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철새는 죄가 없다
철새는 죄가 없다
  • 이봉수 |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 승인 2025.01.31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가항공·지방공항, 비행기 타기가 무서운 이유
양양국제공항은 경비행기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되다가 플라이강원이 설립돼 하루 한 차례 제주노선에 취항했으나 그마저 파산해 말 그대로 '유령공항'이 됐다. ⓒ 이봉수 

김포발 대한항공이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 43분(현지시각) 미국령 괌 국제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산에 부딪혀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날 밤 <한겨레신문> 당직 야간국장이던 나는 부랴부랴 호외를 제작했다. 1983년 9월 1일 소련 공군 요격기에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사망 269명)을 빼고는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된’ 그 추락 사고뿐 아니라 한국 항공사나 공항에서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한국 공항이나 항공사에서 사고가 잦은 요인

항공산업 관련 기득권세력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원인을 돌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천후나 새떼, 사망한 조종사 개인의 실수로 돌리는 것은 전래의 수법이다. 그러나 악천후나 새떼 같은 자연 요인이나 조종사의 사소한 실수에도 사고가 나지 않는 수준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게 항공안전의 요체다. 항공사고는 났다 하면 대참사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괌 사고도 악천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우리 언론이 초기에 언급하지 못한 원인도 지적했다. 한국 민항기 조종실 특유의 서열 문화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했다는 거였다. 심야 악천후 상황에서 운항 고도가 너무 낮아졌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느낀 부기장이 ‘Go Around(착륙 포기하고 복행)’라고 건의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게 한 원인일 수는 있어도 더 큰 요인은 딴 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기장이 “착륙 포기합시다”라고 건의한 것이 충돌 7.47초 전이고 재차 “착륙 포기”를 외친 것은 충돌 4초 전이었다. 기장이 “착륙 포기”를 선언하고 비행기를 밀어 올린 것은 충돌 2.3초 전이었다.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는 괌 공항의 거리측정장치가 공항활주로에서 무려 5km나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고 계기착륙장치도 고장 난 채 3개월째 방치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무거운 책임을 대한항공으로 돌렸다. 그러면 이번 제주항공 무안공항 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개발공약의 정치경제’와 신개발주의

내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물론, MBC저널리즘스쿨과 제주 한미리스쿨에서도 빠짐없이 3~5시간을 들여 강연해온 주제는 ‘개발공약의 정치경제’이다. 왜 선거 때만 되면, 공항, 도심재개발, 새만금, 한반도대운하, 고속도로, 경전철 등 개발공약이 쏟아지는지, 타당성은커녕 경제성도 없는 각종 개발공약들이 얼마나 나라살림과 환경을 훼손하고 나아가 선거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지 강조한다.

개발공약은 이슈선점효과가 크다. 1987년 대선에서는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경부고속철과 새만금사업 등을 졸속으로 발표해 투기 광풍과 사업비 폭증을 불러왔고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군부정권을 연장시켰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아우구스투스의 로마 재건사업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그를 초대 황제로 만들었고, 중국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리비아 카다피의 대수로사업은 아무도 거부하지 못하는 당대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행세하면서 두 나라 경제와 국민의 삶을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근대국가가 성립된 지금도, 오래되고 작고 느린 것에 대한 염증을 새롭고 크고 빠른 것을 향한 욕망으로 채워 나간다. 개발은 곧 성장과 발전이라는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만나 신개발주의로 진화하면서 국가와 민간지본이 합작해 차별성의 이미지를 부각하거나 장소를 상품화한다. 전국에서 대부분 폐허가 되어 가고 있는 수많은 테마파크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신개발주의는 역사, 환경, 생태, 문화, 여가라는 요즘 잘나가는 테마로 포장해 개발단계의 저항을 무력화한다.

