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액션의 기표 놀이

액션 영화는 일종의 기표(significant) 놀이다. <천면마녀>(1969)가 ‘가면과 액션의 기표 놀이’라면,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음악과 액션의 기표 놀이’다. 음악과 액션은 이미 기의(signifie) 위에서 떠다니고 미끄러지는 기표(significant) 놀이로써 그 존재감이 도드라지는데, 심지어 이 둘이 만나니 이후의 액션 영화 음악사용에도 영감을 준다. 예컨대, <죽음의 다섯 손가락> 오프닝과 철장권을 사용할 때마다 등장하는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음악은 일렉트릭 기타의 독특한 사운드와 당시 대중음악에서는 비교적 생소했던 무그 신시사이저(Moog synthesizer)가 결합한 음악이다. 이 음악은 강력한 철장권과 손바닥을 물들이는 붉은 색 조명과 함께 보이지 않는 힘 있는 에너지를 시청각화한다. (재즈 뮤지션인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TV 시리즈 <아이언사이드Ironside>(1967)을 위해 작곡한 음악이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역시 <킬빌>(2003)에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오마주하여 이 음악을 차용했다) <킬빌>이 오마주 한 또 다른 영화 , <사무라이 픽션>(1998, 나카노 히로유키) 역시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주인공 카자마츠리 란노스케를 연기하며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음악과 액션의 기표 놀이를 극대화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픽션>과 < 킬빌>의 흔적 그림자 무대 미장센은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오프닝 타이틀에서 사용된 흑적대비를 연상시킨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이처럼 <사무라이 픽션> 이나 <킬빌>처럼 감각적이고 패러디로 가득한 액션 영화 음악과 미장센에 영향을 미쳤고, 액션과 음악이 만났을 때 어떻게 기표 놀이가 매혹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부/아버지의 중층 의미
이 영화에서 사부들은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주인공 지호(로례)에게는 송사부와 손 사부, 두 분의 사부님이 계신다. 송사부와 손 사부는 지호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어머니이고 아버지다. 고아인 지호를 키워주고 무예를 가르쳐준 송 사부는 어머니처럼 그를 보듬어준다. 송사부가 괴한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등장하는 첫 장면은 사부의 존재감에 대한 감독의 방점이 아닐까. 송사부는 지호를 더 큰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며, 지호의 길에 방해가 될지 걱정하여, 지호의 연인이자 그의 딸인 영영에게 그의 죽음을 지호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지를 남긴다. 송사부는 지호가 국술대회에서 장원이 되어 무뢰한들이 대회를 장악하여 악의 세계를 구축하는 발판을 삼고자 하는 음모를 막기를 바랐다. 지호에게 거는 송사부의 큰 뜻은 손 사부에게 전해진다. 어머니 같은 자애를 보여준 송사부에 비해 엄부의 역할을 보여준 손 사부는 지호에게 철사장(鐵砂掌)이라는 비기(秘記)를 넘겨준다. 정창화는 주인공 지호를 중심에 놓고 상징적 어머니와 아버지를 배치한다. 정창화에게 아버지는 시대를 반영하는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정창화의 내러티브에 일정하게 반복되는 모티브와 자주 관련된 바 있다. 허장강과 김승호 배우가 연기한 두 가지 다른 부성의 금쟁이 아버지(<노다지,1961>)와 주선태 배우가 연기한 이기적인 자본가 아버지(<위험은 가득히,1967>), 친일파 아버지 (<사르진 강에 노을이 진다, 1965>)등 여러 모습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런 다양한 아버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가부장의 모습이고, 한 사회를 대변하는 여러 ‘어른’의 모습이다. 그래서, 맹 사부가 표현한 사부 혹은 아버지 모델은 비뚤어진 부성이지만 의미심장하다. 어둠 속에서 복수 당하는 맹 사부 장면은 역 오이디푸스 스토리를 담는다. 맹 사부의 망나니 아들은 인과응보로 두 눈알이 뽑히고, 맹 사부는 어둠 속에서 분별을 못 해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비통하게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은 강한 콘트라스트 조명으로 맹 사부의 눈과 눈물만 강조된다. 곧이어 피를 뿜으며 자살하는 맹 사부로 종결되는 이 시퀀스는 <노다지>(1961)에서도 이미 탁월하게 재현했던 누아르식 접근이다.
완숙한 액션 연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정창화 액션 영화의 완숙한 기량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화면을 횡으로 달리고 주관적 시점으로 무기들이 날아오며, 트램펄린으로 수직 속도감을 높인다. 빠르게 공중에서 합을 맞추면 떨어질 때 이미 승부가 나 있고, 두 손가락에 눈알이 뽑혀서 마룻바닥에 뒹굴고, 철장권으로 등을 치면 입에서 피를 뿜는다. 지호의 철장으로 기둥을 치면 맹수가 물어뜯은 듯한 이빨 자국처럼 기둥이 으스러진다. 가라데 고수는 이 철장을 맞고 벽에 몸이 박힌다.

가라데 고수와 지호의 승부는 액션 연출의 교과서다. 가라데 고수와 지호가 대결을 위해 각각 화면을 횡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거리와 시간을 늘리고, 주관적 시점은 화면에 수직 운동성을 주기 때문에 이 두 장면이 평행편집이 되면 방향과 운동성이 모두 격돌하듯 충돌한다. 연출로 액션을 다듬는 노련한 연출이다. 그리고 액션이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우리는 손바닥이 붉어지기를 갈망하게 되고, 신시사이저 음악이 울리기를 바라게 된다. 붉은 손바닥과 테마 음악이 우리의 욕망과 이토록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미끄러지는 기표 놀이는 자꾸만 놀이를 지연시킨다. 음악과 액션 기표 놀이의 클래식,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소구 되는 이유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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