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건을 통해 떠올려지는 역사적 장면들은 이제 더 이상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바로 그게 비극이다. 이렇게까지 누구나 단번에 알아볼 만큼 선명하게 드러나야만 비로소 ‘파시즘’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현실 말이다.
아마 공공건물 정면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나치당의 상징)가 걸려야만, 그제야 전문가들은 ‘탈선한 파시즘의 위험’이라는 표현을 애매모호하게 쓸지도 모른다. 현재는 그나마 정치적 취기가 잔뜩 오른 날에나 ‘비자유주의적’이라는 말 정도를 간신히 끄집어내는 수준이다.
사실, 어떤 이들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협력과 강제 연행(1940년 독일에 점령당한 뒤, 프랑스는 남부에 ‘비시 정부’를 세워 나치와 협력하여 레지스탕스들과 유대인들을 독일군에 넘김—역주)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프랑스식 파시즘’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끝끝내 부정하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을 거부하는, 그 ‘정치적 속내’
장애물 회피, 즉, 파시즘이라는 말을 끝내 회피하는 태도는 불행히도 부르주아 언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는 역사적 정확성을 ...
- 정기구독 회원 전용 기사입니다. 로그인 하시면 기사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기구독 인증을 받으시면 기사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증을 받지 않으셨다면 홈페이지 게시판 또는 info@ilemonde.com을 통해 인증 신청 바랍니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저작권자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