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짓기 예능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이번에도 화제의 인물들이 탄생했다. 24기 옥순과 영식이다. 이번 기수 여자 출연자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옥순은 능란한 유혹술로 남성들의 마음을 움켜쥐었다. 칭찬 공세, 스킨십, 관능적인 언어표현 등……. 쉴 새 없는 플러팅에 남성 출연자들이 페이스를 잃어가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그런데 문제는 옥순이 이러한 스킬을 다섯 명의 남성에게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복사-붙여넣기하듯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플러팅은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며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반면, 영식은 이성 교제에 지나치게 서툰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본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상대를 붙잡고 사랑을 호소한다. 상대가 자신을 데이트 상대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 분노하고, 감정에 북받쳐 울면서 편지를 낭독한다. “내가 물었지? 나한테 마음이 1%라도 있냐고. 네가 뭐랬어? 있다 했잖아!”라고 추궁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의 공포감마저 들게 하였다.
알고 보면 ‘옥순’이 구사한 기술들은 연애 컨설팅 업체에서 흔히 가르치는 것들과 유사하다. 컨설팅 업체에서는 상대방의 ‘섹슈얼 텐션’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며 ‘애인에게 투자(선물) 받는 법’, ‘상향혼 하는 법’ 등 실리적인 내용의 강의를 제공한다. 연애를 감정의 교류가 아닌 기술적 조작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시각은 연애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픽업 아티스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한동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레드필 이론’ 역시 이성 관계에서 절대 헌신하지 말고, 자기계발과 심리전을 통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영식’과 같은 유형도 요즘 생각보다 흔하다. 오죽하면 ‘고백 공격’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겠는가. 상대방과의 충분한 상호작용 없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낭만적으로 연출되는 고백 장면만 떠올리고 냅다 질러버리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탄생시켰다. 감정의 등가교환 원리를 간과한 채 자기만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단이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디지털 시대 속 ‘연애의 게임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최근 연애는 마치 랭킹 시스템이 적용된 게임처럼 변해가고 있다. SNS를 통해 상대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데이팅 앱에서는 ‘스와이프(손가락을 튕겨 화면을 넘기는 동작)’를 통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다. 감정 교류보다는 스펙 경쟁이 우선시되며, 연애는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처럼 여겨진다. 연애 시장의 승리자에게는 ‘알파메일’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붙는다. 한편, 여기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가상 연애를 택한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AI애인, 짝짓기 예능프로그램 등…. 타인을 대면하지 않고 연애 감정을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가면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된다. 사람들은 실제 관계에 부딪히기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연애를 ‘시뮬레이션’ 한다. 간접 경험에 익숙해질수록 현실적인 소통 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감정을 철저히 계산하는 유형과, 일방적으로 배출하는 유형이 나타나며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자신의 저서에서 ‘액체 사랑(Liquid Lov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가 안정적이고 고착적이기보다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동성 속에서 한쪽은 계속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헤매며 관계를 가볍게 소비하고, 다른 한쪽은 불안정성을 감당하지 못하여 일방적으로 관계의 고착을 요구한다. 어느 쪽에서든 진정한 감정의 교류는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더 많은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글·김세연
문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