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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가계부채,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 전민규
  • 승인 2012.08.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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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과 비교한 우리나라 가계 부채 규모 자료:한국은행

부채는 현대 금융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비싼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특히 한꺼번에 갚기 힘든 금액일 때는 할부로 구입해 몇 달에 걸쳐 나눠 갚기도 한다. 금액이 훨씬 큰 주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 은행에서 주택 자금을 대출받아 구입하게 된다. 좋은 사업 기회를 포착한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빌려 시설 투자를 한 뒤 나중에 제품을 판매해 얻는 이익으로 빌린 자금을 갚는다. 많은 저개발국은 인프라 건설이나 경제개발에 필요한 투자 자금을 해외에서 차관 형태로 도입한다. 이런 모든 행동은 부채, 즉 빚을 지는 행동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부채는 소비와 투자, 경제개발 등을 위해 꼭 필요하다.

가구당 평균 빚 6396만 원

그러나 빚이 지나치게 늘어나 큰 어려움을 겪는 사례 역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3년 신용카드 위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과도하게 외채를 끌어들인 후 갚지 못해 발생했으며, 신용카드 위기는 개인들이 신용카드사에서 과도하게 대출받은 후 갚지 못해 발생했다. 2007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도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생했다. 지금 세계경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역시 과도하게 늘어난 정부 부채에 원인이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선 새로운 부채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가계 부채 문제다. 가계 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돼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수출 경기가 급격하게 냉각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가계 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다분히 큰 환경이 조성되면서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총액은 911조 원에 이른다. 통계청 추산으로는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총가구 수가 1769만이므로, 한 가구당 약 5077만 원의 부채가 있는 셈이다. 2002년 가구당 부채가 3063만 원이었으므로, 10년 만에 2천만 원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부채가 없는 가구를 모두 포함한 평균이다.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부채가 있는 가계의 평균 금융 부채는 6396만 원에 이른다. 이는 가계의 연간 가처분소득 3283만 원의 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의 큰 문제는, 일부 가계에선 빚으로 빚을 막아야 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부채는 세 단계를 거쳐 확대된다. 첫 단계는 소득이나 다른 유동성 높은 자산이 있어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 상태다. 둘째 단계는 부채가 많아져 원금을 갚는 것이 어렵고 이자만 낼 수 있는 상태다.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부채를 빌려야만 기존 부채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상태다.

빚으로 빚을 막는 가계 증가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부채가 있는 가계에서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는 돈은 가처분소득의 34%에 이른다. 이 비율만으로도 국제기구가 과다 부채로 판정하는 20%를 넘어선 것으로서, 가계 전체적으로 과다한 부채를 지고 있음을 뜻한다. 소득수준별로 쪼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소득수준에 따라 가계를 5개 구간으로 나눈 뒤 가장 소득이 낮은 1분위 가계 중 부채가 있는 가계만을 대상으로 보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468만 원이다. 이는 연간 가처분소득 517만 원의 91%에 달하는 규모다. 만약 추가로 빚을 내지 않는다면 1년 동안 고작 49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2분위 가계의 원리금 상환액은 708만 원으로 가처분소득 1526만 원의 46%였다. 원리금을 갚고 남은 소득은 818만 원이었다. 1분위 가계보다는 사정이 좋지만 평균 3512만 원에 달하는 금융 부채를 소득만으로 갚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득으로 원리금 상환에 무리가 없어 보이는 가계는 최상위 20%인 5분위뿐이다. 차상위인 4분위 가계만 하더라도 원리금 상환이 가처분소득의 31%에 달했다. 적어도 1·2분위 가계는 부채 확대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금융시장 경색이 발생해 금융기관이 대출 만기의 연장을 거절할 경우 과다 부채에 있는 가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 부채에 직격탄

