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늦더위>: 청년실업 문제와 공무원 준비생의 비경제활동

청년실업은 내수경제 비활성화, 출산율 감소, 자살율 증가, 범죄율 증가 등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 때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고 매서운 고용한파가 장기화되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늘어나고 10명 중 8명이 공무원 시험에 관심을 보이며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보인다. 2020년대 들어 정규직 800만 시대에 진입하지만 비정규직 비중은 세계 1위라는 점에서 고용 양극화도 청년실업의 큰 문제이다. 취업 준비생의 장기간 비경제 활동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 연간 17조원의 국가적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늦더위>(서한솔, 2024)는 공무원 준비생의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동주(기진우)는 8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계속 떨어지고, 주변의 걱정과 압박을 느껴 서울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고, 전 여자친구, 군대 후배,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공무원 준비생인 주인공 동주의 서울, 수원, 청주로 이어지는 여정은 청년실업과 비경제활동 문제를 생각하는 화두를 던진다.
2. 서울: 무대 위/무대 밑의 간극과 보이지 않는 얼굴

<늦더위>에서 서울은 무대 위/무대 밑의 간극과 보이지 않는 얼굴을 그려낸다. 동주/대표의 공적 갈등은 능력/무능력의 대비 혹은 실제적/외면적 능력의 간극을 드러낸다. 회사의 대표는 동주의 깔끔한 일 처리를 칭찬하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직원을 제안하며, 향후 독일 유학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영입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중에 대표는 나이 30이 넘어서 직업 하나 없이 변변치 않은 동주를 지적하며 취직을 권유한다. 8년 동안의 공무원 시험과 7년 동안의 아르바이트는 청년 취업 준비생의 비경제활동와 부분적인 경제활동을 대비시킨다. 동주는 실제적으로 직원으로 영입하고 싶을 만큼 능력이 있지만 외면적으로는 장기간 취업을 못하는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힌다.

동주와 소개팅녀의 관계는 무대 위의 밝음과 무대 아래의 어두움을 대비시키며 삶의 흔적을 그려낸다. 동주는 혼자 있을 때는 어두운 면모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밝은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드러낸다. 소개팅녀는 동주 손가락의 굳은살을 보며 ‘공부를 굉장히 오래 한 손’이라며 동주의 기나긴 공부와 취업 활동을 인정해 준다. 동주/형의 사적 갈등은 합격/불합격, 자존심/부족, 도움/방해, 놀기/꼬임 등을 대비시킨다. 형은 동주를 위해서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동주의 취업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동주는 형의 친구들이 형의 공부를 방해하고 자신들은 시험에 성공해서 취업해 거부감을 느끼는 반면, 형은 자기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동주는 시험에 떨어지고 평범한 직장인 형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지만, 형의 현재를 자신의 미래로 생각하며 속상해하며 형과 갈등한다.

<늦더위>의 전반부 스타일은 영상과 사운드의 불일치, 고정된 카메라와 보이지 않는 얼굴을 통해 갑갑한 현실, 선택의 딜레마, 관계의 괴리 등을 표현한다. 전반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스타일은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첫 장면에서 건물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인물은 보이지 않고 사운드만 들리고,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동주의 옆얼굴을 보여주며 한숨소리를 들려주고, 동주와 대표의 대화 장면에서 동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소개팅 장면에서 거울을 통해 동주의 뒷모습과 여자의 앞모습을 보여준다. 영상으로 인물은 보이지 않거나 옆얼굴이나 뒷모습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갑갑한 현실,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는 인물의 근심을 표현한다. 인물이 사라진 공간의 여백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힘겨운 상황에 함몰되는 인물, 선택하기 힘든 딜레마를 표현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보이지 않는 얼굴은 얼굴의 부재로 갑갑한 현실을 표현하며 인물의 감정이입보다는 객관적이고 관찰자적 시선을 보여준다.
3. 수원: 솔직함/자존심의 간극과 사라지기/들어오기의 어긋남

<늦더위>에서 수원은 솔직함/자존심의 간극과 사라지기/들어오기의 어긋남을 그려낸다. 동주와 전 여친의 사적 갈등은 일상/단절, 자존심/솔직함의 간극을 드러낸다. 전 여친이 곧 결혼한다는 말에 동주가 “축하해!”라고 말하자, 전 여친이 “축하해?”라면 기분 나빠한다. 동주는 전 여친과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태연함을 가장하고, 전 여친은 동주의 솔직하지 못한 모습과 자신에게 터놓지 못하는 모습에 화를 낸다. 8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주는 내적 면모와 사적 면모에서 차이를 보이고 이러한 차이는 가까운 사람에게 벽을 느끼게 만든다.

동주와 군대 후배의 관계는 과거 군대의 ‘멋있는 사람’과 현재 취준생의 비경제활동을 대비시킨다. 군대 후배는 동주를 운동, 공부를 잘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후배에게 영어, 책, 공부를 권유하여 취업하게 만든 ‘멋있는 사람’이라며 고마워한다. 동주는 과거 후배의 기억과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이러한 그의 모습은 과거/현재, 자신감/열등감, 당당함/비참함을 대비시킨다. 공룡알을 찾는 여행에서 사회적 관계는 무리/혼자, 앞/뒤, 대충/자세히 등 삶의 태도를 대비시킨다. 공룡알을 찾는 일행은 무리를 이루며 앞서가고 대충 보지만, 동주는 혼자 지내며 늦게 뒤처져 가지만 자세하게 본다. 동주의 인생은 과정을 보면 성실하게 살지만 결과를 보면 남에게 뒤처진다는 점에서 공룡알 보기로 형상화된다.

