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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의 나라
소인배의 나라
  • 이인우
  • 승인 2013.02.0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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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르 디플로' 읽기

이명박씨가 한 신문과 가진 대통령 퇴임 기자회견 기사를 읽다가 공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여럿이 모여 앉아 하루 종일 이야기하면서도 정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자잘한 지혜만 자랑하는 자들은 희망이 없다." <논어>(한필훈 옮김) 위령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옮긴이는 이 말씀에다 소제목을 붙였는데 '소인배들'이다. 정확한 헤드카피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후 어떤 자리에서 이명박씨가 '놈현'이 망친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호언하는 친구에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명박씨가 나라를 구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학맥, 특정 지맥, 특정 업계 이 세 가지는 확실하게 구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명박씨 치세에서 몇 가지는 확실히 '특수'를 누렸다. 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경지를 바랄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씨가 자기 전문 분야인 견물사리(見物思利)에서만큼은 확실히 족탈불급이었다는 점에도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민생과 국익을 위해 노심초사하다 보니 불가피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국민의 책임도 없지 않다. 조금 구질구질해도 그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떡고물을 양산하는 측면이 있고, 내심 조금 찝찝해도 주머니가 짭짤하기만 하면 그냥 모른 척 묻어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이명박 5년의 가장 개탄스러운 사실은 그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그리고 폭넓게 나라의 기풍이 퇴락했다는 것이다. 지위 고하, 장유, 빈부, 유무식을 가릴 것 없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대놓고 뻔뻔스러워질 수 있을까? 특히 상류층, 기득권층, 지배적 계층에 속하는 지식인층과 부유층의 이기심과 몰염치는 역겨울 정도다. 온갖 구설 속에 왕따가 되어간 이명박씨는 "속물인 줄 다 알고 찍었어"라고 퉁치고, 위협 세력은 종북, 종북의 2중대, 싸가지 프레임으로 매도한 뒤 견고한 이익의 성채 속에서 기회의 두 눈만 번뜩인 것이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심한 말이었다면 용서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지난 5년 새 대한민국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소인배들의 나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일을 나랏일이라고 벌이고, 국민을 위한다는 아름다운 주장도 난무했지만, 그 가운데 정의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이익을 구하는 최고의 방법에 대한 자잘한 지혜만 자랑스럽게 떠받들여진 시대였다. 그 소인배의 시대가 이명박씨의 퇴임으로 막을 내릴까?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가 누구인지 조만간 드러나겠지만, 그들이 보수라면 부디 역사의식으로 '의식화'된 보수이기를 바란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가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이 무엇일까? 경제? 안보? 아니다. 그건 기본 사양이다. 시급한 것은 식자의 자세를 고쳐 세우는 일이다. 소인배들에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엄중하게 보여줘야 한다. 설사 정치란 게 본래 소인배들의 전문 영역이라 해도, 개중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군자도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발탁해 앞세우고 나머지는 가까운 '놈'일수록 더욱 센 매로 다스리라. 그러면 국민이 좋아하고, 반대파는 할 말이 없고, 정부는 성공한다. 무엇으로 더 정치를 잘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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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 편집장 editor@ilemonde.com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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