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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의 교훈
키프로스의 교훈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3.04.09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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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窓)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다. 세금을 올리면 기업가들이 낙담할 것이기에 할 수 없었다. 저임금 국가의 저가 덤핑 공세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것도 자유무역협정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불가능했다. 금융 거래에 미미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사전에 국가 대부분의 지지가 필요하기에 할 수 없었다. 부가가치세(VAT)를 인하하는 것도 유럽연합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토요일인 지난 3월 16일 모든 게 바뀌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로그룹,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 등 비난할 수 없는 기관들이 키프로스 정부의 떨고 있는 팔을 비틀어 한 가지 조처를 취하게 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런 조처를 취했다면, 자유를 침해한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조처로 간주해 그에게 분노하는 장문의 언론 사설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 조처란 은행 예금에 대해 (구제금융 분담금 명목으로) 일정 비율을 자동몰수하는 것이었다. 애초 6.75~9.9%로 단계별로 적용된 몰수비율은 지난 15년 동안 논란의 대상이던 토빈세의 거의 1천 배에 달했다. 그렇게 해서 유럽에서 누군가 금융거래세를 원한다면 부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러나 채무 은행의 주주나 채권자가 아니라, 예금주가 몰수 대상으로 선택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일 은행이나 그리스의 선주, 그리고 아일랜드, 스위스, 룩셈부르크에서 배당금을 주무르는 다국적기업들이 부당 이득을 토해내게 하는 것보다, '금융 서비스의 천국'인 키프로스에 도피한 러시아 마피아의 자금을 겨냥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키프로스 연금생활자의 돈을 강탈하는 게 실제로 훨씬 쉬운 일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국제통화기금, 유럽은행은 "채권자의 '신뢰'를 절대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선 공공 지출의 증가와 함께 국가 채무의 재조정을 동시에 금지해야 한다"고 계속 강하게 발언해왔다. 금융시장은 이런 식으로 이탈을 엄벌할 것이라고 그들은 경고해왔다. 그런데 유럽 은행의 어느 고객이 자고 일어나보니 예금이 반 토막 나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단일통화와 은행예금의 지극히 신성한 보장에 대해 도대체 무슨 신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유로그룹의 17개 회원국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또다시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유럽연합의 시민이면 누구나 은행 수지의 회복을 명분으로 자신의 노동 성과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금융정책의 특권적 표적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것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키프로스 정부의 꼭두각시들은 자국민의 비난을 감수하고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독일 정부가 넘겨주는 이런 식의 지시를 이행하기로 이미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 키프로스 국민은 키프로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원한에 사무친 것과는 다른 무엇, 즉 자신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해방된 인식을 갖게 될지 모른다. 키프로스에 대해 완력을 행사한 다음날 일부 유럽 국가의 각료들이 보여준 당황하는 모습은 아마 공적인 무능을 정치 이론으로 만들던 지난 30년간의 자유주의적 교육을 의도치 않게 자신들이 부정해버린 데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약간 가혹한 다른 조처들을 사전에 정당화한 셈이다. 언젠가 그런 조처들이 독일을 언짢게 할 것이다. 이 조처들은 키프로스의 소규모 예금주보다 훨씬 부유한 목표물을 겨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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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 / 류재훈 hoonie@hani.co.kr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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