<늦더위>의 중반부 스타일은 뒷모습, 영상/사운드의 불일치, 고정된 카메라, 사라지기/들어오기를 통해 어긋난 상황, 가면 쓰기, 거리감을 표현한다. 동주가 여자친구와 만나기 위해 전화하고 기다리는 장면에서 동주의 뒷모습, 호수 영상과 동주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얼굴과 영상/사운드의 불일치로 갑갑한 현실과 어긋난 상황을 표현한다. 군대 후배가 자동차로 동주를 호텔로 데려다주는 장면에서 차를 지켜보는 동주의 검은 실루엣, 호텔에서 모텔로 걸어가는 동주, 화면의 오른쪽으로 사라지는 동주를 지켜보는 고정된 카메라는 타인 앞에서 거짓을 연기하는 동주의 가면 쓰기를 드러낸다. 공룡알 화석 산지에서 세 명의 일행, 지나간 빈 공간, 나타나는 동주, 왼쪽으로 사라지는 세 사람, 왼쪽에서 나타나는 동주, 공룡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주로 이어지는 편집은 사라지기/들어오기의 반복으로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청년세대와는 다른 동주의 뒤처짐과 성실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계속 나타나는 여백은 거리감을 표현한다.

4. 청주: 지난 삶에 대한 인정과 긍정의 더블링

<늦더위>에서 청주는 지난 삶에 대한 인정과 긍정의 더블링을 그려낸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8년 동안 계속 도전한 삶에 대해 인정함으로써 동주에게 위안을 준다. 중학교 친구들은 건설업, 출판사, 카페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 동주에게 다양한 삶에 대해 여지를 준다. 직장 2년, 디자인 2년, 카페 2년 등 직장을 옮긴 친구 윤정은 “넌 뭘 해도 잘할 거다. 어떻게 8년이나 했냐?”라고 말하며 공무원 시험을 8년 동안 준비한 동주의 노력을 인정해 준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동주를 걱정하며 압박하지만, 오랜만에 본 친구들은 동주를 인정하고 격려한다.

은사와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은 삶의 장점/단점을 성찰하고, 힘든 고비에서의 더딘 발걸음에 대해 격려한다. 우암산 정상에서 만난 중학교 선생님은 우암산 정상이 나무가 많아서 청주 시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동주의 말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아서 시원하다고 답변한다. 그녀는 꺾인 나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기하다며, 맨날 앞만 보고 걷지 말고 뒤도 보고 오르막 때는 조금 더디게 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동주는 일반적이지 않은 자기 삶 혹은 꺾인 자기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현재 오르막길인 힘겨운 순간에 긴 호흡으로 천천히 더디게 가자는 여유를 얻게 된다.

<늦더위>에서 후반부 스타일은 얼굴 변화, 더블링을 통해 현실 직시와 자기 삶의 긍정,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표현한다. 우암산 정상에서 동주가 은사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동주의 옆모습, 뒷모습, 앞모습으로 바뀌는 카메라는 동주가 점점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지나온 삶을 인정하는 변화를 차례대로 표현한다. 우암산을 오르는 장면과 우암산을 내려가는 장면은 촬영거리(숏 크기)의 더블링을 통해 유사성과 차이점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옷을 입고 우암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천천히 걷는 동주의 모습을 롱숏, 풀숏, 미디엄숏 등 카메라가 주인공에게 점점 다가가면서 감정이입을 하고자 하고, 우암산을 내려가 부모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빨리 뛰는 동주의 모습을 미디엄숏, 풀숏, 롱숏 등 카메라가 주인공에게 점점 멀어지면서 외면했던 현실로 뛰어드는 동주를 지켜본다.

5. <늦더위>: 청년세대의 암울한 자화상과 생명력

<늦더위>는 청년세대의 암울한 자화상과 생명력을 그려낸다. 중학교 친구 모임에서 동주는 죽은 화분을 보며 “분갈이하고 물 주면 다시 살아나. 식물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라고 말하고, 서울집에 도착한 후 창문 앞에 핀 녹색 식물을 보고 꽃을 파는 트럭에서 꽃을 살피고 화분을 고른다. 이때 카메라는 집으로 걸어가는 동주의 뒷모습을, 풀숏, 롱숏, 익스트림롱숏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이전까지 고정된 카메라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적 시선을 느꼈다면, 이때의 고정된 카메라는 주인공의 앞으로의 삶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응원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주는 창 앞에 화분을 놓고 풀과 흙을 넣은 후 물을 준다. 주인공은 서울을 떠날 때는 생명력이 고갈된 듯했지만, 서울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 여정으로 자양분을 얻고 생명력을 되찾은 듯하다.
<늦더위>는 로드무비처럼 여정을 통한 깨달음을 그려내지만, 내적 변화만 있을 뿐 외적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로드무비는 주인공이 여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내적, 외적 변화를 보여주며, 특히 외적 변화를 강하게 보여준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외면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지 않으며, 내적 변화도 굉장히 잔잔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결심 하나로, 생각 하나로 현실이 바로 변할 만큼 녹록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을 긍정하고 더디게 갈 수 있다는 여유를 찾은 것만으로도 이 여정의 긍정성을 부여한다. 죽은 화분이 죽은 게 아니라는 확신, 마지막 장면에 식물을 사면서 8년 동안 죽어가는 자신에게 아직 죽은 게 아니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이 영화는 취업준비생 청년세대의 비경제활동을 낯선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청년세대가 취업대란 시대에 취업 준비생의 기나긴 비경제활동을 인정해 달라는 외침, 언젠가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힘든 여정을 더디게 가고 있다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늦더위> 포토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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