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당신을 구성한다. 기억의 이러한 속성에 기대어, 1990년에 개봉한 폴 버호벤의 영화 <토탈 리콜>은 기억을 심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 사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놀라운 시각 이미지를 선보이며 한 단계 진보한 특수 효과 기술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도 했으며, 2012년 렌 와이즈먼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토탈 리콜>(1990)은 2084년이라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주된 사건은 기억을 심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리콜(Rekall)에서 시작되는데, 리콜 사는 고객들이 실제로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기억을 주입함으로써 마치 여행을 다녀온 듯한 효과를 얻게 한다. 리콜 사의 광고는 시간과 비용, 건강과 위험 등의 이유로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거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을 겨냥하며,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꿈같은 여행의 기억”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스키를 타러 가고 싶지만 일에 파묻혀 사십니까? 해저에서 보내는 휴가를 꿈꾸지만, 비용을 감당 못 하나요? 화성에 있는 산에 오르는 게 소원이었지만, 때를 놓친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주식회사 리콜’로 오세요. 진짜보다 저렴하고(cheaper), 안전하고(safer), 멋진(better) 꿈같은 여행의 기억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세요. 생애 최고의 추억(memory)을 위해 ‘리콜’을 찾아주세요.” 출근길에 리콜 사의 광고를 본 더글라스 퀘이드(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근래 들어 꾸곤 했던 화성에 관한 꿈을 떠올린다. 그는 현실에서 아내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지만, 꿈에서는 전혀 모르는 여자와 함께 화성에 살고 있다. 화성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음에도, 생생하게 느껴졌던 꿈속의 느낌 때문일까. 그는 결국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콜 사에 방문하고, 토성 여행을 권하는 직원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화성 여행, 아니 화성 여행에 대한 ‘기억’을 구매하길 택한다.
리콜 사가 제공하는 ‘가짜 기억(fake memory)’에 의심을 품었던 퀘이드가 직원의 말에 현혹되는 장면은 흥미롭다. 직원은 짐을 잃어버리거나 날씨가 엉망인, 사기꾼을 만나는 등 곳곳에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산재한 진짜 여행이야말로 피곤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모든 것이 설계한 대로 이루어지는 ‘리콜’ 여행은 그야말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신분과 직업, 그에 따른 서사조차 선택할 수 있는 ‘리콜’ 여행은 문자 그대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즉, 영화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퀘이드는 주저 없이 ‘비밀 요원’이라는 신분을 선택하고, 기계에 몸을 맡긴다. 리콜 사에서 기억을 주입받다가 정신이 나갔다는 누군가에 대한 소문은, 믿음직한 직원이라기보다는 매혹적인 환상에 기대어 손쉽게 일축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억을 심는 서비스라는 영화의 설정은 단지 여행이 보장하는 휴식이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적 경험이 아니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환상’을 향한 인간의 열망에 기대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진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실제로 우리가 과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 그러한 기억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편적인 느낌들의 총합에 가깝다. 또한, 여행에서 결정적인 기억으로 남는 것은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순간이 아니라, 예상과 다르게 마주한 상황에서의 낯선 순간에서 만들어진다. 실제로 우리가 직접 경험한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만을 기억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기억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겨지고 체화된 것으로서 우리와 하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주체와 분리되지 않는 기억은 따라서 제거될 수도 없고 주입될 수도 없다.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주입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기억을 떼어내서 제거할 수도 없다. 우리가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슬픈 기억은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당신을 구성한다. 우리에게 그토록 기억이 중요한 이유다.

리콜 사를 찾아간 퀘이드는 결국 기억 주입에 실패한다. 이미 그가 기억을 주입받은 채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와의 지구에서의 삶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고, 꿈에서 보았던 자신의 진짜 삶을 찾기 위해 화성으로 잠입한다. 그곳에서 퀘이드는 무사히 진짜 아내 멜리나(레이첼 티코틴 분)를 만나게 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에 관한 예상치 못한 진실 또한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화성의 독재자 코하겐(로니 콕스 분)의 특수 요원 하워드라는 사실이다. 코하겐은 자신의 심복이었던 그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몸’을 되찾기 위해서 그들을 쫓는다. 결국 퀘이드와 멜리나는 함께 붙잡혀 기억을 주입 당할 처지에 놓인다. 퀘이드에게 기억을 주입해서 하우저를 되찾겠노라 선고하는, 멜리나에게 기억을 주입해서 그녀를 “공손하고(respectful) 순종적이고(compliant), 감사할 줄 아는(appreciative)” 여자로 고치겠노라 주장하는 코하겐의 열망에서 드러나는 것은, 기억이야말로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1990년에 개봉한, 30년도 더 지난 이 영화가 여전히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영화의 놀라운 특수 효과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있을 것이다.
글‧김윤진
영화평론가/미술비평가.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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