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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라는 삶, 그 과정의 기록들 – 다큐 <다섯 번째 방>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라는 삶, 그 과정의 기록들 – 다큐 <다섯 번째 방>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4.10.2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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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일이 영화로 이루어지고 또 영화에 기대된다.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영화에 전력을 다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영화가 남기는 그 힘, 그리고 영화에 그려지는 그 시간을 믿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방식이 극일 수도 비극(非劇)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종종 개인의 인생이 개입되기도 한다. 무엇인들 만드는 이의 면면이 투영되지 않겠냐만은 좀 더 직접적으로, 또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에 담고자 한다면 그 기록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많은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분명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방>은 이 기록의 힘을 보여준다. 개인의 이야기였지만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미움의 휘청임은 금방 나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다큐 <다섯 번째 방>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던 엄마가 자신의 방을 갖게 되는 이야기로 간단히 설명할 수도 있다. 다큐는 결혼하면서 시집으로 들어오고 늘 남의 가족인 듯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본인의 역할을 다하려 했던 엄마가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과정을 천천히 비추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집 밖으로 엄마만의 방이 한 칸 생겼을 때, 그때의 해방감이나 엄마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한 기대는 영화의 완성에 가 닿는 듯 했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선은 엄마에게 향했던 만큼 아빠를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응원을 던지던 일관된 시선은 아빠를 향하면서 조금씩 흩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엄마를 향한 시선에 집중했을 때, 마치 방해하는 것처럼만 보였던 아빠를 카메라는 좀 더 깊이 그리고 오래 담았다. 여기에는 분명 아픔이, 끝까지 끌고 갈 수 없는 미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방> 속 감독의 시선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서는 같은 감독의 전작 단편 다큐 <바보 아빠>(2013)과 <집 속의 집속의 집>(2017)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감독은 이 두 작품에서 아빠에 대한 자신의 미움을 숨김없이 드러냈었다. <바보 아빠>에서는 아빠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 그리고 아빠로 인해 공포를 느꼈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내레이션으로 가감없이 표현했고, <집 속의 집속의 집>은 너무나 싫어하는 아빠와 닮은 자신을 미워하는, 그래서 힘든 스스로를 그려냈었다. 어찌보면 두 작품은 그저 아빠에 대한 반감만을 담았을 듯하지만 사실 아빠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해 끝났다는 것은 아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전제한 것이었다. 미움이 앞서더라도 일단 아빠를 바라보자는 생각으로 켠 카메라는 아빠의 얼굴을 담은 벽화를 완성하기도 했고, 아빠와의 긴 대화를 끌어내기도 했었다.

<다섯 번째 방>은 바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작품에서 카메라가 더 많이 머무른 것은 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응원하고 싶은 하루하루를 사는 엄마보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종종 술을 먹고 가족들의 질타를 받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장편으로 확장되면서 엄마와 아빠 두 사람에 대한 정보는 조금 더 전달되었고, 이는 어느 집에나 있을 갈등과 함께 엮이며 관객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가 시댁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는지, 그리고 아빠의 한량 기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그래서 두 사람은 각기 어떤 생각으로 괴로울지 등은 너와 나의 가족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 있었고, 관객들은 조금씩은 삐걱거릴 각자의 집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빠를 바라보는 감독의 마음이 날 선 예전과는 다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때, 어찌 생각하면 한 없이 미워만 할 수도 없고 끝 없이 사랑할 수만도 없는 누군가들이 모두에게 떠올랐을지 모른다. 아빠의 폭력적인 모습은 종종 반복됐고 가족들의 경고는 무시한 채 아빠의 뜻이 먼저 앞섰다. 이때의 분노가 폭발할 듯 쌓였다 해도 그 사이를 오가는 감정은 이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종종 아빠는 딸이 좋아했던 것을 함께 하려했고 어색하지만 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어린 아이를 보듯 바라보았다. 또 딸이 당신을 어떻게 찍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를 확인시켜주려는 딸을 보면서도 그저 딸의 일이 잘 된 것이라면 상관없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이 순간들이 그간의 갈등을 가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다 컸다고 해서 해소가 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은 이 작품으로 기록되었고 또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늘 어렵다. 가족의 형태도 분위기도, 또 각자의 사정도 모두 다른 탓이다. 그러나 이보다 어려운 것은 가족을 향한 나의 감정 역시 순간순간 달라진다는 것일테다. 어떤 날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 이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지금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었다. <다섯 번째 방>을 오가는 무수한 시선들은 쉽사리 하나로 잡히지 않으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대한 기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든 영화에 대한 기대는 이렇게 또 하나의 영역으로 넓어질 것이다.

 

<바보아빠>(단편, 2013)

<집속의 집속의 집>(단편, 2017)

<다섯 번째 방>(2024)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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