고난 왕()과 같은 로얄 패밀리로 규정하는 것 역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역시 또 다른 도덕적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정수인이 거듭나게 될 정체성 수립에 따른 민감해진 도덕적 책임감을 보여주진 않는다. 어쩌면 못다한 그것이 시즌 2 제작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부언: 그런데 <기생수:더 그레이>에서 나타난 연상호 감독의 이런 문제의식은 타고난 괴물성이 아닌, 타고난 황제 성 혹은 왕과 같은 로얄 패밀리로의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의식이 장악된 자들'의 행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계와 종교계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른바 ‘두뇌를 그냥 먹혀 버린 자들’의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한 행태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그런 낌새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런 자들의 특성을 폭로하는 효능감 높은 힘이 두뇌를 먹어치우는 기생 생물과의 그 관계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총선이코앞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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