 

‘정치적 발언’ 센 지역에 집중된 적자공항들 

개발공약의 폐해를 웅변하는 사례가 공항이다. 전국의 공항 중에서 흑자를 내는 곳은 인천, 김포, 김해, 제주뿐이고 나머지 10여 곳은 해마다 많게는 500억원까지 적자를 내거나 개점휴업 상태다. 영남에는 사천, 김해, 울산, 포항, 대구가 공항벨트를 이루고 있는데 가덕도와 군위에 또 공항이 건설되고 있다. 호남에는 여수, 무안, 광주, 군산에 공항이 있다. 한때 김제에 공항을 건설한다며 480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는데도 새만금에 또 공항을 추진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에 특히 적자공항이 많은 이유는 우리 정치 환경에서 발언권이 센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군부 출신인 유학성씨가 예천 국회의원일 때 개항한 예천공항, 울진 출신에 DJ정권 실세인 김중권 씨가 추진한 울진공항은 민간공항 기능을 상실했다. 마치 버스정류장 만들 듯 공항을 촘촘히 건설하는 일은, 자가용차 대중화 시대에,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가 불가능한 항공교통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바보짓이다.

양양공항은 3589억원을 들여 중형항공기 연간 4만3천회 이착륙이 가능한 국제공항으로 홍보하며 2002년 완공됐으나, 2009년 영국 <BBC>가 ‘유령공항(Ghost Airport)’으로 보도했다. 2007년에는 하루 평균 117명이 이용했는데 공항공사, 세관, 출입국관리소 등 상주직원이 82명이었다. ‘1대1 개인과외’를 방불케 할 정도의 고비용 구조여서 저가항공사 플라이강원마저 파산했다.

 

제주공항은 긴 동서 활주로가 있고, 남북 활주로도 있지만 길이가 1,900m로 짧고 두 활주로가 교차해 평상시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 네이버 지도

저가항공·지방공항 안전에 투자하라

제주에 사는 나는 육지 강연을 다니느라 1년에 편도 기준으로 40여 차례 비행기를 타는데 탈 때마다 불안을 느낀다. 제주-김포 노선은 세계에서도 가장 붐비는 노선이며 밀릴 때는 1분 42초마다 비행기가 뜨거나 내린다고 한다.

‘공중대기’를 뜻하는 ‘홀딩 패턴(holding pattern)’도 자주 걸린다. 비행기 창문밖으로 한라산이 보였다가 바다가 보였다가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홀딩 패턴에 걸린 건데, 안내 방송도 없어 더 불안해진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나는 백령도와 백아도 해군 레이더기지에 복무할 때 전방항공기유도(FAC: Forward Air Control) 장교 훈련을 받았는데, 공항이 붐비면 사고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주공항의 만성 체증 현상은 제주를 다녀가는 비행기가 일정에 쫓기는 결과를 빚어 정비 불량 등으로 이어진다. 사고기도 48시간에 13차례 운항했는데 혼잡한 제주공항에 들르면서 비행일정에 차질이 가중됐다.

 

북풍에 약한 동서활주로만 운용하는 제주공항

특히 제주공항은 동서활주로여서 겨울에 북풍이 불면 옆에서 불어 닥치는 측풍을 받게 되는데, 제일 위험한 바람이 이것이다. 또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바뀌는 윈드시어(wind shear)는 비행기를 추락시킬 힘이 있다. 제주공항에는 길이 3,180m의 동서 활주로가 있고, 남북 활주로도 있지만 1,900m밖에 안 돼 이륙만 가능하고 비상시 보조활주로 구실만 한다.

 

일본 항공사들은 제주 취항 포기

아시아나항공 기장으로 은퇴한 뒤 저가항공에서도 5년간 조종간을 잡은 고교동창생은 윈드시어 등이 위험하고 공항이 복잡해 일본 항공사들은 몇 차례 체크 비행을 한 뒤 제주 취항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가 난 무안공항도 새떼가 많이 출몰해 착륙하기 싫은 곳이라고 말했다.

“사고기와 같은 기종을 몰고 무안공항에도 여러 번 이착륙해봤지. 근데 아침과 저녁에만 몇 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 무슨 국제공항이야. 지금이라도 빨리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을 합쳐야 해. 항공사 직원들이 두 공항을 왔다 갔다 하며 근무하는데 제대로 대비가 되겠어?”

‘규모의 경제’가 살아나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고가 난 뒤 밝혀졌지만 사고 당일 무안공항 조류퇴치팀은 팀이랄 것도 없는 1인이었다. 사고 현지에서는 필자의 제자들 10여 명이 취재했는데 <경향신문> 기자가 되기 전 제주 한미리스쿨에 와서 한 달 개인지도를 받은 제자 오동욱이 사고 현장 위로 마침 새떼가 날아가는 사진을 찍어 르포 기사를 썼길래 “사진을 한 장 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보내주었다.

