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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반복된 기억과 시간의 재배치, <소스코드>(2011)
[김윤진의 시네마 크리티크] 반복된 기억과 시간의 재배치, <소스코드>(2011)
  • 김윤진(영화평론가)
  • 승인 2024.11.25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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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1.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11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던컨 존스 감독의 <소스코드>는 시간대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특정한 기억이 반복되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다. 이는 언뜻 보아 특정한 시간대가 무한히 반복되는 ‘타임 루프’ 장르의 전형인 듯 보이지만, <소스코드>는 시간대가 실제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기존의 ‘타임 루프’ 장르와는 차이를 갖는다. 심지어, 반복되는 기억은 주인공의 것도 아니다. 자신의 기억이 아닌 타인의 기억을 통해서 시간대가 반복되는 설정을 통해, 영화는 앞선 사례들과 다른 방식으로 기억과 주체의 관계를─나아가, 신체와의 관계까지도─ 고찰한다. 영화는 달리는 기차에서 눈을 뜬 콜터 스티븐스 대위(제이크 질렌할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어지는 상황은 어딘가 낯설다. 맞은편 여자는 그녀에게 익숙하게 말을 건네지만, 그는 그녀와 대화한 기억이 없다. 자신의 이름은 ‘콜터’인데, 승무원은 그에게 ‘숀’이라 부른다. 심지어 거울에 비춘 그의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콜터가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던 중, 갑작스레 폭탄이 터지면서 그는 목숨을 잃는다.

 

그림 2.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2.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는 죽었지만, 살아있다. 폭발과 함께 정신을 잃었던 그는 사방이 폐쇄된 캡슐에서 깨어난다. 무전을 통해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그가 임무 수행 중이며, 조금 전 있었던 폭발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이를 거부하지만,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폭발 8분 전으로 보내진다. 다시 한번, 열차에서의 상황이 반복된다─맞은 편의 여자와 대화하고, 구두에는 커피가 쏟아지고, 승무원은 승차권을 확인한다. 따라서, 폭발 또한 곧 이어질 것이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콜터 대위는 본능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예정된 죽음을 피하려 기차에서 멀찍이 도망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또다시 죽음을 겪게 되고 캡슐로 돌아온다. 몇 번의 반복을 거치며 캡슐의 통신망에 문제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임무를 둘러싼 ‘소스코드’ 프로그램에 대하여 알게 된다. 열차에서의 기억은 그의 것이 아니었고 반복된 폭발의 순간은 실제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이의 기억을 통해서 테러범을 밝혀내는 임무를 수행하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미 죽은 이의 기억에 접속해 그것을 반복해서 재활성화하기 위해 그가 투입된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그림 3.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림 3. 영화 '소스코드'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콜터 대위가 테러범을 색출하는 임무에 성공하면서, 그제야 영화는 그의 상상이 아닌 그의 현실을 보여준다. 즉, 신체의 거의 전부를 잃고 기계 장치를 통해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죽어서도 죽지 못한 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가 주는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이미 죽은 상태였으며 기계 장치에 의지해 뇌의 일부만 간신히 살아있는 상태였음이 밝혀지며,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점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심지어, 기계 장치를 종료한 이후에도 살아가는 ─그러나 ‘콜터’가 아닌 ‘숀’으로써─ 그의 모습은 관객들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그리고 신체와 의식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소스코드’ 프로그램이 현실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는 여는 장치로 기능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삶을 이어가고자 했던 그의 의지였을까. 어쩌면 영화는 기억이 세계에 대한 인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김윤진
시각예술 및 대중문화에 대하여 글을 쓴다. 2024년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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