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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의 문화톡톡] 두 창조
[김창주의 문화톡톡] 두 창조
  • 김창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4.09.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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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보통 상식과 문해력이라면 창세기 서두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몇몇 대목을 만난다. 우선 독자적으로 보이는 창조 이야기가 1-3장에 두 차례 나온다. 더구나 둘 사이에는 내용 일치와 연속성보다는 논리적 허점과 부조화가 거슬린다. 경전의 처음 책에서 비슷한 창조를 거듭 나열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역사비평적 연구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내용의 창세기가 기원전 6세기에 윤곽을 드러내었다. 당시 삶의 중심이던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지도자와 백성들은 바빌론 곳곳에 흩어진 채 포로 생활 중이었다. 이렇듯 국가 지도력의 부재와 그에 따른 혼란은 예루살렘 귀환과 그에 대한 갈망을 더욱 키웠다. 이처럼 절실한 가운데 창세기의 부실한 내용과 논리적 허점은 절망에 빠진 공동체를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창조의 두 기사는 서사 구조부터 차이가 난다. 창세기 1장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주 창조를 선언적으로, 창세기 2~3장은 미시적 관점에서 사람의 창조를 서술적으로 묘사한다. 우주의 출현과 인간의 등장을 소개한 두 자료는 앞뒤로 나란히 배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세밀한 부분에서 이야기의 일관성에 엇박자가 나고 논리적으로 허약해진다. 사람은 두 차례 창조되는데 처음에는 남녀가 동시에(창세기 1:27), 나중에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다음에 여자가 피조된다(창세기 2:7,22). 사람과 식물의 창조도 대조적이다. 창세기 1장에서 식물은 세 번째 날에, 사람은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으나, 창세기 2-3장에서 땅에 아직 초목과 채소가 전혀 나지 않은 가운데 사람이 태어난다. 창조의 시간에 관하여 처음 창조는 7일 동안 벌어진 데 비하여 나중 기사는 구체적인 시간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처럼 두 창조의 불일치에 대하여 이스라엘 공동체가 못마땅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2세기 중반 <희년서>를 들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 책의 중요성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여러 파편에서 확인된다. 사해 주변의 10여 개 동굴에서 은둔 생활하던 에세네파가 남긴 문헌이므로 적어도 다섯 개 동굴에서 15개의 <희년서> 자료가 발견되었다(4Q216, 11Q12). 유대교의 주요 텍스트인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 시편, 이사야 등 자료보다 더 많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1 <희년서>는 현재 이디오피아 일부 교회, 베타 이스라엘 등에서 경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고대 역사가 및 초기 기독교 변증가에게도 <희년서>의 부분적인 내용이 알려진 바 있다(오리게네스, 시리아의 에프렘, 히포의 어거스틴, 요한 크리소스톰 등). 자발적 고립과 은둔을 선택한 소수의 유대인이 창세기 1장과 2-3장의 불협화음과 엇갈린 진술에 대하여 불편한 진실을 인식한 것이다.

 

<희년서>는 창조가 7일이 아니라 14일 동안 이뤄진 일로 묘사한다. 곧 첫 번 창조(창세기 1) 이후 전개되는 두 번째 창조(창세기 2-3)가 우연한 중첩이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창조의 일관성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이 책의 주요 시간 단위와 핵심 개념은 50이다. 이른바 희년이란 불리는 이 해는 일곱 번의 안식년 후 첫 번째 해, 50년째를 가리킨다. 이때 뿔나팔’(שׁוֹפַּר)을 불며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용어다. 희년은 이스라엘의 중요 절기다(레위기 25:8-12). 이 해가 되면 자유를 공표하고, 각자 맨 처음 가족과 소유지로 돌아가며, 파종이나 추수를 금한다. 이렇듯 <희년서>는 창조로부터 시간을 50년 단위로 나누었으며 이스라엘 역사의 구분 단위가 된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을 때가 50번째 희년으로 역사의 완성이며 <희년서>도 마무리된다. 이 책 역시 전체 50장으로 짜여있다. <희년서>는 천사가 모세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명령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창세기 거의 모든 내용과 출애굽기 12장까지 포함한다.

 

논의를 창조로 좁히면 <희년서>는 창세기의 두 번 창조와 내용의 중복과 불일치를 피하고 일관된 논지로 재구성한다.2 다음 표는 몇몇 중요 대목을 창세기와 비교하여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이다.

 

 

창 세 기

희 년 서

창조

두 차례 (2 creation accounts)

1: 6일간 창조 7일 안식(날짜와 기간 명시)

2-3: 사람과 에덴 창조 이후 동식물 출현

한 차례 창조 (1 creation account)

[두 창조의 불일치에 대하여 일관된 논리 추구]

기간

7: 빛과 어둠, 하늘과 궁창, 땅과 식물, 각종 광명체, 새와 큰 생물, 동물과 사람(남자 여자), 안식일

14: -일 우주 창조, 남자의 창조 및 안식일, 동물, 가축, , 육지짐승, 수중짐승, 여성 창조, 안식일 (희년서 3:1).

하와

1: 남자와 여자 동시 창조.

2-3: 아담의 갈비뼈로 여성 창조.

첫 주에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되고

두 번째 주에 아담에게 데려온다(희년서 3:8).

에덴

두 번째 기사에서 하느님은 사람 창조 이후에 동방에 에덴동산 건설.

창조의 셋째 날(희년서 2:7).

[창세기 2:5-7의 식물과 채소가 없었다는 기록은 모순되어 생략]

천사

언급 없음

임재 천사, 성화 천사, 수호천사, 자연 천사

 

유대교 공동체 일부가 창세기를 새롭게 읽고 <희년서>라는 이름으로 일관성과 설득력을 확보하였으나 소수파에게 잠시 통용되었을뿐 더 이상 확장성은 없었다. 창세기 특유의 모호성과 포용성 논리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희년서>는 결국 주류 유대교에 침투하지 못하고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다가 사해 동굴에 갇힌 형국이다.

