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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시대에 생각하는 '동아시아'
보수의 시대에 생각하는 '동아시아'
  • 조효제
  • 승인 2013.02.0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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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지음, 마음산책 펴냄
한승동의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이하 <지금 동아시아…>)는 현직 언론인이 쓴 통렬한 동아시아론이다. 그것도 국제정치가 아닌 학예 전문기자의 글이다. 저자는 데스크에서 내근만 한 문화부 기자는 아니다. 일본 특파원으로 동아시아 격변의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한데다 이 지역의 역사적 동향을 오랜 기간 추적해왔다. 따라서 <지금 동아시아…>는 해박한 지식과 현지 경험, 그리고 장기간의 관찰로 다져진 식견이 언론인의 현실 감각 속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긴박한 적실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굳이 비교하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미국 언론인 존 리드의 현장 감각과 <셀라시에 황제의 몰락>을 쓴 폴란드 기자 리샤르트 카푸르친스키의 통찰력이 결합된 글이다. 그런 점에서 하이저널리즘의 모범이라 해도 좋을 만한 책이다.

<지금 동아시아…>는 크게 보아 동아시아론, 한국 사회 비판, 문화 비평, 생명-생태론 등으로 되어 있다. 본업인 언론 활동 속에서 집필한 글을 모은 저서라 다양한 분야에 걸친 글이 400쪽 넘는 묵직한 분량 속에 섭렵되어 있다. 그런데 양으로 보나 심각성으로 보나,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열정으로 보나 제일 강조된 부분은 단연 동아시아론이다. 또한 부제 '보수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생각'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책의 주제와 부제가 저자의 핵심적 문제의식을 잘 요약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러 각도에서, 그리고 다양한 표현으로 변주되고 있는 저자의 기본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메이지 이후 일본이라는 '항공모함' 국가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일본과 한반도와 중국의 내정에 미친 영향, 그 와중에 전후 미국이 수행하던 패권 국가의 역할 등이다.

일본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모방과 수용과 극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서구적) 근대 세계에 동참한 거의 유일한 모델 국가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집단주의적 특성, 천황제를 정점으로 한 일사불란한 행동 양식, 목표를 정해놓고 일로매진하는 성취 중심적 국민성 등이 오늘의 일본을 낳았다. 게다가 전쟁을 일으켜 지역 질서를 흐뜨려놓고 이웃 민중의 삶에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가했다. 그러고도 반성 따위는 적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의 여러 설명을 평자 나름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일본의 근대화가 아주 깊은 차원에서 팽창주의적 기반 위에서 진행된 현실이 있다. 이 팽창주의적 속성은 우승 열패적 사회다위니즘으로 정당화되고, 축적을 신봉하는 약육강식 자본주의의 맹목적 추구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기본 전제 위에서 진행된 근대화이니만큼 주변국들과 싸우기도 하고, 강점하기도 하고, 민간인 학살을 일으키기도 한 자기들의 현대사가, 특히 팽창주의적 일본 우익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아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국력을 늘리기 위해 바깥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충돌이 있었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런 일은 근대 이후 개발의 궤도에 올라탄 모든 서구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걸은 길이 아닌가. 우리만 식민지를 추구했는가. 그것을 이제 와서 역사 청산이니 과거사 정리니 하여 시비를 건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사에 시비를 거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입장이다. 양식 있는 일본인들조차 '1937년 이후 일본이 중국에서 행한 침략 행위 혹은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의 대동아전쟁에 대해선 일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선 인류 역사의 일반적 패턴으로 이해해야지 오늘날의 기준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죄과 역시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그 책임 의식이 옅어져버렸다. 다시 말해, 대동아전쟁 이전의 제국주의적 팽창 역사는 열강의 각축이라는 '보편적' 현상으로 설명돼버리고, 전쟁범죄는 피해자 의식과 평화 담론으로 대체돼버린 것이다.

이런 식의 왜곡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한반도의 민중이다. 이런 역사관 때문에 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인류의 보편사- 약자에게는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속으로 묻혀버리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굳이 따지자면 일본의 약간의 '도의적' 책임과 쇠망했던 조선의 '자체적' 책임이 공존하는 회색 영역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뿐인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지배 전략에 의해 일본의 죄과는 교묘하게 사면되었고, 일본 우익과 미국의 담합으로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당사자에도 들지 못하는 오욕을 겪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그런 파행적 결정에 일조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의 결과를 우리는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경험하고 있다. '독도 전쟁'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더 나아가 오키나와 같은 '일본 땅'에서 벌어지는 내부 식민과 외세 점령의 기형적 상황도 다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든 방편적으로든 이런 식의 연합을 추구하면서 가장 크게 골병 든 피해자가 한반도인 것이다. 북한의 비정상적 통치 현실, 남한의 극단적 이념 편향도 따지고보면 이런 역사적 뿌리에서 유래했다. 이런 맥락과 연원을 놓친 채 피상적 현상만으로 동아시아를 논하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런 논지를 종군위안부, 미국의 아시아 전략, 독도, 제주 강정 해군기지, 재일 조선인, '반미친북 좌파 대 친미반북 우파'로 갈린 허위의 이항 대립 구도 등에 차례로 대입하면서 그것들을 정밀하게 파헤친다. 또 그것을 통해 왜 '지금' 동아시아를 읽어야 하는지 명료하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적어두고 싶다. 첫째, 저자의 문제의식은 얼핏 전형적인 민족주의자의 그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19세기 이래 왜곡된 동아시아 역사를 직시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분단 상황의 극복이 모든 문제의 발본적 해결책이라는 저자의 주장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저자가 민족주의자라면 그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종족적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공적인 '시민적 민족주의'에 훨씬 가까움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평화에 대한 관심, 소수자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정치공동체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둘째, 저자의 사상적 입장이 무엇일까? 근대 이후 어떤 사상에 도달하는 길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현실의 모순과 비리에 분노하고, 인간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를 옹호하면서 원초적 자유·정의·정명(正名)을 요구하는 경험적 방식, 즉 일종의 귀납적 접근이 있다. 그리고 이론 학습과 의식화를 통해 순수한 형태의 이념과 입장으로 무장한 후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일종의 이론적·연역적 접근이 있다. 저자는 경험적인 첫째 방식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는 비판적 인텔리겐치아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민족주의·사회민주주의·인권평화의 사상에 도달했지만, 그 출발선은 소박한 정의와 자유, 정명에의 요구가 아니었던가 짐작해본다. 평생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한, 그러나 결코 교조적 이념의 전파자 역할은 거부했던 리영희 선생의 입장과 많이 닮았다. 저자가 각별하게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면서 그의 사상을 맨 앞장에서부터 다루는 것도 다 이것과 연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서 저자는 어느새 '바위산'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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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 박사. 저서로 <인권을 찾아서>, <인권의 문법>, 편서로 <Contemporary South Korean Society>, 역서로 <국제개발과 세계사회변동>,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등이 있다.

저자한승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한겨레> 문화부(서평 담당) 기자. <한겨레> 국제부장,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등 역임. 민족(통일)·국제 분야에 관심이 많다. <대한민국 걷어차기> 등의 저서와 <디아스포라의 눈> <나의 서양음악 순례> <시대를 건너는 법> <속담 인류학> <우익에 눈먼 미국> <부시의 정신분석> <원전 없는 미래로>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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