가계 부채가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부동산 경기 변동에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계 부채 911조 원 중에서 391조 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은 주택 가격이 떨어져 담보 가치가 줄어들면 은행이 대출금 회수를 위해 일부라도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대출이다. 또한 가계 처지에서 보면 대출받아 주택을 구입했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투자 원금 대비 손실이 커지게 된다. 예컨대 서울 강남권에 있는 한 32평형 아파트의 시세는 2004년 말 7억1천만 원이었으나 2006년 12억5천만 원까지 상승했다. 이때 자기 자본 절반과 나머지 절반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이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의 손익을 계산해보자. 우선 2006년에는 주택 구입에 따른 세율이 2.85%였으므로 총 3562만 원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또한 과세표준이 시가의 절반 정도였다고 가정하면 지난 6년간 재산세로 약 1600만원을 납부했을 것이다. 대출 금리를 연 5%로 가정했을 경우 대출 원금 6억2500만원의 누적 이자만 해도 1억8800만원에 이른다. 이 아파트의 최근 시세는 9억4천만 원으로 내렸다. 투자자는 자기 돈 6억2500만 원을 들여 3억1천만 원의 시세 하락에다 6년 동안 이자 등에 들어간 비용까지 더하면 모두 5억5천만 원 정도의 손실을 본 셈이다. 투자손실률이 무려 88%나 된다. 주택 가격의 하락은 은행에도 타격을 준다. 실질적인 담보인정비율(LTV)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채권최고액 기준으로 7억5천만 원의 담보권을 설정했을 것이다. 만약 경기가 더욱 나빠져 이 아파트 시세가 추가로 20%가량(1억9천만 원) 더 떨어진다면 은행으로서는 담보권을 실행해도 대출 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다소 극단적인 예시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를 끌어들여 고점에서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이미 큰 손실을 입었으며, 추가로 더 하락할 경우 은행의 건전성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침체 장기화, 생계형 고리 대출 증가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내는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 몇 년 동안 금융권별 가계 대출 증감 추이를 살펴보면 은행권보다 비은행권의 대출 증가 폭이 훨씬 크다. 2006~2011년 은행 대출은 약 31% 증가한 반면, 신협·상호금융·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기관의 대출은 거의 2배 증가했다. 더 심각한 것은 대부업이 포함된 '기타금융중개회사'의 대출이 150% 이상 증가한 점이다. 이에 따라 전체 가계 대출에서 60%를 차지하던 은행권 비중은 52.8%로 줄어든 반면 비은행 예금기관은 16.9%에서 21.4%로, 기타금융기관의 비중은 23.0%에서 25.7%로 높아졌다. 낮은 금리의 은행 대출보다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 비중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저소득·저신용 계층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또한 이런 계층의 대출은 주택 구입보다 대부분 생계비 마련이 목적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12년 5월 현재 은행의 가계 대출 평균 금리는 5.75%다. 이에 비해 비은행 예금기관은 6.2~13%의 금리가 적용되며, 카드회사 대출 금리는 20% 안팎이며, 대부업 금리는 법정 최고 한도가 39%에 이른다. 따라서 비은행권 가계 대출 비중의 증가는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가계 부채가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음에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한 환경은 저금리다. 그러나 일부 가계의 고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지면 저금리 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가계가 기타금융기관에 지불하는 이자 부담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가계 부채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문제점은 금리 변동에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대부분 변동금리부 대출로 되어 있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전체 가계 대출 중에서 고정금리부 대출은 6%에 불과했다. 금융 당국의 가계 부채 연착륙 대책이 시행되면서 최근 신규 대출 중에는 절반 정도가 고정금리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잔액 기준으로는 고정금리 대출이 12.5%에 그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미래의 금리 하락을 기대하고 변동금리 대출을 선호한 탓이다. 변동금리 대출은 은행에도 나쁘지 않다. 금리 변동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서는 조달금리에 대출금리를 연동시키면 조달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이만 조정하면 된다.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은행은 금리 변동 위험을 '헤지'(Hedge)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계는 금리 변동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만약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한다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심각한 경기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혹자는 지금처럼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경기 부진이 심화되면 신용경색으로 오히려 금리가 오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가계 대출 금리가 12.5%에서 16.5%로 크게 높아진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만 7조5천억 원 정도 늘었다. 지금 만약 대출금리가 그때처럼 4%포인트 상승하면 최소한 가계의 이자 부담이 34조3천억 원 더 늘어날 것이다. 1997년에는 가계 부채가 200조 원으로 지금의 22%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체로는 금리 변동의 충격이 그나마 덜했다. 하지만 가계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하는 지금 같은 상태에서 금리가 급등할 경우 내수경기의 급격한 악화와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득 분위별 가처분소득과 원리금 상환 부담 자료: 통계청 가계금융조사

과감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가계 부채의 주요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가계 부채 문제 해결이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기존 상식을 벗어난 과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간에 해결은 어렵다. 일각에선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려 가계 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부채가 늘어나기 전에 쓸 수 있는 대책이다. 잘못했다간 저소득층의 고통만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미시적 관점에서는 가계 부채 총량의 증가를 막는 동시에 저소득층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어야 한다. 주택에 묶여 있는 자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도 필요하다. 주택을 분양받고도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입주하지 못하면 개인이나 건설사 모두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거래 활성화는 주택시장뿐 아니라 전체 경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당분간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경기침체로 빠뜨리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내수경기 활성화와 함께 가계의 소득 기반 확장이 해법이다. 실질적인 부채 상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소득이 늘어나면 부채가 더 늘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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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민규 서울대 경제학 박사(우리나라 경기선행지수 개선 방안 연구). 현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국내외 경기, 외환시장). 2011년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 애널리스트 이코노미스트 부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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