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익숙함은 곧 지루함이 되니까. 나아가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작은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주어진 것을 처리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2024)는 그 반복과 차이의 예술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일본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평범한 일상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담았다.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2017)의 전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패터슨>은 시 쓰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반복적인 일상을 그리면서도, 작은 차이들을 곳곳에 배치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담았다. 이처럼 유사한 방식의 영화 <패터슨>에 비해서도 <퍼펙트 데이즈>의 전개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일반적인 영화의 속도가 아닌, 일상의 속도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선사한다.
<퍼펙트 데이즈>의 내용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다. 히라야마는 독서, 필름 사진 찍기를 매일 이어간다. 그에게 이 행위는 따로 예술적인 목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이불 개기, 자판기 커피 마시기, 공중화장실 청소하기, 식사하기, 선술집에서 한잔하기와 다를 바 없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하나의 일상이다. 모순되게도 그래서 히라야마의 모든 일상은 하나의 예술적 행위처럼 다가온다. 그는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히라야마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는 그 예술성을 극대화한다. 동료의 얘기처럼 “어차피 더러워질” 화장실 청소지만, 그는 마치 자신만의 조각을 깎고 다듬듯이 정성스럽게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틈틈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심리적 여유에서도 평범한 일상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는 거들 뿐…오늘에 오롯이 집중하다
영화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궁금해할 히라야마의 과거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위한 과정, 오늘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로 활용할 뿐이다. 히라야마의 과거는 그의 조카가 나타나며 살짝 다뤄진다. 여동생의 딸이 가출해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자신의 딸을 찾으러 온 여동생과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여동생이 고급 세단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냐는 여동생의 제안에도 거절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 이외에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이를 통해 그가 잘사는 집안의 아들이었을 것이라는 점, 어떤 갈등으로 스스로 아버지와의 단절을 선택했을 것이란 정도만 유추할 수 있다. 히라야마는 과거와의 조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 역시 그와 함께 과거를 잊고 오늘로 돌아간다.
히라야마의 미래 역시 작은 여운을 남기는 정도로 다루는 데 그친다. 히라야마는 마음에 둔 선술집 여성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그녀가 전남편과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갈등을 지속하지 않는다. 전 남편은 곧장 히라야마를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오해를 풀고, 히라야마는 그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덕분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히라야마가 선술집 여성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이후 히라야마가 여성을 찾아가는 등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는 오직 히라야마가 여성의 전남편과 그림자밟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에 집중하며 유쾌한 여운을 남긴다.

인물, 그리고 관객의 생을 관통하는 얼굴
홀로 살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히라야마는 때로 고독을, 나아가 고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연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히라야마가 화장실에서 종이로 완성한 게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틈에 들어가 있는 종이를 발견한다. 이 종이엔 누군가가 빙고 같은 게임을 그린 흔적이 있다. 히라야마는 이를 본 후, 직접 그 게임의 참여자가 된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O 또는 X를 번갈아 그려 넣은 후, 종이를 다시 틈 사이에 끼워 넣는 식이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OX를 그린 다음, 연이어 상대가 종이에 그려넣은 흔적을 발견하면 환히 웃기도 한다. 히라야마는 자기 일을 철저히 수행하는 인물인 만큼, 이 종이를 쓰레기로 치부하고 쉽게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고도 작은 연결을 소중히 하며 그 연결에 감사해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엔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있다. 야쿠쇼 코지가 아닌 다른 배우의 얼굴로는 히라야마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됐다. 일상적 행위를 묵묵히 반복하는 표정부터 작은 것에도 쉽게 반응하며 짓는 옅은 미소까지 히라야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야쿠쇼 코지의 얼굴에 온전히 집중한 클로징은 <퍼펙트 데이즈> 최고의 장면에 해당한다. 클로징 속 그의 얼굴엔 기쁨과 슬픔, 낙관과 비관, 희망과 회한이 한데 뒤섞여 나타난다. 한 인간의 생애를 관통하는 모든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식이다.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곧 히라야마의 얼굴, 그리고 관객의 얼굴이 되어 하나로 일치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그의 얼굴 위로 영화가 빚어내는 반복과 차이의 예술이 완성되고, 히라야마의 일상은 관객의 일상으로 환원된다. 퍼펙트하게.
사진 출처:네이버영화
글·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위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기자,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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