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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버그, 우리들의 도시
조버그, 우리들의 도시
  • 네이딘 고디머
  • 승인 2012.12.1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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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중인 펠릭스>, 1994-윌리엄 켄트리지

작가이자 친구 사이인 모라카베 락스 시크호아와 네이딘 고디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고디머의 자택에서 오랜만에 조우했다. 그들의 현 시간과 공간. 이를 주제로 먼저 입을 뗀 것은 고디머였다. "지금의 조버그(Jo'burg, 요하네스버그를 줄여 부르는 애칭)를 어떻게 생각하니?"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라난 시크호아는 1975년 요하네스버그로 옮겨왔다.

네이딘 고디머(이하 고디머): 넌 언제나 '이곳'을 네 안식처로 생각해왔잖아. 그 끔찍한 인종차별법 때문에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철창 신세를 지고 있을 때조차도 말이야.

모라카베 락스 시크호아(이하 시크호아): 맞아! 요하네스버그에 오면 마음이 평온해져….

고디머: 우리 둘은 참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 나는 한때 압제자 편이었고. 내가 자란 광산 마을 분위기가 그랬거든. 흑인이 백인을 위해 금을 캐던 곳이니까. 요하네스버그에서는 한 20~30km쯤 떨어진 마을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다른 길을 걸어온 나에게마저 요하네스버그는 일종의 메카이자, 상상 속의 런던이자, 꿈에 그리던 뉴욕이나 마찬가지였단다. 진정한 의미의 남아프리카 문학은 요하네스버그에서 탄생했어. 시, 단편, 소설, 자서전, 일반 사람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까지 모두 말이야. 그런데 우리가 그처럼 남아프리카 고유의 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 도시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가슴속 깊은 곳의 어떤 열망들을 일깨워준 덕분은 아닐까.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시크호아: 음, 동감해. 가령 돈 마테라(남아공 시인)나 아서 마이마니(남아공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혹은 남아프리카 최초의 뮤지컬 <킹콩>의 극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작품을 빚어낸 토드 마치키자만 봐도 그렇잖아. 이 남아프리카 문학가들은 하나같이 요하네스버그를 기반으로 한 덕분에, 자신이 누구인지, 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거든. 비록 요하네스버그가 여러모로 남아프리카 도시 가운데 가장 살기 힘든 곳이었을지언정 말이야.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더욱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고디머: 그 시대, 너는 어디 살았니? 판자촌?

시크호아: 때로는 판자촌에 살기도 했어. 조버그의 유명한 빈민가인 스웨토의 이모 댁에 얹혀살았거든. 로벤섬(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항 근처에 있는 섬. 수용소, 병원, 군부대 등으로 사용되었던 장소로 20세기에는 정치범 수용소였다. 만델라가 투옥되기도 했던 이 감옥은 남아공의 자유와 억압, 그리고 인간 정신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에서 갓 출소한 뒤에 말이야.

고디머: 넬슨 만델라가 갇혔던 그 감옥 말이로구나! 그럼 로벤섬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데? 요하네스버그?

시크호아: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 사람들과 함께 요하네스버그에 불법 거주했었지.

고디머: 대체 로벤섬에는 얼마 동안 있었니?

시크호아: 한 5년쯤.

고디머: 몇 살부터 지냈는데?

시크호아: 19살.

고디머: 꽃다운 청춘을 잃어버린 셈이로구나. 그럼 출소한 뒤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왔니?

시크호아: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왔어. 백인들이 사는 교외 주택가 메이페어에서 살았단다. 그다음에는 또 백인가인 파크타운에서도 살았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란다.

고디머: 그래 맞아, 락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서로 나란히 앉아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어. 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흑인들이 메이페어의 백인 노동자들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 더욱이 파크타운 같은 부촌이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거야.

시크호아: 하지만 인종차별법이 건재한 와중에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단다. 가령 그 시절 흑인들은 백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셋집을 얻기도 했어. 친구의 이름으로 가짜 서류를 꾸며 집을 구했지.

고디머: 맞아. 존 스미스가 실은 락스 시크호아이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흑인들은 인권 투쟁을 통해 중요한 권리들을 쟁취하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실생활에서 나름의 권리를 누리며 살았던 셈이로군. 넌 한때 용감하게도 요하네스버그 시민에게 개인의 자유를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어. 요하네스버그가 아닌 다른 남아공 지역이었다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시크호아: 물론 아닐 거야. 사실 요하네스버그가 조금 앞선 도시이긴 했지.