 

그렇다고 <희년서>의 공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창세기를 줄곧 읽고, 전승하는 과정에 <희년서>처럼 새롭게 읽으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창세기를 비롯한 주요 경전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두 창조의 모호성내지는 불명확성을 논의할 수 있다. 나날이 정교해지는 수학이나 논리학의 입장에서 창세기의 비논리와 중첩은 여전히 높은 산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과학적 사유와 수학적 논리로 창세기를 재단할 수 없으니 고대 경전의 허약한 논리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그렇기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근대 서구 문명에 끼친 창세기의 공헌과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모호성과 중첩된 창조 기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문화 인류학과 회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바우어는 근대 이전 문화를 모호성의 문화’(Die Kultur der Ambiguität)라고 규정한다.3 지금까지 모호성은 주로 언어 과학에서 활용되었지만, 고대 인류는 이미 단의적(單義的) 전달이 아니라 모호성에 함축된 다의적(多義的) 의미를 반영하였다. 예컨대 이슬람은 물론 다른 고대 문화권에서도 모호성에 대하여 지성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명확히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차이점을 균형감 있게 두었다. 서로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어 보이는 관점이지만 부분적으로 수용되거나 적어도 통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교에서는 <희년서>가 예증하듯 그 모호성이 가끔 타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전승 과정에서 일부 유실되기도 하였지만, 그 모든 과정은 경전의 이스라엘화또는 포용의 역사다. 고대 이스라엘 신앙인에게 경전의 포괄적 차원과 신학적 다의성를 고려한 것이다.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들의 소통방식과 사유의 집합체인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다만 현재 관점에서 전체적인 일관성의 결여나 불일치가 비판적 요인이지만 고대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고대 정경의 문학적인 특징이자 해석학적 원천이라는 의미다.

 

왜 사람들은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환호할까? 기쁜지 슬픈지 명확하지 않은 미묘한 표정, 곧 모호성 때문이다.4 화가는 부드럽고 섬세한 색조 변화를 통한 음영법으로 행복과 우울을 동시에 구현하고 여기에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았다. 이렇듯 빛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활용하여 불명확성, 또는 착시를 유도하는 기법을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고 한다.5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을 입혀 광학적 환상을 보게 하는 착시효과의 일종이다. ‘트롱프뢰유19세기에 전문 용어로 등장하지만 화법의 역사는 뿌리 깊다. 아래 그림은 매너리즘파 화가 벤베누토 티시(Benvenuto Tisi)의 페라라 박물관 보물실의 천정화다.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천정과 하늘이 실제처럼 인식되는 착각이 든다. 모나리자가 인간의 이중성 또는 모호한 감정을 흡입하듯 창세기 저자 역시 트롱프뢰유 같은 수사법으로 독자들을 경전 앞에 불러온다.

 

Benvenuto Tisi의 고고학 박물관 프레스코 천정화(Farrara, Italy) 1503-1506
Benvenuto Tisi의 고고학 박물관 프레스코 천정화(Farrara, Italy) 1503-1506

창세기를 열면 아무런 가치판단이나 전제 없이 내용과 결이 다른 두 창조 기사를 차례로 읽게 된다. 보통 둘이 나란히 놓여 있을 때 사람들은 둘 중 하나(either A or B)를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둘이 있다면 그 둘이 반드시 똑같을 이유는 없다. 창세기에서 두 창조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의 포용성에 초점을 둔다. 다시 말해서 창조는 어느 하나에 담을 수 없고 둘 모두(both A and B)를 통하여 창조의 다양한 면모와 해석의 다의성을 길러낸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창조 기사의 중첩성과 모순적 논리는 고대 경전의 단순한 문학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경전의 역설과 이중성을 통하여 포괄성을 확보하려는 해석학적 원리다. 우주의 시작, 생명의 탄생, 자연의 활동, 선과 악, 삶의 윤리 등 일견 확고한 논리나 일정한 주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호하고 때로 역설적이어서 특정한 하나의 설명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이렇듯 명확하지 않은 삶, 그 가운데 우리는 뿌리 내리며 살고 있다. 고대 유대교 경전 해석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포용하는 개방성과 다의성을 추구한다.

 

 

1. 희년서가 유대교의 정경에 속하지 않지만 ‘베타 이스라엘’에서는 Lesser Genesis, Leptogenesis, Book of Division 등으로 불리며 준경전으로 인정된다.
2. 희년서의 연대는 7의 배수로 창조의 7일(week)을 기준으로 한 달 29일(7×4), 일 년 364일(7×52), 안식년 7년이 일곱 번 거듭하여 총 49년(7×7)이 지난 50년째 해가 희년이다. James Kugel, "Is the Book of Jubilees a Commentary on Genesis or an Intended Replacement?" In Congress Volume Munich 2013 (Leiden: Brill, 2014) 67-91.
3. Thomas Bauer, A Culture of Ambiguity: An Alternative History of Isla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21) 9-29.
4. Alessandro Soranzo, "The Psychology of Mona Lisa’s Smile," Scientific Reports 14.1 (2024): 12250.
5. 트롱프뢰유는 ‘눈을 속이다’는 프랑스어로 Louis-Léopold Boilly가 1800년에 전시한 그림 제목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일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유래,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신화(神畵)로 소개된 솔거(率居)의 ‘노송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그림에서 환영을 불러일으킬 자극과 충격 기법이며 문자적으로는 눈속임이란 뜻이다.

 

 

글·김창주
한신대 신학부 교수. 히브리 유산을 인문학으로 푸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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