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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의 마지막 미소와 배우라는 존재: 영화<탈출> (2024년 7월12일 개봉)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의 마지막 미소와 배우라는 존재: 영화<탈출> (2024년 7월12일 개봉)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7.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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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속 그의 미소

한편으로, '사고'(accident)란 우연히 갖게 되는 부수적인 특성을 말한다. 잘 생각해보면 대체로 사고라는 것들이 다 그렇다. 공항을 가려던 와중에 겪는 사고, 여행을 가는 중에 겪는 사고, 매일 가야 하는 직장에서의 사고, 저녁 무렵 담소를 나누려 서 있던 보행길에서의 사고 등. 그 사고들은 고속도로의 본질이 아니고 일상업무 공간의 본질이 아니며, 일방통행로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사고는 '당사자'의 일생을 휘어잡는 슬픔의 본질로 기어코 돌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고는 섣불리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는 말보다 늘 안타깝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출처_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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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3일 서해대교에서 짙은 안개로 인한 시야 불량으로 29대의 차량이 연쇄 추돌을 일으킨 사고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 당시 11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다쳤다. 2015년 2월 11일에는 영종대교에서 106중 연쇄 추돌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당했다. 영화 <탈출>은 분명 이런 사고들을 모티브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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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설정 가운데, 딸 차경민(김수안)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있는 주인공 차정원(故 이선균 배우)이 있다. 거기에 정원과 실랑이를 벌였던 렉카 기사 조박(주지훈), 방금 여행을 마치고 공항버스에 올라탄 병학(문성근)과 치매 걸린 순옥(예수정), 골프 선수 유라(박주현)와 그의 캐디 미란(박희본) 등이 함께 있다. 도입부의 이 캐릭터들은 모두 사고의 당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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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다중 추돌사고에 더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추가된다. 그건 영화를 통해 확인하면 될 터, 중요한 건 그 상황이 어떠하든 그들은 탈출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은 한층 더 극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고 그로 인해 관객의 긴장감 역시 더욱 격화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겪은 위기대처 능력의 미숙함 혹은 권력자의 욕망 등이 가세하여 상황을 더욱 어렵게 끌고 간다. 치명적인 것은 정원이 눈치채게 된 배반의 그림자다. 영화 <탈출>은 감독이 상상한 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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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는 은유적 재현 대신 사고현장에서 당사자들이 겪는 경험을 직접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 당시 상투적인 연출이나 아버지와 딸의 신파, 어설픈 CGI 기술 등에 혹평이 쏟아졌는데 그 이유는 그 노력이 설익은 모습으로 보이거나 어설픈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평을 넘어, 앞서 말한 바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 사고란 본질이 아니라는 말.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는 당사자의 슬픔과 충격의 씻을 수 없는 본질이 되기도 한다는 말. 그래서 사고는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는 말보다 늘 안타깝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는 말. 이건 ‘사고를 겪는다는 것’은 당사자 이외 타인으로서의 우리는 그 슬픔과 충격에 똑같이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사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평을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사고 당사자들의 마음과 감정을 직접 말하려다 실패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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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함에도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고 당사자의 마음과 감정을 직접 말하려다 저지른 실패를 故 이선균 배우가 만회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차정원으로부터 만회되는 것이 아닌, 말하자면 사고 당사자로서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미소로 만회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마지막 그의 미소에는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말할 수 있다면 오직 그의 미소는 영화를 넘어 그 미소를 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아니 더 정확히는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말뿐이다. 그 의미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그와 동시대인(人)으로서 교감한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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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우가 필요한가. 거창하지만, 이 영화 속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미소는 그 질문의 진실 곁에 바짝 다가선 느낌을 준다. 이를 영화적 감상이라 애써 축소하여 말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앞서 ‘사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으면서도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영화적 감상 즉 영화 속 배우를 지켜보는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어진다.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어처구니없이 벌어지는 사고와 그 서사를 살펴보도록 유도하는 일. 그래서 결국 타인을 통해 나를 이해 당사자로 만드는 존재. 그것이 영화 속 배우의 역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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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우는 타인을 통해, 타인의 사건을 통해 나를 이해 당사자로 만들어주는 존재다. 배우라는 존재는 늘 자기를 버리고 타인을, 타인의 사건을 택하니까. 그건 아무리 축소해서 말하려해도 자기희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의 마지막 미소를 보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진 이유는 그가 끝끝내 그런 존재로 기어이 남아주었다는 사실과 우리는 그런 존재 하나를 무기력하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자책적 박탈감이 감상의 차원을 너머 느닷없이 강렬하게 자각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그 미소를 직접 볼 수 있는 영화 <탈출>은 2024년 7월 12일에 개봉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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