고디머: 좀더 깊은 얘기를 나눠보자. 가령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까. 오늘날 고위 정부 관리에서 피라미드 최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어. 심지어 너와 같이 로벤섬에 갇혔던 이들처럼,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했던 영웅들마저 비리 사건에 연루되는 실정이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정말 그들이 예전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시크호아: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뭘까? 그것은 바로 어떤 이유로든, 그 누구도 절대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 돈을 찔러 넣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그럼 되는 거야. 간단하지? 여기 요하네스버그에 살면서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문학, 음악, 요컨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거야. 예술이 이 도시 주민이나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데도 말이야. 가령 아프리카 대륙으로 시선을 넓혀보자. 독립 초기의 케냐나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들을 봐. 이 나라들이 배출한 치누아 아체베, 월레 소잉카, 제임스 응구기 같은 작가들은 신문이나 TV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도 깊게 당대 현실을 자신들의 책 속에 녹여냈잖아. 물론 당시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긴 했지. 새 나라, 새 정권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경찰에 붙들려가는 작가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고디머: 물론 지금껏 요하네스버그에서는 그런 일로 작가가 잡혀간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철폐되자마자, 곧바로 '국가보안법'(1)이 등장한 사건 말이야. 그 사건으로 우리는 거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준하는 검열국가 시대로 되돌아갈 뻔했잖아.

시크호아: 농촌 지역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부족장의 말이 곧 법처럼 통하고 있어. 헌법이나 권리장전 따위는 무시되기 일쑤지.

고디머: 나는 흑인들의 전통을 존중해. 비록 내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신자는 아니어도 그들의 문화적 전통을 존중하듯이 말이야. 하지만 어린 처녀들이 아버지가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부족장이 법으로 공포하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여성의 권리, 아동의 권리는 만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보통법에 준해야 하는 것이잖아. 물론 식민지 시절 본국이 말살하려 했던 흑인 고유의 전통 혼례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고 봐. 하지만 헌법에 규정된 권리나 시민권과 관련된 부분은 만인이 국가의 법률을 적용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시크호아: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쓴 글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가령 우리가 온갖 매체를 위해 쓴 시트콤과 더불어, 이 도시를 소재로 쓴 짧은 단편이나 연극 들도 앞으로 TV를 통해 더 많이 소개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봐. 하지만 책이나 문자화된 글이 그렇게 되기는 힘들지.

고디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터리나 콘센트, 전원 따위가 아니야. 바로 우리 고유의 정신이지. 책의 양 표지 사이에 기록된 문자화된 글들에 대해 우리는 지금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 그 생각에 동의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 사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거야. 자유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 가령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만 봐도 그래. 아마 너는 더 이상 타운십(과거 남아공의 흑인 거주지) 같은 데서는 살 수가 없을걸. 조버그에서 네 명의로 집도 가질 수 있는데 대체 타운십에서 살 이유가 뭐 있겠니.

시크호아: 백인들이 사는 교외 주택가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

고디머: 사회가 이토록 변하게 된 데는 계급 변화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시크호아: 그래, 오늘날 흑인 중산층이 생겨나고, 고급 주택가에서 살아가는 흑인 부호들도 등장했지.

고디머: 한마디로 피부색이 아닌 사회계급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빈민촌에서 살아가고 있어. 도시 주변의 허름한 판자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시름하고 있지. 나는 요하네스버그를 아주 혼돈스러운 도시라고 생각해. 요하네스버그는 아주 멋진 도시지만, 동시에 판자나 철판으로 대충 지은 판자촌을 보면 끔찍한 지옥을 방불케 해. 극빈자들이 맨바닥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하고. 그들은 모두 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이 도시 사람들이 아니기도 하잖아.

시크호아: 네이딘. 나는 배신감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현실에 당혹감을 지울 수가 없어. 예전에는 서로 계급은 다를지라도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모두 함께 투쟁했었잖아. 우리 민주정부는 인종차별 정책이 철폐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 빈민가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테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온 힘을 기울이고 있을 테고. 하지만 정말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눈으로 확인되지가 않아. 오히려 부정부패가 만연하면서 민중의 이익을 비롯해 우리가 열심히 투쟁해 쟁취한 것들을 집어삼키는 것만 보일 뿐이지.

고디머: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모든 게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직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인간다운 소득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는 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문제의 근원은 어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문맹이거든. 그 애들은 글을 읽고 쓸 줄을 몰라. 거기서 문제가 비롯되는 거야. 적어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건데.

시크호아: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흑인은 모국어가 무려 9개나 돼.

고디머: 물론 영어가 식민 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어. 하지만 영어를 공식어에서 제외시키자는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생각에 불과할 뿐이야. 옛 프랑스 식민지들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어와 더불어 프랑스어를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잘 활용하고 있잖아. 요하네스버그에선 영어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 어쨌든 모든 학생들에게 아프리카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실제로 그런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시크호아: 안 그래도 여러 연구 조사를 보면 사람들이 모국어로 배울 때 가장 쉽게 지식을 습득한다고 하더라.

고디머: 모국어도 그렇지만, '보편어'라 불리는 언어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조버그의 학교들이 그럴 만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걸까?

시크호아: 물론이야. 다만 9개 언어 중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가 문제지 않겠어? 요하네스버그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으니 말이야.

고디머: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시크호아: 줄루족, 츠와나족, 소토족이 가장 많긴 한데….

