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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동석이 주도하는 포스트 시네마: 영화<거룩한 밤>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동석이 주도하는 포스트 시네마: 영화<거룩한 밤>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5.04.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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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적 주먹 한방. 개봉일 2025년 4월 30일.

마동석은 또다시 ‘주먹 한 방’으로 세상을 구원한다. 영화 <거룩한 밤>은 이야기의 촘촘함이나 인물 간의 섬세한 감정선 구축보다는, 여전히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가진 상징성에 기대어 모든 것을 관통하려 한다. 그래서 <거룩한 밤>은 거칠고 단순하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시대적 담론, 포스트 시네마의 향방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비난할 수 없다.

 

바우 역의 마동석출처: 네이버
바우 역의 마동석/출처: 네이버

<거룩한 밤>의 서사는 헌티드 하우스 호러 물의 전형을 억지스러울 정도로 모방하려 한다. 춘천을 배경으로 한 미국식 중산층의 건물, <파라노말 액티비티> 식의 홈캠 장면과 <곤지암> 식의 빙의 장면 <엑소시스트>의 악령 등장 씬들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이 모든 설정은 마동석의 주먹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갈등, 위기, 감정의 곡선은 그 덕에 희화화되거나 최소화된다. 서사는 마치 핑계처럼 존재할 뿐, 오로지 중요한 것은 마동석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마동석의 영화는 뻔하다고 평가절하하기 전에 이렇게 한번 되물어 보자. 과연 영화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걸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야기를 뒷전으로 밀어낸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게 될 것인가?

 

샤론 역의 서현/출처: 네이버
샤론 역의 서현/출처: 네이버

그 자리에 마동석은 캐릭터를 넘어 일종의 기능(function)을 남겨둔다. 그 기능을 담당하는 주먹 한 방은 악을 처단하는 정의의 메타포이자, 관객의 억압된 감정을 대리 발산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영화 속 상황이나 인과관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마동석이라는 존재 자체가 곧 해결책이며, 그의 주먹 한 방은 서사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어떤 관객은 마동석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 순간에 도달하면 해방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는 고전적 서사가 주었던 감정적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보다 즉각적이고 원초적인 쾌락에 가까운 재생산된 영화적 전율이다.

이러한 변화는 서사중심의 영화 담론을 거스르는 징후로 읽을 수 있다. 일견 포스트 시네마는 ‘서사적 세계 구축’에만 목매지 않는 영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와 감정, 쾌락의 기능성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영화의 시대. 이야기의 설득력이 약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영화적 가치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올바른 성장세라고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거룩한 밤>은 나무의 옹이처럼 바로 그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불규칙하지만 단단하게 뭉쳐있는 양성결절이다.

 

샤론, 바우, 김군(이다윗)/출처: 네이버
샤론, 바우, 김군(이다윗)/출처: 네이버

게다가 <거룩한 밤>은 때때로 지나치게 안이하다. 반복되는 공식과 안정적인 유머 코드에 기대는 선택이 눈에 거슬린다.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만이 영화의 전부를 차지하면, 이야기의 몰입이나 감정의 새로운 발견은 불가능한 미션이 된다. 빙의된 은서(정지소)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기계적인 침천물로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밤>은 지금의 대중이 겪고 있는 시대적 원망과 인간 실격의 급소를 비교적 정확히 포착한다. 복잡한 설명이나 교훈 없이, 주먹의 방향을 정확히 그곳에 시원하게 관통 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가 영화를 통해 해소하고 싶은 욕망의 일면일지도 모른다.

 

출처: 네이버
출처: 네이버

결국 <거룩한 밤>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들은 여전히 고전적 서사를 원하는가, 아니면 즉물적인 쾌락으로 재구성된 영화적 경험을 원하는가? 마동석은 이 질문을 주먹으로 답한다. 분명한 건 마동석의 이러한 선택이 어떤 정교한 이야기보다도 선명하고 강력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거룩한 밤>은 냉소적인 비판을 넘어 하나의 시대적 징후로서 읽힐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거룩한 밤>은 2025년 4월 30일 개봉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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