 

<경향신문> 오동욱 기자가 보내준 오리 떼 사진. 사고 다음 날인 12월 30일 오전 8시 30분쯤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위로 가창오리 떼가 날아가고 있다. ⓒ 오동욱

사고 난 시간에 새떼 이동…퇴치요원 1인

오 기자와 동반한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은 철새들이 아침저녁에 먹이활동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비행시간과 겹친다고 말했다. 오 기자는 그 자신이 아마추어 조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2021년 여름 한 달을 공주 금강변에서 잠복하며 물떼새가 알을 깨고 나와 날기까지 과정을 관찰한 자연 다큐 <물떼새, 날다>를 출품해 <KBS>에 방영되고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환경 주제 영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대부분 공항을 조류 서식밀도가 높은 갯벌이나 호수 습지 인근에 건설하는 이유는 공항부지 조성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무안공항과 남동쪽의 무안CC 골프장 사이에는 창포호가 있고 공항 동쪽 현경면과 북쪽 해제면 일대는 국내 최초로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조류 전문가들은 비행기라도 자주 뜨고 내리면 소음으로 새들의 서식지나 이동경로가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지은 지방공항은 이착륙이 한산해 그마저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무안공항은 지난해 1~11월 하루 평균 운항편수(도착+출발)가 7편에 불과했다.

 

습지는 원래 인간 아닌 새들의 고향

새만금, 제주 성산읍, 흑산도, 가덕도 등에 추진하고 있는 신공항들도 철새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 인근에도 철새 도래지 4곳이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은 제2공항이 들어서면 조류 충돌수가 기존 제주공항에 비해 최소 2.7배에서 최대 8.3배가 높을 것이라는 검토 의견을 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5년간 국내 조류 충돌 수는 623건이나 됐고 이에 따라 회항한 항공기도 7편이었다. 비행기가 390km 정도 속도로 이착륙할 때, 900g쯤 되는 작은 청둥오리 한 마리가 비행기와 충돌하면 4.8t의 충격을 주게 된다고 한다.

이런 위험성을 고려해 조류 탐지 레이다를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국내 15개 공항에는 설치된 데가 없다. 백령도 해군 레이더 기지에 상황장교로 근무할 때 새떼를 ‘남하하는 의아선박’으로 오해하기도 했는데, 속도와 경로 등을 통해 구별할 수 있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조류를 탐지하기도 하는데 현재 김포, 김해, 제주공항 등에만 설치돼 있다. 조류 탐지·퇴치 인력은 인천국제공항에 40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착륙이 뜸한 공항에는 2~4명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규제완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2005년 제주항공 출범 이래 정부의 무더기 허가로 9개까지 늘었는데, 이 숫자는 국토 면적이 98배인 미국과 같다. 건실한 곳도 있지만 과당경쟁이 벌어지면서 상당수 항공사는 정비 분야 노동자를 줄이거나 처우를 박하게 해 결국 안전비용을 줄여 손실을 메우는 형국이다. 항공기 월평균 운항시간은 제주항공이 418시간으로 가장 길고, 티웨이 386시간, 진에어 371시간 등으로 저비용 항공사 비행기들이 혹사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콴타스항공은 안전을 상표로 내세워 성공했다. ‘안전한 항공사 순위’에서도 자주 1위를 한 콴타스는 1951년 이래 사망사고가 없었다. 콴타스는 비행기 평균연령을 6~7년 정도로 유지한다.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일 경우 헌 비행기를 사거나 빌려 간 데서 나기 십상이다. 항공데이터업체 시리움에 따르면, 이번 제주항공 사고 비행기는 15년 됐으며, 2017년에 유럽 저비용항공사인 라이언에어에서 임대한 것이다.

세월호 침몰도 규제완화가 요인이었다. 일본은 선박 내구연한이 20년으로 돼있는데 한국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주었으니 폐선을 들여와 곱게 페인트 칠해 다니다가 사고를 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안전, 환경, 인권, 노사 등에 관한 규제는 더 엄격히 적용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안전 등 공익을 희생해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역행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퇴행을 막아야 할 언론이 대부분 규제완화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점이다.

 

 

글·이봉수
현재 제주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 원장, MBC저널리즘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다.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 한겨레/경향 시민편집인/칼럼니스트 등으로 일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