고디머: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인종 장벽을 철폐해야 해. 예전에 주레이크 공원은 백인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지. 하지만 요즘은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는 흑인 연인을 백인 연인보다 더 많이 보게 돼. 물론 예전과 달리 백인보다 흑인의 인구가 더 늘어났으니 당연한 현상이야.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상황이 역전돼 백인이 역차별을 받는 일은 없단다. 가령 풀밭에 누워 있는 내게 흑인 친구들이 "저리 꺼져!"라고 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어. 하지만 더러 어떤 백인 친구들은 인종 간 평등에는 찬성하면서도 정작 우리처럼 흑인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건 꺼리기도 해. 분명 네 흑인 친구들 가운데도 그보다 더 백인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질색하는 이들이 있을 거야.

시크호아: 사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인종 간 화합의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시민이자 작가로서 이러한 변화를 계속 추구해나가야 해. 우리가 이런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우리 책을 대중에게 읽히는 거야. 우리가 쓴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고, 그들 모두와 문학 속에 드러난 삶의 참모습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고디머: 연극 이야기를 해볼까. 오늘날 우리는 나란히 극장에 앉아 함께 연극을 봐. 옛날에는 어땠는지 기억나니?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관객이 인종별로 분리되던 시대에도 도시에서는 '마켓 시어터'나 '윈디브로우 시어터'에 가면 두 인종으로 구성된 혼합 극단이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관객도 두 인종이 뒤섞여 앉았지. 이상하게도 그런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됐어. 타운십이나 시골 빈민촌에는 극장이 없었던 탓이겠지. 혹 흑인들이 배우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감화되어 혁명을 일으켜서는 안 될 일이잖아. 아무도 음악이 사람들의 귀를 파고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지. 1976년 남아프리카에 비로소 TV가 등장했어. TV는 매우 보편적이고 무해한 대중매체였지. 물론 정부가 일일이 방송 내용을 검열했어.

시크호아: 오늘날 삶의 방식도 참 많이 변했지. 비록 자유를 쟁취한 지 20년 만에 가능해진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흑인이 집을 사서 우리 앞집으로 이사 오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됐잖아.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나는 케이크를 사들고 새 흑인 이웃을 찾아가기까지 했어. 백인 이웃에게는 좀처럼 그렇게 하는 법이 없지. 대체 왜 그랬냐고? 새로 이사 온 흑인 가족에게 그들이 비록 '백인' 주택가로 이사 오기는 했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을 환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도 혹 흑인의 입장에서는 가식적인 태도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고디머: 아니 전혀. 오히려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해. 신디스와와 나도 이사를 하고 나서 옆집에 사는 두 백인 이웃과 앞집에 사는 흑인 이웃을 전부 초대해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었는걸. 락스, 아직 너는 희망을 잃지 않았니? 아니면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도시가 결국 부정부패의 지옥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니?

시크호아: 나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어, 네이딘. 여기저기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잖아. 가령 흑인 출신의 팍스 타우 시장을 봐. 그는 모든 종류의 부정부패에 반기를 드는 진보적인 인물이야. 요하네스버그는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협력해나가며, 공동체의 삶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어. 덕분에 우리 도시도 조금씩 변하고 있지.

고디머: 너와 나, 우리 둘은 오늘 정말이지 많은 문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구나. 하지만 아직 다른 민족의 침입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네. 흑인들이 자유를 쟁취한 당시만 해도 이처럼 오늘날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 자기 민족끼리 전쟁을 벌이고 수백 명, 수천 명, 아니 그 정확한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조국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어. 오늘날 이 난민들 때문에 '에골리'(2)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

시크호아: 하지만 나는 이주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아주 오래됐다고 생각해.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를 이룩한 건 결국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이주민들이었다고.

고디머: 네 말을 듣다 보니 문득 팍스 타우 시장의 얘기가 떠오르는구나. 그는 이 지역에 금광이 발견된 이후, 이 지역을 소유한 토착민과 더불어 이주민들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해준 덕분에 지금의 요하네스버그를 일궈낼 수 있었다고 말했지.

시크호아: 맞아. 흑인들의 노력 덕분인 거야.

고디머: 락스, 우리는 현실주의자로서 이 도시가 진정 자유로운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작가로서 계속 열심히 노력해나가자.

시크호아: 그래, 결코 포기하지 말자. 조버그, 요하네스버그여, 영원하라. 아만들라!(Amandla '대중에게 권력을'이란 뜻)(3)

 

/ 네이딘 고디머 Nadine Gordimer 199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여류 작가로, 추방과 소외 문제를 주로 다뤄왔다.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5살에 첫 소설을 잡지에 발표했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apartheid)이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흑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고 차츰 그 정책에 정치적으로 강한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고디머는 그의 소설에서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책이 남아프리카 국민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주로 다루었으며, 개인적인 소외와 사회정의의 실현 사이에서 빚어지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탄의 달콤한 목소리> <금요일의 발자국> <보호론자> 등이 있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어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네이딘 고디머는 <남아프리카: 자유를 침해하는 새로운 위협>(The New York Review of Books·2012년 5월 24일)에서 이 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2) ‘황금의 도시’라는 의미로 요하네스버그를 자칭한다.
(3)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에서 사용되던 줄루어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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